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말 에세이 초고
2008가을학기 열린작업장 학기말 에세이
밤비
<OUTSIDER>
▶ 미지와의 조우
∽시작부터 참 바쁘다. 방학에도 서밋에 대한 압박이 죄어온다.
사실 학기 초반에 죽돌들은 대부분 시간을 멍하니 보낸다. 시작하지 않은 프로젝트도 많거니와 하고 있는 일이 적은 게 그 이유다. 그러나 이번학기만은 달랐다. 외국인과 정겹게 영어로 창의성에 대해 논의하는 시간을 갖게 되었다. 처음에는 웹진의 기사거리로만 생각했다. 나는 지난학기에 무슨 사건만 생기면 제 3자의 입장에서만 바라봤기 때문이다(그리고 다 일거리로만 생각해서 한숨만 푹푹 내쉬었다). 그래서 웹진과 엮어가기 위해 몇 동무만 있으면 손쉽게 기사를 낼 수 있도록 차근차근 알아보았다. 내가 가져간 역할은 꼬미와 함께 ‘데일리 스케치’를 맡는 것. 지난학기부터 사진 찍는 것에 취미를 붙였기 때문에 일정표까지 짜가며 즐겁게 시작했다.
서밋 준비모임에선 영어를 배웠고 서밋 때는 새로운 세계를 배웠다. 작업자로서의 태도나 데일리 팀 안에서의 문제점, 그리고 창의성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 것도 있지만, 내가 서있는 이 자리만이 세계가 아니라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각 학교를 소개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 때 홍콩의 토토가 만든 영상물이 감성과 느낌만으로, 표출하고 싶은 설명할 수 없는 어떤 느낌으로 만든 거라는 걸 알게 되었다. 내가 평소 생각하고 있던 영상물 제작에는 ‘이유’와 ‘목표’가 빠지지 않았다. 어떤 작업을 해도 늘 의미를 부여했고 그걸 똑똑하게 설명할 수 있을 정도로 말재주가 필요했다. 나 스스로에게 계속 질문을 던질 수밖에 없었다. 충격이 컸기 때문이다. 그저 분출하고 싶은 욕구 하나만으로 내 시선을 꽉 잡을 수 있는 영상이 나오는 것에, 그리고 ‘왜 만들었냐’는 질문에 ‘잘 모르겠다. 그냥 만들고 싶었다’라고 설명하는 토토의 말에.
생각해보니 하자의 교육방식이 문제되었기 때문이 아니라 내가 그렇게 보고 그렇게 느껴왔던 것이 가장 큰 이유가 되었다. 나는 내가 필요로 하는 걸 만들면 되는데 어째서 보여주는 것에 집착했던 걸까? 내가 썩 불편해하는 공교육의 문제점 중 하나인데도 나는 과정보단 결과물을 보여주는 것에 급급했다. 이 때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때 진정 ‘작업’이라는 말을 쓸 수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리고 한편으론 내가 무엇을 원하는지 계속해서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다.
서밋의 영향이 커서 학기의 시작도, 일의 진행도 더뎌졌다. 학기말인 지금까지 내가 어떻게 버텼는지 모를 정도로 참 영향이 컸다. 큰일을 벌린 만큼 정리하는 과정이 크다는 걸 이제 배웠다. 사실은, 웹진 기획 이후 기사가 나오지 않았다. 서밋 기사는 인터뷰 질문 목록만 작성된 채 방치되어있다. 그걸 지금 시작할 서밋 회고노트에 차근차근 작성해나가려 한다. 멋지게 정리할 기회가 주어져서 기쁘다.
▶ Lonely girl BAMBI
[모모도, 괭도 없다. 이제 웹진을 같이 할 사람이 없다. 웹진은 계속 하고 싶다. 어떻게 해야 하지?]
