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학교 지도 그리기 - 길찾자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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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매년 봄, 꽃씨파티가 열린다. 꽃씨파티라는 건 봄을 맞아 꽃씨를 뿌리는 행사인데, 각자의 화단에 직접 꽃씨를 뿌리고 가꾼다. 매일매일 물을 주지 않더라도 애정을 가지고 하루에 한 번씩 말을 걸어주거나 신경을 써주는 것만으로도 꽃은 피어난다고 했었다. 하지만 관심을 가져주고 돌봐주는 것은 은근히 어려운 일이라 결국 내 꽃은 피어나지 못했다.
겨울이라 주위의 산과 밭들이 어두운 색을 내뿜고 있는 간디 학교 운동장 한 편에는 유일하게 파릇파릇하게 살아 있는 밭이 있다. 학생들이 직접 가꾼 것 같이 보이는 밭은 무언가가 나란하게 심어져 있었다. 배추로 생각되는 밭은 비닐로 덮여져 있지도 않았지만 밭 근처 한쪽에 놓여있는 목장갑과 농기구로 여전히 누군가가 신경을 써 주고 돌봐주고 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다.
나는 매 기사마다 돌봄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돌봄이라는 건 나에게 어떤 의미일까. 하자작업장학교의 교장인 조한혜정 선생님은 위험사회로 접어든 지금, 우리에게는 돌봄이라는 것이 가장 필요하다고 했다. 그 말이 와 닿았던 이유는 내가 다른 사람들에게서 받은 돌봄을 내 주위의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기 때문인 것 같다.
내가 혼란스러웠던 시기, 퀼트 프로젝트와 담임선생님, 엄마, 그리고 친한 친구에게서 따뜻함을 느꼈다. 혼란스럽고 힘들었던 나에게 무언가를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것에서 나는 많은 위로와 위안을 받았다. 그렇게 마음이 편안해지니 다른 힘든 사람들에게 눈길이 갔다. 친한 친구가 집안 관계로 많이 힘들어 할 때, 그 친구에게 내가 받았던 따뜻함을 나누어주고 싶었던 것처럼. 돌봄이라는 건 누군가에게 자선사업을 하 듯 퍼주는 것이 아니라 서로 기분 좋은 에너지를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 들었다. 거창하고 대단한 일이 아닌 함께 나누고 진심으로 관심을 가져주는 일, 그런 작은 일로도 우리는 함께 기분 좋고 건강한 관계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김단비 하자작업장학교 글쓰기팀.
허그루 금산간디자유학교 3학년. 1학년 때부터 동아리 몸짓패에서 활동.
김단비/ 간디학교 ‘몸짓패’ 이름은 많이 들었다. 하지만 공연을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재미있고 흥이 나서 기억에 많이 남는 무대였다. 공연을 봉여준 ‘몸짓패’에 소개를 부탁한다.
허그루/ ‘몸짓패’의 이름은 날아오르다 할 때의 비상(飛上)이고, 보통 집회가 열리는 곳에서 볼 수 있는 민중가요 혹은 투쟁가에 맞춰 몸으로 표현하는 동아리다. 그래서 약간은 선동적이게 하는 공연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비상’ 같은 경우는 부드럽고 차분한 몸짓을 더 선호하고 있다. 지금 15명에서 20명의 친구들이 활동을 하고 있고 학교에서 가장 인기가 좋고 유명한 동이리다.
김단비/ 간디학교 동아리하면 밴드부와 몸짓패의 인기가 쌍두박차를 이룬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하. 많은 학생들이 ‘비상’에 속해있는데 신입단원을 모집할 때 오디션을 보기도 하는가?
허그루/ 오디션은 안 본다. 사실 간디학교 3년을 다니면 모두가 ‘비상’에 속해있다는 이야기를 하곤 한다. ‘비상’에 관심이 있고 하고 싶은 학생들이 모여서 운영되는 동아리다.
김단비/ 들어오는 단원이 많으면 반대로 연습이 고대서 기대했던 바가 아니라서 중간에 그만두는 학생들도 있을 것 같은데…
허그루/ 사실 연습량이 많지 않고, 그렇다고 몸짓도 어려운 것이 아니기 때문에 중간에 나가는 사람은 없다.
김단비/ 동아리모임 시간에는 무엇을 하는지?
허그루/ 새로운 몸짓을 배우거나 축제나 공연이 잡혀있을 때는 공연 내용을 정하고 곡을 선곡한 뒤 집중적으로 연습을 한다.
