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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로황제


<질문지>

1. 로마인에게 있어 신이란 무엇인가.

2. 네로가 예술에 집착한 이유는?

3. 네로의 성장 배경은?


<조사>

1. 로마인에게 있어 신이란 무엇인가.

할머니들이 옛날 얘기 해주시는 것처럼, 로마의 신화도 로마인들의 입으로부터 만들어졌다. 우리나라 건국신화도 역사와 얼추 맞아떨어지듯 로마의 신화도 건국배경과 맞아떨어진다. 한 가지 다른 특징이 있다면 ‘그리스로마신화’에서는 별자리를 얘기했다는 것 정도이다.

나중에 불교가 들어오며 ‘제사장’ 같은 이름이 생기긴 했지만, 한국의 옛날 사람들은 신보다는 왕이었다. 그렇다면 고대 로마인들에게 신이란 어떤 존재였을까?

EBS다큐에선 안 나왔지만, 로마대화제 때 로마 세력가들은 기독교인을 잔인하게 몰살했다고 한다. 그 이유는 신에 있다. 아무리 재정난이 찾아와도 신전에는 제물을 꼬박꼬박 받치고 무슨 일이 있으면 ‘신께 맹세하건데’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나는 신에게 의지하는 사람은 곧 자신에게 의지하는 사람이라 생각한다. 신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형체가 없는 존재이다. 기도할 때 사람들은 입으로 소리 내며 기도하기 보다는 속으로 생각하며 기도한다. 생각은 자신에게 전해지고 기도 내용은 대부분 바람을 토해내는 것이므로 내게 있어 기도란 자기암시이다.

원로원의 사람들은 네로에게 ‘당신은 신이 되게나’라는 말로 압박했지만, 그럴 때마다 그의 아내는 그를 잡아주었다. 아내덕분에 네로는 냉정함을 되찾고 예술제국의 건설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가 신을 그렇게 섬기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그는 계속해서 자신이 신이라고 주장했고 자신의 계획을 위해 신의 물건에 손을 댔다. 또한 왕은 백성들을 사랑하고 나라를 사랑해야 하지만 네로는 나라나 백성보단 예술을 사랑했다. 예술을 위해 백성을 짓밟고 나라를 뭉개버렸다. 그가 만약 진정 나라를 깊게 사랑했다면 냉정을 되찾고 예술과 백성/나라에 대한 가치판단을 다르게 시도해 좀 더 멋진 로마제국을 만들지 않았을까? 이 부분에서 나는 그의 아내가 실수했다고 느낀다.

아무튼, 그는 신도, 백성도, 나라도, 가족도 놓아버렸지만 그가 끝까지 놓지 못한 건 그의 아내이다.


2. 네로가 예술에 집착한 이유는?


네로는 그냥 예술이 아니라 그리스 예술을 사랑했다고 한다. 네로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죽고 어머니는 추방당해 예술적 성향이 강한 두 숙모와 함께 지냈다고 한다. 그 때 여러 교육을 받았는데, 네로는 특히 그리스 예술에 관심을 보였다고 한다.

네로는 소년 때 황제 직위를 해 철없고 서툰 정치를 했기 때문에, 그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는 그를 이용해 자신의 야망을 채웠다고 한다. 몇몇 정보를 보고 있노라면 네로는 정치보다는 예술을 더 좋아한 것으로 보여 진다. 정치는 원로원과 어머니에게 맡겨놓고 노래를 부르러 다른 지방으로 놀러간다든지, 황제 직위를 버리고 예술인이 되겠다는 바보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고 한다. 또 로마대화제 이후 네로는 로마를 그리스처럼 꾸며놓기까지 했다(이것 때문에 로마 백성들이 그가 그리스처럼 꾸며놓으려고 불을 냈다고 거짓 소문을 만들었다고 한다).

나는 네로처럼 예술을 광적으로 사랑하진 않지만, 권력을 자신의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이용한 건 네로의 잘못이라 생각한다.


3. 네로의 성장배경은?

자신이 압박을 받거나 불안하면 폭력적인 성향을 드러내는 네로황제. 사람은 누구나 환경적인 요인에 의해 성격이 만들어지고 변한다고 한다. 그는 어떤 환경에서 자랐기에 그렇게 어리광부리는 사람이 되었을까?