∽202studio
주니어 첫 학기 말, 판돌들에게 살짝 귀띔한 적이 있다. ‘저 디자인 좀 해보고 싶어요, 히히히’ 난 길찾기 입학하기 전부터 그림 그리는 것에 큰 흥미를 갖고 있었다. 중학교 때 아무것도 모르고 ‘만화가가 될래요’라고 말 할 정도였다(당시의 나는 소심해서 소신 있게 말할 줄 몰랐다). 나의 첫 팀 ‘글쓰기팀’도 없어졌고 나는 방학 때도, 주니어 지원 인터뷰 때도 팀 좀 만들어달라고 앙탈을 부렸다. 그리고 특단의 조치로 studio202라는 팀에 소속되었다. 기뻐야 했는데 전혀 기쁘지 않았다.
202 안에서 하는 일은 크게 어렵지도 그렇다고 쉽지도 않았다. 그러나 나는 웹진과 영상학교 같이 주력해야 할 큰 프로젝트를 몇 개씩 병행하고 있었기 때문에 지지부진, 과제를 제대로 해가지 못했다. 게다가 명함을 만들 때 내 이름 옆에 뭐라고 써야 하는지를 고민할 정도로 혼자 많이 심각해했다.
팀 안의 분위기도 내가 바랐던 것과 크게 달랐다. 같이 하는 일도 없었고 팀끼리 모여 회의하는 시간도 없었다. 마치 202는 디자인 공동체지만 하는 일은 제각각인 어떤 회사처럼 느껴졌다. 그렇게 바라보게 된 건 내 시선의 문제가 가장 컸다. 같은 명함을 만들 때 내가 먼저 묻거나 알려준 것도 없었고 상대방의 작업에 코멘트를 다는 일도 적었다. 이것은 팀 내 일정의 문제도 있었다. 202가 프로젝트 외에 함께 모이는 시간이 아예 없다고 봐도 될 정도로 우리는 잘 안 모였다. 스튜디오 시간엔 대부분 해가지 못한 과제를 하거나 202 밖에서 다른 볼일을 보는 사람이 많았다. 내가 소속감을 갖지 못했던 이유는 서로에게 관심이 없는 모습들도 차지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202 안에서 가능성을 발견하기도 했다. 1차와 2차로 나뉘는데, 1차는 첫 수요살롱이 끝난 리뷰모임 시간에 나누었던 이야기들이었다. 당시 나는 202는 왜 이렇게 삭막하고 정이 없는 건지 고민하고 있었고, 그 고민은 살롱으로 이어졌다. 살롱 때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고 202 안에서 그 이야기를 다시 해보자는 결론이 나왔다. 그리고 얘기를 시작했는데 놀랍게도 다들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각자 그것에 대한 이유나 문제점을 제시하기도 했다. 기뻤다. 2차는 광주에서 가진 중간평가모임이었다. 하자와는 거리가 먼 공간에서 202가 모여 시골 아낙들이 앉을 법한 상에 5:5미팅 중인 것 같은 구도로 앉아 평가회의를 한 적이 있다. 어떤 이야기를 나눴는지 제대로 기억하고 있진 않지만 정말 훈훈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회의를 했다. 여태 가져본 회의 중 가장 즐거운 회의였다. 웹진을 할 때는 208호에서 죽돌보다 많은 판돌들과 함께 회의를 했었다(판돌들이 웹진을 많이 신경써주셔서 고맙긴 했지만 무서운 건 어쩔 수 없었다).
202 안에서 내가 원해왔던 소속감을 가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발견했다. 그러나 그 안에서 프로젝트를 하는 건 부담이 크다. 이번학기의 경험으로 얻은 결과인데, 디자인은 내게 너무 먼 존재이다. 작은 프로젝트로 가져가는 거면 모르겠지만 202 안에서 하는 프로젝트보다 하자에서 하고 싶은 다른 일이 너무 많다. 그리고 202에 있을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내가 ‘공동작업’보다 ‘사람의 정’을 원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웹진
지난학기 나는, 칭찬받으려고 노력했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열심히 웹진‘만’ 했다. 그리고 이번학기에는 웹진‘만’에서 벗어나려고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를 모두 신청했다.
