교육미디어축제 리뷰
교육미디어축제 리뷰
밤비
서밋의 혼란으로 학기의 기승전결이 뒤바뀐 생활을 하고 있던 나는, 교육미디어축제에 대한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또 얼마나 멍 때릴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번학기엔 무슨 일이라도 시키면 잘하는 나에게 뭔가를 시키는 사람이 없었다. 이번학기의 내 목표도 그랬다. 내가 먼저 할 일을 만들어서 시키지 않더라도 하는 것. 여러 목표가 있었지만 ‘학습’이라는 부분에선 이것이 가장 큰 목표였다. 아무리 웹진을 잘 하고 있더라도 서밋처럼 큰 행사가 끼어들면 행사 직후 멍 때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오래가게 되면 웹진은 지금처럼 안 나오게 된다(하하하!). 그래서 교육미디어축제에 참여한다는 판돌들의 말을 들었을 때 앞서 말했다시피 ‘또 얼마나 멍 때릴까’라는 생각과 함께 두려움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나의 도시를 지켜줘: 202studio
첫 전체회의에서 축제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작업물을 팀으로 나누어 설명하면서 ‘팀끼리만 뭉치는 게 아니라 다른 팀이 또 생길 수도 있다’라는 정보를 얻었다. 안도의 한숨. 사실 202 안에서 뭔가를 함께 한다고 했을 때 나는 심적으로 부담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다. 202 사람들은 디자인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이번학기를 보내고 있지만 나는 전혀 달랐다. 디자인보다는 글이었고(뭐 어떻게 돌려서 설명하면 내가 생각하는 것도 디자인이 될 수 있다고 나를 설득시킬 수 있지만 나는 그런 설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함께 해본 것이 없는 건 새로운 팀이나 202스튜디오나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나는 정리되지 않은 이유로 202안에 있는 것에 부담감을 느끼고 있었다.
202 안에서 첫 회의가 시작되었다. 나름 열심히 생각도 해보고 준비도 해갔다. 광주에 갔을 때 했던 회의는 무슨 얘기를 했는지 크게 기억 남는 부분은 없었지만 좁은 공간, 하자에서 벗어난 곳이라는 평온함이 우리를 잔뜩 따뜻하게 해주어 202 안에서도 이렇게 얘기를 재미있게 가져갈 수 있구나,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만 하고자 하는 사람은 없구나, 라는 생각을 했다. 아마 광주에 갔을 때 내가 202 안에 있는 것에 대한 가능성을 볼 수 있던 걸로 기억된다.
하자에 돌아온 202는 다시 제각각 할 일이 많아 흩어졌다. 그래서 우리의 지하철 노선도 얘기는 1단계에서 그쳐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캐치스코프가 감독이 되어 동서남북으로 나뉜 팀이 만들어졌다는 소식을 전해 듣게 되었다.
-나의 도시를 지켜줘(!): 동서남북_허감독
학기 초부터 함께 작업(웹진의 기사)을 했던 허브가 감독이 되었다. 때마침 영상에 대해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던 터라 영상을 만든다는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어 매우 긍정적인 태도를 갖고 있었다. 허나 게으름에 중독되어 참여하지 못한 어드바이저리 세션에서의 설명을 제대로 듣지 못해, 202의 노선도와 캐치스코프의 작품(이때는 이렇게만 생각)을 병행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둘을 어떻게 같이 해!!!!’라는 짜증을 가득 품고 회의에 참여했다. 뭐, 혹시나! 역시나. 회의는 제대로 진행이 되지 않았다. ‘동쪽’이라는 것만 같지 다들 같은 생각을 갖고 있지는 않았다. 나름 ‘아파트’라는 아주 큰 틀이 만들어지긴 했지만 ‘재개발로 인해 큰 아파트가 들어오는 걸 막고 싶어요’나 ‘재개발되기 전 과거의 추억을 간직하고 싶어요’ 같은 문장으로 의견이 뭉쳐지진 않았다. 심지어 다들 바빠서 오프라인보단 온라인 회의를 주로 했기 때문에 어쨌든 회의는 늘 ‘졸리다’ 혹은 ‘이만 끝내죠’ 정도로 마무리가 되었다.
초기의 회의에서 허감독은 초조해서 죽겠어요, 라는 마음이 그대로 드러난 표정을 많이 지었다(사실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나의 추측은 그러하다). 나또한 초조했다. 그러나 그 때까지도 바보처럼 202 노선도를 같이한다는 짜증이 섞여있어 초조함보다는 ‘202는 왜 안 모여?’라는 생각이 더 컸다. 그러다가 전체 보고회의에서 한 번 크게 깨닫고 나서야(이 때 유리가 답변해주셨다) ‘앗항~’이라는 마음으로 변했다. 그 다음 회의에 세이랜이 참여하셔서 이것저것 좋은 아이디어를 많이 제공해주셨고 나는 ‘하나만 해도 돼’라는 즐거움으로 부담감 없이 재미있는 영상을 찍어보겠다는 의욕에 불타게 되었다.
동팀의 아이디어는 ‘시영상’이었다(한글버전). 허브와 제이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 하지만 난 아직 시를 쓰고 싶다는 생각이 크지 않아 몇 번 다른 의견도 제시해보았으나 ‘시영상’이 점점 영화화 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에 나도 의견에 동의하기 시작했다.
영상을 만들기 위해 시나리오를 구체화하기 위한 회의가 있었다. 나는 조연출이 되었다. 그 때 문득 사람들이 나를 믿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성실하지도 못했고 계속 화만 내고 짜증 섞인 농담이나 떠들었는데도 불구하고 ‘밤비 조연출 시키지 마요’라는 말을 아무도 하지 않았다. 처음 같은 팀이 되어본 사람들이었지만 마음속으로 몰래 많이 고마워했다.
지하철에서 스토리보드를 그려가며 우리의 영상에 대한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촬영 당일 래피드가 많이 아파 녹음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도 아랑곳하지 않고 씩씩하게 촬영을 했다. 아침부터 미열이 있어 지각하긴 했지만 촬영은 (다시 한 번!)순조롭게 진행되었다.
우리는 가장 배부른 팀이었다. 소품도 참치 캔과 비닐봉지와 우비 정도면 충분했고 래피드의 부재로(고마운 건지 미안한 건지) 아침 겸 점심으로 돈까스, 저녁으로 칼국수와 수제비, 간식으로 미스터 도넛에서 푸짐한 도넛들과 커피를 맛볼 수 있었다.
비록 그 다음 날 조금 아팠던 몸이 많이 아파져서 학교에 못 나갔지만 마음만은 훈훈했다. 축제가 끝난 지금 또다시 멍 때리며 쇼하자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하지만 이번 전시 덕분에 학기를 다시 시작하는 것과 같은 활력을 얻게 되었다.
참 많은 에피소드가 있었다. 약 12년 만에 어린 시절 추억이 남아있는 구리에 가보았다는 것, 발가락이 얼어본 것, 세이랜과 양말 바꿔 신어본 것(언제 해보겠어), 동서남북을 셀 수 없이 많이 접어본 것, 전시장에 이름 내본 것, 하자 사람들에게 방학동을 널리 알린 것(홍익방학?) 등. 이제 나는 에세이를 써야 한다. 전시 말고도 많은 일이 있었지만 ‘학습’과 ‘작업’이란 키워드에서 전시는 절대 잊지 못할 경험이 될 것 같다.
12월에 동서남북:save my city를 갖고 다시 전시를 한다고 들었다. 떨리기도 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의 영상을 보고 작게나마 어떤 생각을 할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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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지도 길지도 않았던 학여울소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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