김단비/ 동아리모임 시간마다 새로운 몸짓을 배운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디서 배우는가?
허그루/ 대학교에서 몸짓동아리에 속한 학생들에게 배우면 좋겠지만 학교가 시골에 있고 배우러 나가기에도 불편해 직접만나 배우는 것에 어려움이 있다. 그래서 인터넷에서 몸짓동영상을 찾아 연습한다.
김단비/ 그럼 ‘비상’의 학생들이 모여 직접 안무를 짜지는 않는가?
허그루/ 예전에 한번 해보려고 했다. 하지만 동아리활동과 몸짓을 만드는 것에 대한 활동이 잘 안 돼서 시도에 그쳤다. 하지만 나중에는 직접 안무를 만들어서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김단비/ 인터뷰하기 전 이제 막 몸짓패 활동을 시작한 친구가 직접 만든 안무가 인터넷에서 배운 안무 사이사이에 들어간다고 이야기를 했다. 어떤 부분에 들어가나?
허그루/ 아무래도 영상으로만 몸짓을 배우니깐 확실하지 않은 동작들을 빼내고 그 노래에 맞는 몸짓을 만들어 하고 있다.
김단비/ 전 기수의 선배들이 전해주는 몸짓들도 있는가?
허그루/ 물론 있다. 선배들이 전해준 몸짓들이 많아서 돌려가면서 공연을 많이 했서 질리기도 했다. 그래서 계속 새로운 것을 배우고 있다. 그래도 여태껏 가장 인기가 있던 몸짓은 FTA노래 우리들은 빠라빠빰이라고 부르는데 가장 역동적인 곳이라 질리지도 않고 좋다.
김단비/ 몸짓연습을 하다 노래에 나오는 내용을 가지고 한번쯤 이야기를 나눠 봤을 것 같은데 그런 경우는 없었나?
허그루/ 있다. 단지 춤추는 것이 아니라 몸짓으로 정치적인 것을 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노래가 담고 있는 의미를 잘 생각해보자는 이야기가 많이 나왔다. 그 외에도 노래내용에 대한 의견을 나누기도 한다. 예를 들어 한미 FTA 같은…
김단비/ 아. 이제는 몸짓에 대한 이야기 말고 노래에 대한 것도 궁금해지는데 솔직히 내 또래의 친구들은 민중가요를 많이들 모르고 있다. 나 같은 경우도 잘 모르는 편이다. 월요일 비상의 공연을 보다 텔레비전에서 들었던 휘파람 노래가 나와 “어?”하면서 익숙했던 노래가 민중가요 속한다고 해서 놀랐다.
허그루/ 어떻게 보면 민중가요는 소위 운동권의 노래라고 할 수 있다. 사회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은 보통 사회적 약자, 소수자로 분류 된다. 물론 아닐 수도 있지만 하하. 민중가요는 통일을 염원하거나, 전쟁을 반대하고 평화로운 세상을 원한다고 하는 마지막으로 비정규직 혹은 차별 없는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의 마음이 고스란히 들어간 노래라고 할 수 있다.
김단비/ 그렇게 보면 보통사람들은 가요와 트로트 등의 대중가요에 귀가 열려있어서 민중가요에 대해 많이 모르는 것 같다.
허그루/ 그렇다. 집회에 참석해본 사람이 아니면 잘 모르는 편이다.
김단비/ 이런 노래는 어떻게 선곡을 하는가?
허그루/ 사람들이 민중가요를 많이 안 듣긴 하지만 ‘PL송’이라는 민중가요 홈페이지가 있다. 거기서 노래 들어보면서 좋은 노래, 그리고 ‘비상’ 동아리에 어울릴 것 같은 노래를 고른다.
김단비/ 1학년 때부터 ‘비상’에서 동아리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처음 동아리에 들어와 몸짓을 배우면서 민중가요에 대한 낯설음 같은 것은 없었나?
허그루/ ‘비상’에 들어오면서 몸짓, 민중가요의 의미에 대해서 모르는 애들이 많다. 나 같은 경우는 아버지께서 노조활동을 하셔서 어렸을 때부터 집회나 노동자대회에 많이 참여했었다. 그래서 많이 익숙한 편이었다.
김단비/ ‘비상’은 간디학교에서만 공연을 하고 있는가?
허그루/ 예전에 방송통신대학에서 강의 중에서 대안교육에 대해 배울 때 몸짓패 공연을 했었고, 산청간디학교와 동아리 교류를 위해 합동공연도 했었다.