처음엔 웹진을 하고자 하는 내 마음을 의심했다. 그저 지난학기처럼 칭찬받는 게, 사람들이 띄워주는 게 좋아서 하려고 했을까, 라고.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렇지만도 않았다. 살롱이 열리거나 사회적 기업에 대한 강의들이 진행되는 모습을 보고 ‘이런 내용을 담고 싶다’라는 마음이 커졌으니까(물론 그 욕심은 10월호에 무너졌다).
기사를 쓰거나 청탁을 하는 동안 서러울 때가 많았다. 촌닭들은 공연이 생기면 모여서 회의도 하고 서로 케어도 해주는데 웹진에선 그런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다들 나보고 웹진 판돌 겸 팀장 겸 팀원 겸 매니저 겸 등등이라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그래서 무척 힘들었다. 영상학교 촬영 나가야하지, 명함 만들어야 하지, 길드회의는 내가 쉴 수 있는 시간마다 시작되지, 로마인이야기도 과제가 적은 편이 아니지…. 그런데 중요한 건 웹진과 202의 과제를 둘 다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그 때는 그게 참 신기했다. 나는 이렇게 노력하고 피곤해하는데 왜 일은 하나도 끝나지 않고 늘어나기만 하는 걸까, 라고.
지금 생각해보면 내게도 여러 가지 큰 일이 있었다. 사람과의 문제에서 많이 괴로워했고 지난학기에 했던 고민을 또 하고 있었다. 그런 고민들을 하면서 웹진이나 202를 하려고 하니까 길쭉한 내 머리가 터질 것처럼 괴로웠다. 그 때 청소년의 작업이 주가 되는 하자라는 교육공간에서 내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어려움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내가 아무리 사적인 고민으로 힘들어하고 괴로워해도 결국 해야 할 일은 확실히 끝내야 한다는 점이었다. 누구나 다 이런 고민 하겠지? 흠.
결과물이 제대로 나온 건 허브의 도쿄슈레 기사였다. 시작이 엉성하긴 했지만 허브가 정말 열심히 써줬다(웹진으로 발행되지 않아 참 미안했다). 허브는 기사가 늦어지는 것에 미안해했지만 나는 개의치 않았다. 내 기사도 제대로 나오지 않았고 내게 먼저 도움을 주려 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지난학기엔 모모가 계속 일정체크와 기사체크를 해주셨지만 이젠 그런 역할을 내가 해야 했다. 학기말로 접어들면서 웹진만 생각하면 계속 허탈한 감정만 느껴졌다. 계속 하고 싶은데 할 수 있는 처지가 되지 못한 것도, 내가 안 하고 있는 것도 참 싫었다.
무엇이든 ‘때문에’라고 단정 짓는 게 나쁘다는 건 알지만, 사실 202 안에 있던 시기의 혼란이 너무 커서 웹진을 제대로 하지 못했던 것 같다. 팀 프로젝트를 두 개씩 하겠다고 우겼던 내 과거를 어서 탈피하고 싶다. 다음 학기엔 좀 더 제대로 웹진을 하고 싶다. 이젠 고집도 오기도 아니다. 정말 하고 싶은 간절함이다.
∽그러나 Save My City
처음 컨테이너 어패어 프로젝트에 대한 공지를 보고 (역시)웹진의 기사거리로 받아들였다. 외부와 하자를 연결해주는 그 작은 박스 하나가 귀엽게 느껴졌지만 강의를 제대로 듣지는 못했다. 재미있어지려고 하면 사적인 문제가 생겨 강의를 듬성듬성 들을 수밖에 없었고, 막상 문제가 사라지고 나면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것부터 힘들었다. 그나마 이해했던 건 ‘재개발’에 대한 이야기였는데, 재개발이 한창이었던 상계동 근처에 살았음에도 내가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는 게 참 신기했다. 나는 원래 사회 문제에 관심이 전혀 없었다. 내 문제 하나도 이렇게 힘든데 사회의 문제에 귀 기울이며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해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을 보면 신기했다. 아무리 사회 문제와 내가 고민하고 있는 게 이어진다고 하더라도 그런 문제에 민감해져 괴로워하기 싫은 나 같은 사람이라면 그저 내 문제도 사회문제도 외면하게 마련이었다. 그러나 강의를 듣고 있으니 나도 우리 집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있는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얼마나 소중한 공간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컨테이너의 연장선이려나, ‘SAVE MY CITY’라는 주제로 전시를 갖게 되었다. 나의 도시를 지켜달라니, 처음부터 참 막막했다. 그 때 슬럼프가 아주 짙은 시기라 무얼 해야 할지 방황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 당황스러웠다. 학교에 와보니 나는 ‘동’팀이 되어있었고 203호의 화이트보드를 보니 방학동이 적혀있었다. 첫 마디는 ‘아…’였고 전시 후 마지막 마디는 ‘좋구나’가 되었다. 정말 진심으로 좋은 경험이 되었다.