네로가 어렸을 때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한다. 그리고 어머니는 추방당해 그는 숙모 둘에게 키워졌다고 한다. 이후 어머니와 함께 살게 된 네로는 어머니와 근친상간을 하게 된다. 네로는 어렸을 때 예쁘게 생겨 어머니가 그를 지독하게 사랑했다고 한다. 그래서 네로에게 정신적, 성적 관심을 지나치게 보여 네로는 어렸을 때부터 성적 경험을 많이 했다고 한다.

네로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네로를 외롭게 만들어갔다. 권력을 위해 그를 그가 관심도 없는 여자와 결혼시키고 정치적으로 계속해서 이용한다. 나중에는 그가 한때 사랑했던 여자를 암살하고 그가 다른 여자를 사랑하면 압박을 주었다고 한다. 그래서 네로는 이후 아그리피나를 살해하는데, 이 때 까지만 해도 그는 폭력적인 성향이 덜했다고 한다.

후에 네로는 세 명(포피아 죽기 전까지는)의 여자와 결혼하는데, 한 명은 어머니에게 이용당해 결혼한 여자, 한 명은 그가 사랑했으나 나중에 그가 스스로 죽인 여자, 한 명은 EBS 다큐에 나온 포피아이다. 두 번째로 결혼한 부인이 죽었을 때부터 그는 폭력적인 성향이 강해졌다고 한다. 인간적인 마음에서 우러나온 양심의 가책 때문이라고 한다.

네로의 성장배경을 조사하며 가장 어이가 없던 건 옛날 높은 사람들은 하나같이(특히 그리스나 로마) 근친상간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는 것이다. 네로의 두 번째 부인, 즉 그의 양부의 딸, 그의 어머니 등. 심지어 나중에는 노예를 거세시켜 부인으로 삼지 않던가.


내 생각에 네로는 그저 자유인으로 남았어야 한다. 외교를 잘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아무리 잘 했으면 뭐하나, 그가 원하지 않았는데 말이다. 네로는 주변 환경 때문에 이용만 당하고 나중엔 스스로 견디지 못하고 자신을 버린 불쌍한 인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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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대화제>

2. 네로 황제 박해

네로 황제가 재임하던 주후 64년에 발생한 대화제 사건은 기독교 역사에 잊을 수 없는 분기점이 되었다. 그가 통치하던 주후 64년 네로는 로마에 발생한 대화제 사건의 원인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린후 극심하게 박해하기 시작했다. 당시 일반들에게 기독교가 부정적인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네로는 자연스럽게 로마의 대화재 사건을 기독교인들에게 돌려 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이런 사실을 수에토니우스(syetibius)가 기독교인들이 형벌을 받은 원인을 기술하면서 " 새롭고 사악한 미신에 사로잡힌 사람들의 단체인 그리스도인들 "이라는 표현속에서 찾아볼수 있다. 또한 타키투스도 기독교를 가리켜 "매우 위험한 미신 " 표현에 비추어 볼 때 당시 사람들은 기독교를 옳게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로마의 대화제 사건은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죽시키기 위함이었다. 타키투스는 그의 연대기에서 광적인 잔학성을 충죽시키기 위해 그리스도인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유세비우스도 네로의 '극단적인 광기' 때문에 그의 생모와 아내 , 수천명의 사람들을 죽였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통치권을 확고히 다진 네로가 사악한 계획을 세우고 유일하신 하나님을 인정하는 신앙을 대적하여 포문을 열기 시작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것은 타기투스의 연대 , 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에 보낸 서신 > , 고린도의 디오니시우스의 설교를 통해서 네로의 잔학성과 하나님을 인정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핍박을 알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짐승의 가죽으로 싸서 개들에 의해 찢기우기도 하고 십자가에 못박혔다 . 혹은 화형이 되어, 해진후 밤을 밝히는 일에 이용되기도 하였다. 네로는 그 광경을 위해 자신의 정원들의 개방하고 자신은 기수의 복장을 하고 사람들과 어울리거나 아니면 마차를 몰고 다녔고 그동안 서커스에스는 쇼가 공연되었다. 그러므로 가혹하고 본보기적인 형벌을 받기에 마땅한 범죄자들이라 할지라도 사람들 사이에 동정심이 생긴 것은 사실상 그 일이 공중의 선을 위해서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광적인 잔학성을 충족시키기 위해 그들이 죽어가고 있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 타기투스의 연대기 중에서)


"우리는 훌륭한 사도들을 면밀히 살펴보시다. 베드로는 한 두 번이 아닌 여러 번의 노력을 통하여 불의를 극복하였으며 따 라서 그의 증거는 영광의 자리에 도달했던것입니다. 열정과 노력으로 바울은 인내의 상을 받앗습니다.....바울은 동서에 복음을 전했을 때 그는 자신의 믿음에 합당한 고귀한 명성을 얻었습니다." (로마의 클레멘트 고린도에 보낸 서신 5장 )


"당신은 이처럼 이 권면에 베드로와 바울이 로마와 고린도에 심어 놓은 번영의 씨앗을 섞어 놓았다. ...그리고 거의 같은 시기에 순교했다." (고린도의 감독 디오니시우스의 설교중에서)

->네이버 지식인


로마 대화재( - 大火災, Great Fire of Rome)는 기원후 60년 7월 18일 로마에서 일어난 대화재이다.