김단비/ 그렇다면 직접 집회에 나가서 몸짓패 공연을 해본 적은 있는가?
허그루/ 아직까지는 없다. 지난학기에 집회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는데 트러블이 생기는 바람에 취소되었다.
김단비/ 집회공연의 기회가 또 올 것이다. 그 때 더 좋은 공연을 보여주길 바란다.
허그루/ 그렇지만 이제 곧 졸업을 하기 때문에 할 수 있을까? 하하. 언젠가 집회공연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김단비/ 이제 인터뷰를 끝 맞춰야 되는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라. 몸짓패에 대한 이야기도 괜찮다.
허그루/ 몸짓뿐만 아니라 민중가요를 묻어 나오는 민중의 삶에 대해서 관심을 가졌으면 좋겠고, 무엇보다 대중가요도 대중가요지만 민중가요에도 귀를 열었으면 좋겠다.
김단비/ 갑작스럽게 인터뷰 요청해서 미안하고 좋은 이야기 많이 해줘서 고맙다.
마지막 인터뷰를 끝내면서 “대중가요도 대중가요지만 민중가요에도 귀를 열었으면 좋겠다” 이야기해 준 허그루학생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자신이 원하는 것들을 쟁취하기 위해 길거리에서 집회를 참여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 나서 몸짓과 민중가요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알면서도 무관심하던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민중가요가 무엇인지 모르던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필자는 후자에 속한다. 하지만 이번 허그루학생의 인터뷰를 통해 민중가요에 대해서 알게 되었고, 더불어 금산간디학교 몸짓패 ‘비상’에 대해 앞으로는 관심을 가지고 응원하려고 한다.
현재, 간디자유학교에서는 학년제 대신, 학기제를 운영하고 있다. 3년 과정을 학년과는 관계없이, 학기(6개월)로 나눈 것으로 각 학기 마다 다른 미션을 수행한다. 첫 학기에는 국토순례와 지리산 종주 등 다양한 체험학습을 통해 자기 탐색과 해방의 학기를, 또 3-4학기에는 해외에 나가 어학연수와 이동학습을 진행하며 책으로만 배우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는 체험 학기를 경험한다. 또 5학기에는 본격적으로 진로 구상을 시작하여 탐방, 인턴십을 진행하는 등 6학기 전체가 알차게 짜여있다.
학기 미션과는 관계없이 다양한 수업들도 진행된다. 영어, 세계사, 과학, 수학 등 기본 교과와, 농사, 인권, 심리, 문화기획 등 학생들의 적성에 맞춘 문화수업을 함께 연다. 이런 수업은 학년과 상관없이 학교의 모든 학생이 선택 해 들을 수 있고, 수강하고자 하는 학생이 한 명이라도 있다면 폐강 없이 한 학기동안 진행된다.
마지막 학기인 6학기는 졸업 학기로 졸업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3년을 채우면 졸업장을 주는 일반학교와는 달리, 간디학교는 졸업 논문·작품을 발표해야 졸업 할 수 있다. 졸업 논문·작품의 주제는 자유로우며 분량에도 제한이 없다. 이금화(19)학생은 자기가 짠 안무로 춤을 선보이고 한동희(19) 학생은 문화기획에 관한 논문을 쓰는 등, 학생들은 3년 동안 생활하며 관심을 갖고 연구했던 결과를 발표한다. 졸업 논문으로 자서전을 쓴 최영준(19)학생은 논문을 쓰며 “논문을 쓰며 학교에서 생활했던 3년을 되짚어보게 되고, 나의 변화, 습관들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그러한 글을 쓰는 과정이 내게는 성장이었다.”고 졸업 논문 제도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논문·작품 발표는 간디학교뿐만 아니라 이우학교, 하자작업장학교 등 많은 대안학교에서 하고 있는 졸업 제도다. 학교에서의 경험, 활동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논문은 인문학적 시각을 기르고 자기 학습을 정리 할 수 있는 좋은 결과물이다.
‘간디학교 학생들이 꿈꾸는 직업’을 생각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NGO, 생태운동가 등의 사회운동가를 떠올린다. 간디학교의 교육이념, 활동의 영향 때문이다.