처음엔 내가 반항을 많이 했다. 마음에 안 들면 안 든다고 하면서 대안을 제시하지도 않았다. 회의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 했고 고민이 많다는 이유로 프로젝트를 멀리했다. 그러다가 팀 안에서 ‘시+영화’를 형식으로 내건 영상을 만들게 되었다. 거의 일치하는 구조의 방 안에서 일어나 같은 일상을 보내는 지루한 삶 속에서, ‘황금도시’라는 꿈을 찾아가지만 결국 자신들이 있는 그곳이 가장 밝게 빛난다는 걸 깨닫게 되는 세 주인공의 이야기이다. 각자 담고자 했던 의미는 달랐겠지만 나는 황금도시를 그렇게 이해했다. 나도 가끔 내가 갖고 있는 것들이 가장 소중하고 가장 값진 거라는 걸 잊고 더 높은 걸 찾아 나설 때가 있기 때문이다.
영상학교를 하고 있던 터라 스텝을 맡고 싶었던 내게 ‘조연출’이라는 역할이 주어졌다. 그렇게 힘들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많은 노력이 필요했다. 시간이 짧았던 게 가장 큰 이유였으리라. 나는 지하철과 버스에서 스토리보드를 그려가며 정말 열심히 했다. 아마 한 학기동안 가장 열심히 한 프로젝트라고 생각된다. 촬영 당일 조금 늦긴 했지만 모범적으로 촬영을 했고 결과물도 순조롭게 나왔다. 촬영을 하면서 내가 소속감을 갖고 싶던 또다른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할 일 많은 죽돌들은 웹진을 직접 하지 않기 때문에 내게 관심을 가져주지 않았다. 그리고 판돌들도 웹진에 신경 쓸 정도로 한가한 편이 아니었다. 결국 외로움과의 싸움은 소속감에 대한 갈망으로 옮겨졌다. 그러나 촬영할 때만큼은 달랐다. 모두 힘내자고, 괜찮다고, 추우면 뭐 먹으면 된다고(그래서 많이 먹었다) 서로를 힘껏 케어 해주었다. 나는 특히나 허감독과의 작업에서 감동을 받았다. 초반에 감정조절을 제대로 못했던 내게 화 한 번 안 내고 나를 믿어주었다(계속 밤비가 조감독이라 좋다고 했다). 정말 고마웠다. 만약 웹진을 같이 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허브 같은 사람이 생겼으면 좋겠다, 라고 생각할 정도로.
전시 준비를 하면서 팀에 대한 의문증도 풀렸고 비루했던 학기에 활력이 생겼다. 비록 여전히 하고 있는 일이 뒤엉켜있긴 하지만 팀 체제가 확실히 다져진다면 이런 프로젝트가 많아져도 좋을 거란 생각을 했다.
▶ 낮에도 밤에도
∽밤감독입니다!
영상학교는 지난학기부터 하고 싶었던 프로젝트이다. 길찾기 때 처음으로 영상을 접해본 후 계속 관심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지난학기에 영상학교 배우로 참여해서 촬영하는 모습들을 접하게 되었는데, 그 때 영상학교를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웹진을 하며 기록사진을 많이 찍게 되었는데, 순간을 담는 정지된 화면에서의 매력과 나의 연출이 들어간 움직이는 화면에서의 매력이 어떻게 다를지 궁금했다. 학기를 계획하며 영상학교에 대한 기대는 그리 크지 않았다. 비중을 적게 두고 시작한 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이번학기에 영상학교를 할 때 가장 행복했다.
