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학, 마을과 연결되는 지점
인문학, 마을과 연결되는 지점
김찬호 선생님은 하자에서 인문학을 가르쳐오고 있다. 편집국은 하자에서 인문학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가고 있으며 제일 처음으로 인문학과 마을을 관련지어보면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인문학과 관련해서 김찬호 선생님과 인터뷰를 하게 되었다. 필자는 하자와 인문학, ‘하자마을’에 관한 생각을 물었다.
Q 하자에서 인문학을 가르치는 이유가 뭔가?
A 하자쪽에서 그렇게 해달라고 했다.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도 많이 강의하러 다닌다. 하자는 인문학을 가르치기 좋은 곳이자 실험 대상이다. 시설이 잘 되어 있고 죽돌들은 내 강의를 듣는 데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따로 팀끼리 모이는 등 다른 곳과는 다르게 독특한 점이 많다. 무엇보다도 시험이 없다. 인문학은 시험 걱정하면서는 제대로 배울 수 없다.
Q 하자센터와 죽돌들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나?
A 균형을 찾으려고 하는 것 같다. 가끔 균형을 잃는 모습도 보인다. 죽돌들은 과감하게 도전해 보는 것이 중요하다.
Q 죽돌들의 학습 태도에 대해 아쉬운 점이 있나?
A 정리하지 않고 그냥 들은 다음 흘려버리는 경향이 있는데, 되씹을 필요가 있다. 또 산만하고 자신감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건 하자 죽돌뿐만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런데, 남을 의식하지 않고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
Q 인문학을 배우는 데 있어서 아무래도 정규학교를 다니지 않은 점이 걸림돌이 되지는 않나? 죽돌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나? 아무래도 지식이 일정 수준이 되어야 더 높은 곳으로 갈 수 있지 않은가?
A 인문학… 그런 점이 있기는 하다. 죽돌 마다 개인차가 있는 것 같다. 그러나 수준이 낮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꼭 일정 수준이 돼야한다는 법은 없지만 기본 지식으로 수학만은 꼭 배워야 한다고 생각한다. 최소한 중학교 수준은 돼야 인문학적 사고가 가능하다고 본다.
Q 인문학이 ‘마을’로 가는데 어떤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나?
A 간단하게 답하겠다. 인문학은 삶의 의미를 탐구하고 실현하는 공부다. 마을은 생활을 나누면서 즐거움을 창출하는 공간이고. 인문학적인 마인드가 있어야 가까이에 있는 관계들을 소중하게 가꿔갈 수 있고 마을이라는 공간을 풍부한 감성과 체험으로 채워갈 수 있다.
Q 하자가 마을이라고 생각하나?
A 마을의 성향이 강하다. 하자는 마을을 경험하고 마을을 기반으로 함께 배우고 각자 성장하는 관계를 확산시키는 실험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함께 배우고 성장하는 곳이 되어야 한다. 우리 사회는 ‘마을’같은 분위기가 없어서 소외되고 고통 받고 절망하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그러지 않아도 된다는 걸 보여줘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세심한 배려가 필요하다. 사람은 마을을 만들기에 힘든 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마을을 원하는 모순된 존재다. 노력이 필요하다.
Q 김찬호 선생님이 생각하는 마을의 모습은 무엇인가?
A 마을은 자기를 편안하게 나타낼 수 있어 잘난 체 같은 게 필요하지 않으며, 요구할 필요가 없고 요구하기 전에 먼저 알아주는, 모여 살지 않아도 함께 사는 그런 곳이다. 사람은 소속감을 가지며 살맛을 느끼고 돈보다 인정받는 걸 좋아하는데, 마을은 그런 소속감을 갖게 해주고 인정해주는 곳이라 생각한다.
Q 왜 굳이 인문학인가? 인문학만이 그런 점을 가진 건가?
A 인문학은 핸드폰으로 치면 디자인과 같다. 우리나라 경제가 힘든 이유가 다들 돈 벌 생각만 하기 때문이다. 경제는 돈이 아닌 자신을 좇아야 성장할 수 있다. 뭐든 재미, 의미 찾는 능력이 중요하다. 인문학은 그 점을 가르친다. 사람들이 뭘 원하는지 캐치하는 능력. 영어 아무리 잘해도 인문학이 바탕에 없으면 감동 못준다. 앞으로의 시대는 감동이 관건이다. 요즘도 그렇다. 그게 좀 싸구려라 문제지. 인문학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경쟁력이 있는 거다.
이날 인문학과 마을 사이에 연관성이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인문학을 배움으로서 마을의 기반을 만들어나가는 능력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까닭이었다. 김찬호 선생님의 말에 따르면 마을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문학적인 마인드’를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그 ‘인문학적인 마인드’는 타인을 배려하고 자신을 알고자하는 자세를 말한다. 그것은 인문학을 배우게 되면서 얻을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인문학은 ‘마을’을 실현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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