그러나 사실 간디학교 학생들이 꿈꾸는 직업은 굉장히 다양하다. 카피라이터, 영화감독, 연기자, 프로그래머 등 또래의 일반학교 학생들이 꿈꾸는 직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친구 때문에 밴드 활동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기타제작에 관심이 생겼다. 기타 회사에 도공으로 들어가고 싶다”. 이정환(19) 학생은 기타장인이 되는 것이 꿈이다. 지금은 학교 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기타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대학에 갈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게 없다. 기타 도공이 되는데 필요한 자격증을 따고 현장에서 배우고 싶다” 또 카피라이터를 꿈꾸는 이윤아(19) 학생은 “한국의 광고는 너무 상업적이고 창의적이지 못하다. 어떻게든 잘나가는 연예인만 나오게 하면 된다는 식이다. 그런 식의 교육을 하는 한국대학에서 배우고 싶은 생각이 없다. 아이디어로 승부하는 외국에서 배우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에 진학 할 의사가 있다는 학생들도 있었다. 한동희(19)학생은 “취업 세계에서는 아직까지 대학 졸업자만이 인정받는다. 고졸 경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이론을 공부한 뒤 현장에 나가겠다.”며 대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또 곽제규(19) 학생은 대학에 가는 이유에 대해 “많은 이유가 있지만, 지금 당장 취업 전선에 뛰어 들기가 두렵다. 학생이라는 이름으로 4년 더 보호 받고 싶은 것 같다”며 대학에 진학하지 않는 것은 불안과 곧 연결된다고 말했다.
유학, 대학, 취업 등 다양한 직업군들이 나왔지만 좌담회에 참여한 학생 중 80% 이상이 한국의 대학에는 가고 싶지 않다고 답했다. 대학보다 더 재미있고 유익한 공부를 할 수 있는 길이 많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런 통계는 학생 대부분이 대학에 갈 것이라고 답한 영산성지고등학교, 이우고등학교와는 상반되는 모습이다. 또 대학에 가지 않는 것이 불안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대부분의 학생들이 크게 불안하지 않다고 답했다.
많은 십대들이 고등졸업 후 대학으로 진학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지만 간디자유학교 학생들은 대학도 많은 선택의 길 중 하나로 여긴다. 또 대학에서 공부하는 것 못지않게 현장을 통해, 책을 통해 배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인다. 이러한 자신감은 입시 공부를 위한 기계가 되어가는 공교육의 친구들 보다 자신이 훨씬 더 진정한 배움을 하고 있다는 믿음을 기반으로 한 자신감이다. 또한 간디자유학교에서 생활하며 다양한 학습들을 하며 자기에게 맞는 학습법을 찾은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간디자유학교 학생들의 선택에 영향을 주는 또 하나의 요인은 이미 7년 전 사회로 뛰어든 선배들이다. 하자작업장학교, 이우학교와는 달리 간디학교는 10년 전 개교해 이미 많은 졸업생들을 배출했다. 물론 간디자유학교의 졸업생들은 아니나 같은 교육 이념을 가지고 비슷한 학습을 해왔기에 다른 간디학교를 졸업한 학생들에게도 ‘선배’라는 말이 어색하지 않다.
한국 첫 번째 대안학교인 산청간디학교의 졸업생들은 이미 이십대 중반을 훌쩍 넘어 자기 작업을 하고 있다. 대학으로 진학한 졸업생도 많지만 대학을 가지 않거나, 대학을 중도 포기한 선배들도 자기 길을 찾아 멋지게 생활하고 있다. 이런 선배들이 간디학교의 학생들에게 좋은 역할 모델을 하고 있다.
많은 대안학교 학생들이 진로 공통점은 사회학자, 교사 등 이론을 공부해야하는 직업을 꿈꾸는 학생들은 대개 대학을 지망하지만 가수, 댄서, 연기자, 기타공인 등의 예술가를 꿈꾸는 학생들은 대학 외에 다른 길을 찾고 있다. 또 지방의 기숙사 학교에 비해 도시의 통학형 학교 학생들이 더 많은 불안에 노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안학교 졸업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라 백수 생활을 하고 있는 학생의 안타까운 상황은 누구의 책임인가? 학교는 어디까지 교육할 수 있는가? 학교에서 키워내고자 하는 아이들은 어떤 아이들인가?
지금까지 탐방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고민 할 수밖에 없었던,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게 풀리지 않았던 문제가 바로 학교의 역할과 책임이다.
물론 대안학교가 졸업생들의 미래를 책임 질 수는 없다. 학교는 학생들을 교육하는 곳이지 졸업생들의 미래를 보장해주는 보험이 아니다. 그러나 대안학교와 학생들의 졸업 후 진학/취업/학습이 분리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많은 학생들, 부모들이 이러한 이유로 대안학교 입학을 주저하고 대안학교에 입학한 뒤에도 가정에서 갈등을 겪고는 한다.
