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메일함 정리하다가 발견한 옛날에 쓴 글 두 개.
애매모호하다.
어찌 보면 아침 드라마의 소재로 써먹어도 괜찮을 법한 이 소설의 스토리는 이상하게도 나를 계속해서 끌어당겼다. 지금 내가 연애의 절정을 달리고 있기 때문인 걸까? 아니면 곁에 있던 사람의 죽음을 경험해보지 못한 나의 호기심 때문인 걸까?
애매모호함의 절정
소설의 첫 부분부터 중간부분 까지는 그저 ‘야한 말이 많이 나오는 소설’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야한 대목이 나올 때는 얼굴을 붉히게 되거나 다음 장면이 나오도록 대충대충 읽었다. 사실 인간이라면 누구나 경험하게 되는 상황이 나오는데도 지금의 나로서는 얼굴을 붉힐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소설의 중간부분이 지나고 나오코가 아파서 병원에 들어갔을 때 즈음, 나는 와타나베와 미도리의 관계를 생각하게 되었다.
이 애매하고 벗어날 수 없는 최악의 삼각관계를 와타나베는 대체 어떻게 풀어나갈 것인지 궁금해지기도 했다. 나오코를 사랑한다 하여 미도리를 사랑하지 말란 법 없고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 하여 다른 여자와 잠을 자선 안 된다는 법도 없다. 그러나 나는 그 상황들이 눈엣가시처럼 느껴졌다. 내가 보수적인 건 아니다. 자신의 연인을 사랑한다면 어째서 다른 사람과 잠자리를 나누는 것인지. 정성들인 편지를 쓰고 멀리 떨어져 있어도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면 어째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러나 생각해보자. 내가 과연 와타나베의 상황이었다면, 내가 그처럼 행동하고 생각하는 게 오랜 기간 지속되었다면 나도 두 여자를 사랑하고 다른 여자와 잠자리를 가졌을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정말 애매모호하다.
좋아하는 사람의 죽음
일반학교를 다니던 때, 같은 반 아이가 결석한 적이 있다. 하루 결석하는 것쯤이야 대수롭지 않게 넘어가지만 그 친구는 4일 동안 학교에 나올 수 없다고 했다. 이유인즉슨 친할머니께서 상을 당하셔서 자리를 지켜야 했다는 것. 사실 그 때 처음으로 사일 제의 개념을 알게 되었고, 죽음이란 나에게 굉장히 가까운 존재란 것도 깨달았다. 와타나베도 그랬다. 실제로 내 눈앞에서 경험하지 않는 이상 죽음은 머나먼 존재처럼 느껴진다. 나는 아직도 죽음에 대해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다.
와타나베는 나와 두 살 차이밖에 나지 않았음에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경험했다. 그는 겉보기에 예의바른 행동을 하고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굉장히 잘하는 듯하다. 이것이 그의 고통이 부화한 ‘어른스러운’ 행동일까. 그는 기즈키가 죽었을 때 친구를 잊지 못해 나오코도 피하는 경향이 있었고 그녀를 좋아하는 자신의 마음에 거부감을 느꼈던 것 같다. 누구나 그랬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기즈키의 죽음으로 인해 꼬여버린 와타나베와 나오코의 관계는 이해가 갔다.
만약 와타나베가 나오코의 죽음에 대해 정리하지 않고 미도리에게 갔다면 나는 미도리에게 찾아가 그와 당장 헤어지라고 했을 것이다. 나오코와의 관계도 죽음도 정리하지 않고 미도리에게 회피하듯 찾아가는 건 상대방을 괴롭게 하는 일이라 생각한다. 나오코가 죽지 않았다 해도 회피하듯 다른 사람을 찾는 건 상대방을 괴롭게 하는 일인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와타나베에게 칭찬을.
정신적인 사랑, 육체적인 사랑
나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다른 여자와 밤 노동을 한다면 그를 가차 없이 보내버릴 것이다. 지금 내가 생각하기에 연인은 서로가 ‘너의 몸도 마음도 나의 것이야. 물론 우리 사이엔 적당한 배려도 필요해’라고 끈임 없이 외치는 관계인 것 같다. 내가 와타나베를 사랑하고 그도 날 사랑한다는 가정 하에, 그가 욕구를 참지 못하고(혹은 심심해) 괴상한 선배를 따라가 다른 여자를 꼬셔 호텔에 갔다. 그는 나를 실망시키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이 소설의 주인공에게 정감이 가지 않는다. 소설 안에서만 몇 명의 여자와 잠자리를 함께한 건지…. 아무리 나중에 절제했다고 해도 지금 난 그의 과거를 용서할 수 없다.
사실 말로는 이렇다, 저렇다 썼지만 아직 이 소설의 애매함은 계속 나를 건드리고 있다. 앞으로 내가 경험해보아야 할 많은 것들을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주었다. 사실 지금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문제이다. 사랑, 죽음. 사춘기가 지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20대가 될 준비를 해야 한다. 웹서핑을 하다가 문득 보게 된 글의 필자는 ‘인간은 불균형과 균형 속의 애매함을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라고 했다. 그가 한 말이 모두 옳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대~충’ 맞다고 가늠하고 있을 뿐이다.