나는 가만히 앉아있으면 걱정보단 망상을 더 많이 한다. 아니, 오히려 걱정을 나의 상상 속 이미지에서 떨쳐내는 게 맞다고 볼 수 있다. 가령 내가 부자가 된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지를 상상하거나 이쑤시개가 말을 하면 어떤 식일지 추측해보는 등, 겉으로 티내진 않았지만 바보 같은 망상을 많이 해왔다. 그러면서 영상화 할 수 있는 것들을 사진이나 그림 혹은 글로 표현해보기 위해 만든 노트에 여러 목록들이 생겼다. 그리고 이번학기에 그것들을 영상화 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원씬원컷에선 사람들이 감추고 있는 욕망을 펼쳐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상해보았을 때 내가 상상했던 장면을 넣었고, 쓰리컷에선 감정을 연출해봄과 동시에 사운드 워크숍에서 배운 것을 써보았다. 그리고 가장 즐거웠던 다섯컷에선 초등, 중학교 때의 나를 각색하여 ‘호찬’이라는 캐릭터를 만들어냈고, 그 캐릭터를 괴롭히고 써먹어보는 시나리오를 썼다. 가장 큰 문제는 단편영화인데, 쉽지 않은 도전이지만 10대를 좀 더 화려하게 보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다.
단편영화의 내용은 어른들이 보기에 다소 충격적일 수 있다. 청소년들에겐 흔히 들리는 이야기이고 누구나 한 번 정도 겪어봤을 법한 에피소드가 많다. 그러나 그게 당연한 건 아닌데 어느 순간 모든 사람들이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런 어두운 이야기는 청소년이 어른들에게 굳이 말하지 않아 사회적인 문제로 퍼져나가고 있는 상황이다. 그 당연함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그런 경험으로 우리는 성장할 수 있다. 하지만 마치 성장하는 하나의 과정처럼 여겨지는 것도 곤란하다. 지금 청소년의 성문화 혹은 놀이문화가 과연 올바른 모습일까? 이번 영화를 통해 여러 가지를 던져놓고 싶다. 나는 내 주관적인 생각은 최대한 줄이고 객관적인 사실을 던져놓을 생각이다.
영상학교를 하면서 무엇이든 영화화하면 어떤 장면을 연출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습관이 생겼다. 가령 밥을 먹을 때 ‘반찬이 맛없다’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며 먹으면 혼자 먹는 기분(10시 출근이니까)도 썩 괜찮아진다. 카메라를 들면서, 영화를 보면서 내 인생이 그렇게 비루하지만은 않다는 걸 확실히 깨달았다. 영상에, 캐릭터에 내 생각과 내 고민, 내 감상을 넣을 생각을 하니 들뜨게 되었다. 갑자기 또 홍콩의 토토가 ‘분출하고 싶은 욕구로 이 영상을 찍었습니다’라고 했던 그 대답이 떠올랐다. 나도 표출하고 싶다. 내 생각들을 어서 토해내고 싶다. 이번학기에 영상학교를 선택한 걸 단 한 번도 후회한 적이 없다.
∽레이니우스
영상학교와는 느낌이 다르지만 로마인이야기도 내게 즐거움을 안겨주었다. 로마의 인물들에 대해 공부하고 다큐를 보고 토론을 하며 여러 교훈들을 접했다. 시저를 통해 리더로서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하자에서만 생각해볼 게 아니라 좀 더 멀리 나아가 생각해볼만한 가치가 있다고 느꼈다. 리더십이 뛰어나고 주장을 관철시킬 줄 아는 능력이 있더라도 자신의 생각이 곧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라고만 여기면 그것은 능력보단 고집이 될 뿐이다. 그리고 네로처럼 책임을 져야 할 문제들이 앞에 쌓였음에도 자신의 문제만을 바라보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나도 약간 네로처럼 생각할 때가 있는데 그를 보며 참 좋은 걸 깨달았다.