대안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졸업 후 자기 길을 찾아 나가도록 교육할 필요가 있다. 대학만이 길이 아니라고 외치는 대안학교라면 학생이 졸업 후 사회로 뛰어들었을 때 자기가 해왔던 학습을 거름으로 무언가를 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말은 대안학교가 직장을 구해주거나 졸업생을 계속 챙겨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물과 사료를 떠먹여주는 온실 속 화초가 아니라, 자신이 어느 정도의 빛과 물, 비료를 필요로 하는지 알고, 필요에 따라 자기 길을 갈 수 있는 아이로 성장 할 수 있도록 아이로 길러내야 한다는 이야기다. 학교는 학생이 고민을 놓지 않을 수 있도록 자극을 주는 공간이어야 한다.
대안학교 학생 80%가 대학에 진학한다는 통계가 나왔다. 대학 진학은 문제가 되지 않지만, 학생들의 진학이 뚜렷한 목표와 확신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혹 친구 따라 강남 가듯 대안학교 이후 바로 대학으로 진학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주의 깊게 살펴 볼 필요가 있다.
간디학교는 어떤 곳일까? 마하트마 간디의 비폭력 사상을 지향하며 공교육의 입시교육을 거부하고 공동체적 생활과 소수의 개성, 창의성을 존중하며 몸과 마음이 올바르게 자라날 수 있도록 열린교육을 지향하는 대안학교.
우리나라 대안교육의 상징, 간디학교.
<대안학교 마을만들기> 팀은 2007년 12월 17일 충청남도 금산군에 있는 금산간디학교를 방문했다.
답답한 차안에서 다른 팀원들에 끼어서 창밖을 봤을 때 지나가는 풍경은 매우 빨랐다. 얼마 있지 않으면 도착할 것 같은 예감. 그러나 그 풍경의 빠르기는 오랫동안 계속되었고, 그새 잠이 들어버렸다. 얼마 후, 도착했다는 말을 들으며 잠에서 깨어나 어기적어기적 차에서 내렸을 땐, 학생들이 축구를 하고 있는 조그만 운동장과 산내분교처럼 정감가게 만들어진 금산간디학교가 있었다. 미리 연락을 주고받았던 전미영 선생님이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셨다. 선생님은 우리 모두를 환영한다는 말을 전한 뒤, “학교 공간들을 소개하기 전에 지금 대강당에서 학생회장 선거 개표를 시작할거라 함께 보고 소개를 시작하면 좋겠다.”며 대강당으로 안내하셨다.
대강당에 들어가니 이미 개표가 진행 중이었고 옹기종기 모여 앉은 학교 학생들이 강당의 중심을 바라보고 있었다. 조용한 분위기는커녕 자신들끼리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고, 중심에서 개표작업을 하는 학생들 역시 웃음이 나올 땐 웃으며 개표를 진행했다. 집에서나 느끼는 ‘화목함’이 생각나는 모습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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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간디학교의 대강당은 비교적 넓었다. 공연을 할 때 쓰는 작은 무대 뒤의 벽은 방금 전까지 축제를 벌인 듯 여러 색깔 위에 ‘우린 간디다!’라는 문구가 쓰여 있었다. 대강당은 주로 축제나 행사, 발표, 단체 영화 관람 등에 쓰이며 학교의 모든 식구들이 모이는 장소로 쓰인다. 때문에 식솔회 역시 대강당에서 진행된다.
식솔회는 간디학교의 공동체적 특징이 잘 살아나는 제도이자 할 수 있는데, 기숙사제도로 학교에서 지내는 학생들의 건의나 공동체 생활을 하면서 야기될 수 있는 문제들, 학교에서 정해놓고 있는 규칙들의 재고려 등 수많은 안건들을 이야기하는 큰 자리이다. 기본적으로 학교 내의 모든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이야기하며, 학생과 선생 그 외 구성원들 모두가 평등한 자리다. 금산간디학교 3학년 곽제규(18)군은 “식솔회는 직접민주주의가 실현되는 자리라고 할 수 있겠다. 식솔회에서 어떤 의견은 묻히고, 어떤 의견은 환영 받는 것이 아니라 둘 다의 의견을 들어보고 그 사이에서 타협점을 찾아 합의한다.”라고 식솔회의 장점을 이야기했다. 그렇다면 학교학생이 생각하는 식솔회의 단점은 뭘까? “사실 조금 소극적인 태도로 식솔회가 진행되기도 한다. 학생들이 의견을 제기하는 부분에 있어서 의욕이 부족한 경우도 있고, 학생들이 자신의 의견에 누군가가 이의를 제기한다거나 하는 것을 거부하는 측면도 있다.”고 자신이 생각하는 단점을 이야기했다.