5년 정도 지난 후 20대 초반이 지날 때 즈음, 다시 한 번 이 소설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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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모에게 빌렸던 '상실의시대-노르웨이의 숲' 독후감. 내 글을 보시곤 '넌 문학이 필요해, 책 좀 많이 읽어'라며 빌려주신 소설. 그래서 해변의 카프카도 읽었는데....ㅎㅎㅎ
불과 몇 달 전에 쓴 글임에도 불구하고 벌써 연인이나 사랑 등에 대한 가치관이 참 많이 변했다. 10대가 이래서 좋기도, 싫기도 하다. 나는 아직 10대. 1년 남았다.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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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자.
내가 원하는 글쓰기는 자료를 조사하며 그것에 대한 글을 쓰는, 공부하는 글쓰기이다. 이러한 글쓰기로 인해 알고 싶어 하는 자료를 조사할 수 있고, 그 자료들을 읽는이(독자)들과 함께 공유할 수 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독자와 필자가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이번 주니어 1학기에서 개인 글쓰기를 한다고 했을 때, 매일 쓰던 글쓰기가 아니라 조금 색다른 글쓰기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너무 정반대의 글쓰기를 하게 되면 나 자신도, 읽는 사람도 혼란스러울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 자신이 정리되지 않은, 아직 습작 같은 글쓰기를 하면 읽는 사람들은 나의 글을 읽으며 혼란스러워 할 것이고, 나 또한 그러한 상황을 원하지 않기 때문에 이미 조금은 익숙한, 해왔던 글쓰기를 색다른 방향으로 하고 싶다는 결론을 갖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자료를 조사하여 그에 대한 나의 느낌과 감상,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와 판단하는 글쓰기를 해왔다. 하나의 자료에 대해서 나 혼자 마구 상상하여 그 결과를 집어넣고, 그것들을 통해 그 자료가 내게 있어 어떤 의미인지 이야기하는 방식이다. 그 외에는 기록, 후기 등의 다소 의무적인 글쓰기를 해왔다. 그래서 이번 글쓰기 작업에선 의무적이지 않은, 내가 진정 원하고 즐길 수 있는, 그로 인해 읽는 사람도 내가 ‘즐긴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 확실한 글쓰기를 하고 싶다.
그래서 어떠한 주제를 가지고 어떠한 글쓰기를 할지 고민을 많이 했는데, 먼저 주제에 대해서 생각했다. 그 주제를 하나 만들고 나면, 그 주제를 조사하며 다른 방향으로 보고, 다른 생각으로 보며 어떠한 주제 하나가지고도 많은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직 주제는 없고, 구체적으로 ‘사람’을 할지 ‘사물’을 할지 정하진 않았지만, ‘사람’을 주제로 다루고 싶다. 생각해둔 주제는 ‘10대 청소년 창업을 하는 사람들’, ‘학교를 자퇴하고 대안학교에 가는 학생들’, ‘자신이 하고 싶은 일만 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나왔다. 모두 무언가 하나씩 부족하고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점이 있는 것들인데, 하나의 주제를 조금 더 확실하게 잡고, 그 주제만으로 글을 쓸 계획이다. 너무 폭이 넓으면 써야 하는, 알아내야 하는 주제들이 많아지고, 알아내야 하는 것들이 많아지면 현재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에 지장을 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현재의 계획은 생각했던 주제들을 조금 더 구체적이고 확실하고 주제만 봐도 글의 성격과 내용을 알 수 있는, 그런 주제를 찾는 것이다.
그리고 ‘분석하는 글’을 쓰며 내가 변화되길 원하는 것, 얻고 싶은 것은 너무 직설적이어서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는 글투를 고치는 것이다. 고친다는 게 아예 현실적이고 직설적인 글을 안 쓰겠다는 게 아니라, 어느 정도 필요할 때는 간접적인 문장을 쓰며 읽는 사람들이 이해가 잘 가는 글을 쓰고 싶다는 것이다. 그리고 직설적인 것을 나의 특징이라고 하며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그런 글을 쓰기에는 정말 너무 직설적이어서 일단 간접적인 글을 써보고, 나에게 맞는 글을 찾을 예정이다. 그래서
이러한 글을 쓰기 위해서는, 비평동무를 애타게 찾는 사람, 비평동무에 대해서 잘 아는 사람, 비평동무를 그다지 찾고 있지 않은 사람, 직설적으로 말하는 사람, 너무 말을 돌려서 하는 사람 등을 찾아 인터뷰를 해야 할 것이다. 또, 인터넷 매체를 통해 비평하는 글을 찾아보아야 하고, 내가 쓰고 싶어 하는 글을 쓴 사람과 그 글을 찾아보아야 한다.
이런 글쓰기 과정을 통해 너무 현실적이고, 너무 직설적인 내 말투와 글투를 고쳐보고 싶다.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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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썼는지 기억도 안 나는 글. 지난학기 개인글쓰기 프로젝트 때 기획하는 과정에서 정리를 위해 쓴 글로 추정된다. 흠. 바보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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