로마인이야기에서 나의 이름은 ‘레이니우스’이다. 나를 캐릭터로 만들어 논픽션으로 이야기를 짓는 게 이번학기의 목표이다. 프로젝트 구성원들을 분석해 캐릭터화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그 때 하자 안에서의 역할과 연결시켜 만들었다. 그렇게 만들고 나니 나는 또 소식통이 되어있었다. 하하, 아무렴 어때. 그저 즐겁기만 한 프로젝트는 내게 도움이 안 될 수도 있지만 정말 ‘아무렴 어때’이다.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도 중요하니까.
▶ 내가 너무 늦었나
∽I'm So sorry 앤드류
지난학기 내 에세이의 글로비시 항목을 읽어보았다. 아, 글로비시를 시작하기 전 읽어보지 않은 게 후회스럽다. 서밋 때 충분히 활용해보았지만 역시 생활영어는 바디랭귀지가 필수이다. 나의 온 신경과 땀방울을 다 써야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다. 참 신기하다. 나는 내가 어떤 단어를 썼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데 상대방은 그걸 알아듣고 내게 답한다. 그래서 글로비시 때 제대로 다시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그래, 학기가 시작되고 글로비시를 할 때가 다가오면 늘 다짐하지. ‘제대로 다시’
낯선 외국인 앤드류가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앤드류의 첫인상은 ‘두 얼굴의 사나이’였다. 한국어를 할 땐 그렇게 친근한 앤드류가 영어만 쓰면 외국인으로 변했다. 우리가 영어를 쓸 때와 한국어를 쓸 때가 다른 것처럼, 앤드류도 참 달랐다. 수요일 오전이면 앤드류에게 ‘바미 안녕(글로비시 시간에 나의 이름은 ‘밤비’가 아니라 ‘바미’였다)’이라는 인사를 듣는 것으로 수업이 시작되었다. 앤드류는 우리를 가르치는 것에 굉장히 힘들어했다. 왜냐하면 수요일 언어의 날에 대부분의 죽돌들은 글로비시를 빼면 듣는 게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글로비시만 끝나면 집에 가도 됐다. 사실 그런 상황이면 집중해서 듣는 게 정상인데 나는 오히려 더 게을리 들었다. 심지어 수요일에는 조금만 아파도 지각했다. 지각하면 할 게 없어 일찍 돌아갔다. 그게 일상이 되었다.
처음엔 수업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는 핑계로 건성건성 들었다. 일단 앤드류가 한국말을 잘 못 알아듣기도 했고 갑자기 오바마의 연설을 듣고 내 생각을 말해오는 거나 뉴스를 보고 발표를 준비하는 과제가 생겼다. 앞서 말했지만 나는 뉴스에 별 관심이 없다. 방화가 자주 일어나는 것, 중학생 살인사건 같이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그리고 소문이 많이 나있는 얘기만 들어도 골치가 아픈데 매일 글로비시 숙제하려고 뉴스를 보는 건 정말 내가 나를 괴롭히는 일이 되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마지막 과제인 ‘free writing’을 받았을 땐 정말 즐겁게 숙제를 했다. 제각각 다른 팀에 속해있고 하고 있는 생각과 관심사가 전혀 다른 죽돌들에게 free로 글을 써오라고 하니 흥미롭고 다양한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이런 식으로 글로비시 수업을 한다면 한 학기동안 영어실력이 세 배는 늘 것 같다. 그래도 수업 제대로 참여하지 않았던 건 ‘I'm Sorry 앤드류’이다.
한 학기동안 참 부단히도 어린행동을 많이 했다. 충격적이고 힘들었던 사건들로 조금은 똑똑해졌다. 다음 학기의 목표는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쓰는 것이다. 몇 가지 계획해둔 재미있는 주제가 많다. 어서 빨리 쓰고 싶다. 이젠 팀이 없어도 혼자서 즐겁게 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시 모르지. 내가 너무 재미있게 하면 다른 사람들이 같이 껴달라고 할지도. 이제 더 이상 정체성의 혼란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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