대강당을 나와서 선생님의 안내에 따라 1층으로 내려갔다. 복도 양끝으로 여러 가지 공간들이 있었는데, 작업장이라고 부르는 공간들이 여기저기 있었다. 도자기실과 미술실, 목공실, 카페가 그것인데, 학생들의 작업공간으로써 학생들이 각자가 하고 싶은 것을 작업실에 들어가서 하게 된다. 도자기실에선 도자기를 직접 만드는 작업을 하고, 미술실에서는 그림미술, 디자인과 관련한 작업을 한다. 목공실에선 나무를 통해 어떤 물건을 만들거나 작은 정자 등을 건축하기도 한다. 카페에서는 간디학교 학생들이 직접 운영하면서 먹거리를 판매하기도 하고 직접 제작한 티셔츠나 안 쓰는 물건, 옷 등을 모아서 축제나 행사 기간에 판매해 경제활동을 벌인다. 위 활동들은 하나의 작업장의 형태이고 각 공간마다 전공을 가지고 있는 관리자들이 한분씩 있지만, 프로젝트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공식적인 과목은 아니지만 이런 활동들 역시 수업의 일환으로 인정해준다고 한다.
[##_1L|1399208209.jpg|width="321" height="481"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금산간디학교는 올해에 현재 위치한 곳에 정착했다. 정착하기 전에는 임대를 해서 학교를 꾸려나갔는데, 이 방법에는 문제점이 많았다고 한다. 일단 학생수가 불어나게 되면 더 큰 공간이 필요하게 되는데, 그러면 새로운 곳을 찾아 이사를 갈 수 밖에 없었고, 학교가 있는 지역과 조건이 맞지 않으면 그것 때문에도 이사를 해야 했다. 그렇게 이사를 5번을 했고, 점점 상황은 힘들어지고, 이것도 한계가 있었기에 안정적인 학교운영을 위해 하루빨리 정착을 해야만 했다고 한다. 그러다 이 땅을 구입하게 되었고, 터를 잡으면서 이곳에 마을을 조성하기로 했다. 운동장과 3층짜리 건물이 있는 곳은 이제 중학교가 될 곳이고, 가까운 언덕을 넘어가면 고등학교가 될 곳과 남녀기숙사가 있다. 그곳에 있는 몇몇 건물들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지은 것이라고 한다.
그날 보고 왔던 간디학교는 학교만의 자유분방함과 자연과 함께하는 모습을 많이 볼 수 있는 학교였다. 언덕을 넘어가면 볼 수 있는, 예비고등학교와 기숙사가 있는 주위는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였지만, 왠지 어울리고 있는 과정이라고 생각되었다. 시간이 흘러서 만들고 있던 그곳을 더 어울리는 멋진 모습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언재일까. 그날을 기대하며 힘들었던 만큼 앞으로 나아가라고 응원해본다.
민들레 사랑방은 나에게 낯선 곳이 아니었다. 작년, 하자작업장학교에서 민들레 사랑방의 아줌마 멘토들과 함께 돌봄 프로젝트(퀼트 프로젝트 My own story bag)를 함께 했었다. 화요일, 어김없이 오후 3시가 되면 하자센터의 306호에서 진행되었던 퀼트 프로젝트는 그 당시 마음이 혼란스러웠던 나에게 안식처가 되어주었다. 바느질이 아니라 함께 옹기종기 모여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눈다던지 유용하거나 재밌는 정보를 알려주고, 어떤 문제에 관해 함께 자유롭게 토론을 하는 것, 조그만 것에도 귀 기울여 주고 관심을 가져주는 것들이 나에게 무척 편안하게 다가왔다. 엄마와 사이가 좋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그런 모습들에서 엄마의 모습을, 나이대는 다르지만 때로는 친구들의 모습을 만나기도 했었다. 어느 순간부터 돌봄이라는 말을 자주 하게 되었는데, 그 계기가 된 일들 중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퀼트 프로젝트가 아니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가방을 완성하지 못한 채 아쉬운 마음으로 쇼하자(프로젝트를 마무리하고 나누는 시간)를 했었지만, 나에게는 어떤 쇼하자보다 가장 따스했고 고마웠던 쇼하자였다. 이후, 퀼트 프로젝트는 민들레 사랑방에서 작업을 계속 이어 나갔고, 지금은 민들레 사랑방의 친구들과 함께 퀼트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최근, 민들레 사랑방 거실 벽에 전시를 했는데 내가 사랑방을 방문 했을 때에도 벽에는 퀼트 벽걸이가 다닥다닥 붙어 있었다. 그것은 가족 같은 분위기의 민들레 사랑방을 더욱 푸근한 느낌으로 만들어 주고 있었다.