기름 창고에서 우연히 일어난 작은 화재가 시내에 번지면서 대화재로 악화되었다.

네로 황제가 불타는 로마를 보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말이 있으나, 이는 잘못 알려진 사실이다. 역사 속의 네로황제는 화재 소식을 듣고는 휴가를 중단하고, 로마에 와서 이재민에게 식량을 공급하는 등 참사 수습을 위해 노력했다.[1] 그럼에도 시민의 민심이 여전히 안정되지 않았으며, 네로방화설까지 나돌았다. 그러자 일부 과격 세력이 소수 세력이었던 기독교인에게 화재 책임을 돌려 탄압하였으며, 네로는 그 사실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박해 당시에 네로는 모자라는 식량과 여러 물품을 빌리기 위한 일정때문에 로마시에 있지도 않았다.


로마 대화재와 민심 수습을 위한 기독교 탄압을 소재로 한 역사 소설로는 셴키에비치의 쿠오바디스가 있다.

->위키피디아 백과사전


<네로의 예술사랑>

1. 네로 황제는 그리스 문화를 아주아주아주 사랑했습니다. 일종의 그리스 매니아(?)였죠=_= 그래서 그는 나폴리의 극장에서 자신이 직접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그리스 지역에 극장을 지어 선물하기도 했으며, 체육관을 지어 로마에서 올림픽 제전을 부활시키려 하기도 했습니다만 로마 사람들은 그런 걸 안 좋아했습니다-_-;; 로마인들은 실용적인 걸 좋아하는 민족이라서..

->네이버 지식인


예술적 자만과 무책임


부루스와 세네카는 자기들이 직접 제국을 다스리면서 네로가 무절제하게 취미와 향락을 즐기도록 내버려두었다. 세네카는 네로에게 독재권을 책임감있게 사용하도록 역설하기는 했지만 네로가 소년으로서 갖는 많은 일시적 충동들을 조절해 책임있는 행동을 하도록 하지는 못했다. 처음에 네로는 사형 선고에 서명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으며, 세금 징수원들이 백성을 착취하는 것을 보고 58년에는 세금을 없애야 한다는 비현실적인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뒤에도 그는 원정이나 공공토목사업과 같은 웅대한 계획을 생각해내기도 했으나 대부분 개인의 향락을 충족시키기 위해서만 자기의 지위를 이용했다. 일찍이 56년부터 네로가 밤에 길에서 난동을 부린다는 소문이 떠돌기는 했지만, 네로의 야만적인 행동은 59년 자기 어머니를 살해했을 때부터 62년 6월 아내 옥타비아를 죽였을 때까지 35개월 동안 드러났다.


아그리피나는 아들이 자신의 통제에서 벗어나는 것에 격노해 비이성적 행동을 한 대가로 살해당했다. 또 네로는 원로원 의원 오토(나중에 황제가 됨)의 젊은 아내 포파이아 사비나와 사랑에 빠진 뒤, 옥타비아를 버리면 궁정과 민중들이 불만을 품을 것을 두려워하여 옥타비아를 살해했다. 네로는 62년 포파이아와 결혼했으나 그녀는 65년에 죽고, 그뒤 귀족 출신의 스타틸리아 메살리나와 결혼했다.


네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질책이나 징벌을 받지 않고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해 과도한 예술적 자만에 빠지기 시작했다. 그 자신이 시인이며 2륜전차 기수이자 수금연주자라고 자부했으며, 59년(또는 60년)에는 대중공연을 갖기 시작했다. 그뒤 그는 연극무대에 등장했으며, 극장측은 그가 갖가지 배역을 맡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로마인들은 그의 이런 기괴한 행위를 품위가 없고 범절에 어긋난 수치스러운 것으로 보았다. 네로는 심지어 자신의 시적·음악적 재능을 펴기 위해서 왕위를 버리겠다는 철부지 같은 생각을 하기도 했다. 63년경부터는 이상한 종교적 열성을 보이기 시작해 새로운 종파의 설교자들에게 점점 이끌리게 되었고 그무렵 세네카는 네로에 대한 영향력이 없어졌다는 것을 알고 62년 부루스가 죽은 뒤 은퇴했다.