진로와 대학은 어떤 관계일까?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공부하기 위해 가는 곳이 대학이다. 그러나 고등학교를 나올 즈음이 되면 자연히 생각하게 되는 곳이 대학이기도 하고, 대학은 미래를 위한 안전한 선택이라는 사회적 흐름이 만연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래도 한번쯤 스스로에게 자문해볼 필요는 있다. 내게 대학이 필요한 이유는 뭘까? 필요해서 대학에 가는 걸까? 12월 20일, 대안공간 ‘민들레 사랑방’에 다니는 이윤선(17)양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실 이윤선 양은 하자센터의 카페에서 인턴 직원으로 있어서 필자와도 몇 번 만난 적이 있었다. 하자센터안의 어느 고요한 공간. 그곳에 조용히 준비를 하던 필자는 곧 부산스럽게 들어오는 이윤선 양을 볼 수 있었다.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이렇게 수다(?)를 떨기 좋아한다는 이윤선 양은 인터뷰 때에도 자신의 경험과 함께 여러 가지 생각을 이야기했다.
무엇을 했고, 무엇을 하고 있다
호랑 : 먼저 자기소개를 부탁한다.
윤선 : 이름은 이윤선이고, 17살이다. 지금은 민들레와 하자센터를 왔다 갔다 하고 있고, 민들레에는 화요일, 목요일마다 나가고 있다.
호랑 : 어떻게 민들레에 오게 되었나?
윤선 : 어머니가 초창기부터 민들레를 알고 계셨고, 대안학교 관련 잡지를 보면서 계속 민들레를 알고 있었다. 그러다가 작년 말 중학교를 졸업하고 어머니가 민들레를 추천하셔서 오게 되었다.
호랑 : 민들레에 있으면서 여러 가지 했을 것 같은데?
윤선 : 처음에 공간디자인이란 수업을 받았었다. 그 수업을 받으면서 스스로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발견했는데, 남들과 함께하는 법을 모른다는 점이었다. 수업은 3명이서 한 조가 되어서 하는데, 어느 날 문득 보니까 나 혼자서 작업하고 있었다. 몰론 동료들이나 선생님이 나에게 책임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나 혼자 생각하고 작업하는 것이 빠르다고 생각하고는 겉으론 함께하는 듯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야기도 하지 않고 동료들과 타협하지 않았었다. 그때 잘못을 깨달으면서 남들과 함께하는 법을 많이 배운 것 같다.
호랑 : 지금은 어떤 것을 하고 있나?
윤선 : 하자센터에 있는 카페 그래서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다.
호랑 : 그래서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어떻게 되나?
노디 : 커피를 배우기전에 하자에서 하는 사진 프로젝트를 신청했었는데, 프로젝트가 폐강되었다. 수강료도 다 냈었는데 환불받으려니 좀 아까워서 대신 커피를 배우게 되었다. 사실 어렸을 때부터 카페에 관련해 관심이 있었는데, 기회가 왔을 때 커피를 배워두면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커피 프로젝트를 듣다가, 그래서의 관계자 분이 “여기서 일 해보면 어떻겠냐.”고 추천해주셔서 인턴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호랑 : 여럿이 카페에서 일하다보면 트러블이 많이 생길 것 같은데?
윤선 : 처음엔 정말 많았다. 초기에 나는 배운지가 얼마 안 된 탓에 내가 만든 커피가 손님 앞으로는 나갈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기본적으로 손님에게는 ‘맛있는 커피’를 내줘야 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있었기 때문에. 그래서 계속 다른 사람들에게 떠넘겼다. 카페에 ‘바리’라고 같이 일하는 친구가 있는데, 어느 날 그 친구가 나한테 막 화를 내면서 “네 거는 네가 뽑아라.“라고 이야기를 했었다. 그러면서 “너 계속 그런 식으로 피하면 커피 한잔도 못 뽑는다.”라는 이야기를 해줬다. 사실 그때는 상처를 많이 받았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일, 사회를 배운다고 생각하고 있다.
호랑 : 지금은 민들레에 다니면서 인턴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다른 하고 싶은 것은 없나?