64년 로마를 휩쓸었던 대화재로 그간의 네로에 대한 나쁜 평판이 드러났다. 화재로 도시가 파괴된 것을 이용해 네로는 로마를 그리스식으로 재건했으며, 로마 시 전체의 1/3 크기인 궁전 '황금저택'을 짓기 시작했지만 완성하지는 못했다. 화재가 일어났을 때 네로는 로마에서 56㎞ 떨어져 있는 안티움 별장에 있었기 때문에 화재에 책임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그러나 로마 사람들은 네로가 자신의 심미적 취향에 맞게 로마를 다시 지으려고 직접 불을 냈다고 오해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의 〈연대기 Annals〉와 로마의 전기작가 수에토니우스의 〈네로 Nero〉에 따르면, 네로는 대응책으로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교도들에게 돌리려 했다 한다. 당시 사람들은 그리스도교도들을 여러 가지 나쁜 행위에 가담하는 무리로 여기고 있었지만 그때까지 로마 정부는 그리스도교도들을 유대인과 명확히 구분하지는 않았다. 뜻하지 않게 네로는 심한 그리스도교도 박해정책을 시작한 장본인이 되었으며, 이때문에 그리스도교 외경(外經) 전설에서 그리스도의 적이라는 나쁜 평판을 얻었다.

->네이버 지식인


<네로 성장배경>

2. 네로 황제의 어머니인 아그리피나는 야심만만하고 머리가 좋은 여자였습니다. 그래서 전 황제인 클라우디우스와 결혼할 때, 자기가 데려온 아들인 네로를 왕위에 앉히기 위해 클라우디우스의 친아들인 브리타니쿠스를 암살했죠. 그리고 네로가 왕위에 오른 뒤에도 사사건건 네로의 정치에 간섭하려고 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네로는 그런 무서운(?)어머니를 싫어했다고 해요. 그래서 어머니랑 사사건건 대립하다가, 마침내 아그리피나를 죽이려는 계획을 세우죠. 처음에는 물에 빠뜨려 죽이려고 아그리피나가 타는 배 밑창을 뚫었습니다만, 이 아주머니가 수영을 워낙 잘 해서 안 죽었다고 합니다-_-; 그래서 자기 노예를 시켜 어머니를 칼로 찔러 죽였다고 하네요. 이것 때문에 네로 황제는 그리스도교인 박해와 더불어, 후세에 엄청나게 욕을 먹고 있죠.


3. 네로 황제의 초상화를 보면, 수염을 잔뜩 기르고 있고 상당히 뚱뚱(!)합니다. 수염을 기르는 건 그리스의 풍습이고, 로마 사람들은 원래 수염을 기르지 않았다고 해요. 그리스를 워낙 사랑했던 네로 황제는 그리스식으로 수염을 기르고 그리스식으로 생활하려 했지만, 몸이 워낙 뚱뚱해서 그리스 사람들이 좋아했던 그런 미청년은 될 수가 없었죠-_-; 문화와 예술을 사랑하고 재치도 있는 성격이긴 하지만 의지 박약인 데다가 겁도 많고, 그 겁많은 성격을 숨기기 위해 일부러 잔인한 척 하고.. 그리고 외로움을 많이 탔다고 해요. 사람들이 자신을 버릴까봐 많이 두려워했었다고 합니다.

->네이버 지식인


네로는 외로운 아이였다. 신분이 최고 준남작인 그이 아버지 그나이우스 도미티우스 아헤노바르부스는 네로가 태어나고 약 3 년 후에 죽는다.


그의 어머니 아그리피나는 오빠 칼리굴라로부터 추방당해 코르시카에서 살고 있었다.네로는 부모 없이 숙모 도미티아 레피다 밑에서 궁핍하게 성장한다.


도미티아 레피다는 네로에게 댄서와 이발사 교육울 시키는데, 그 두 직업은 동성애 성향이 강하며 음악과 산문의 위대한 친구들이다. 그것이 네로의 예술 그리고 사랑에 대한 첫 경험들이다.

[출처] 예술을 사랑한 야수 네로의 여인들|작성자 벼리아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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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와..많이 찾아봤구나. 다음 시간에 이야기 할 거리가 많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