윤선 : 예전에 미술을 했었다. 그것을 직업으로 삼을 생각을 하다가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잠시 떨어져있다.
불안하지 않은 미술
호랑 : 처음 미술을 배우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윤선 : 어렸을 때 엄마가 오빠랑 함께 피아노랑 미술을 보내셨는데, 오빠는 미술이 재미없다며 피아노를 쳤고, 나는 피아노가 재미없다며 미술을 배웠다. 그렇게 계속 배우다가 내가 정말로 이 길을 가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은 중학교에 들어와서부터. 특별한 이유 없었고, 단지 미술이 하고 싶었다. 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보면 안에서 울컥하는 느낌이 있다. 그런 느낌이 들 때도 내가 정말 이쪽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호랑 : 미술을 하면서 불안한 때는 없었나?
윤선 : 화가를 직업으로 삼기로 한 것은 아니다. 끄적거리는 걸 좋아해서 그런 쪽으로 생각한다면 오히려 일러스트레이터 쪽으로 바라보고 있다. 그래도 사실 내 주변을 보면 미술하면서 먹고 산다는 게 너무나 힘들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예전에 가르침 받던 선생님 같은 경우는 학원 문 닫으신 뒤에 대리운전을 하고 계시고, 다른 분은 공책에 일러스트하시는 걸 많이 봤다. 그래서 미술은 정말 돈벌이가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도 내가 열심히 한다면 문제는 별로 없을 거라는 생각이고, 정 안된다면 어떻게 해서는 먹고사는 것은 해결할 수 있을 것 같다.
왜 대학이 필요한가?
호랑 : 난 아직 대학은 생각이 없는데, 대학을 생각하고 있는지?
윤선 : 높은 목표지만 한예종을 생각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은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있고, 자신이 원하는 과에 가서 최대한 열심히 한다면 그게 더 괜찮은 선택이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많이 한다.
호랑 : 아직 하고 싶은 것이 없어서 대학을 생각했을 때는 가장 먼저 필요성에 대해 생각했었다. 대학이 자신에게는 어느 부분에서 필요한가?
윤선 : 사실 필요성은 잘 모르겠다. 우리는 아직 어려서 사회에 안 나가봤으니까 대학을 나온 것이 나중에 얼마나 꼬리표를 달고 다닐지도 모르는 것이고, 아직 경험해보지 않아서 확정하기 힘들다. 부모님도 네가 좋은 대학가는 건 별로 바라지 않는데, 대학을 가고 안 가고는 분명히 차이가 있을 거라며, 직접 대학에 가봐서 좋은 점과 나쁜 점을 스스로 경험하고 느껴봐야 하는 것이라고 이야기하신다. 내가 밖에서 바라보는 대학과 직접 안에서 경험해보는 대학은 많이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호랑 : 꼭 필요해서 대학에 가야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왜 대학만 찾는지 모르겠다.
윤선 : 나도 예전만해도 대학은 안 가려고 생각했다. 왜 가는지를 잘 몰랐었고, 주위에 보면 애들이 뭘 해야 할지를 모른다. 그런데 목표는 전부 대학이다. 그런 걸보면 좀 안타깝다고 해야 할까. 뭐가 하고 싶은지도 모르고 대학만 찾으니까. 홍대학생들을 정말 싫어하는데, 미술학원에 다니는 언니들을 통해 공부를 그럭저럭하는 사람들이 1년 학원 바짝 다녀서 전부 홍대가려고 하는 모습을 너무나 많이 봤다. 내 친구들도 그러고 있고. 그 사람들 나름대로 무언가가 있어서 그곳에 갔을 수도 있지만, 내가 보고 느낀 대로라면 이건 미술이 아니라 기술이지 않나하는 생각이 들어서 화가 많이 났다. 나와 내 또래는 아직 어리다는 생각을 한다. 우리나이 때 그냥 대학을 가는 것과, 무언가 배우고 싶은 것이 생겼을 때 대학을 가면 배움에 있어서 엄청난 차이가 날 것 같다. 굳이 서둘러서 대학에 갈 필요도 없는데, 조금 여유롭게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찾다가 대학에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자신에게 자신감을 갖자
진로에 대해서 회의적인 필자와는 다르게 이윤선 양은 인터뷰 내내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자신이 정한 길에 대해 확고한 자신감이 있었다. <대안학교 마을 만들기> 팀의 좌담회 차 민들레 사랑방에 다녀온 때에도 그랬지만, 민들레의 학생들은 다들 진로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그건 ‘뭐든 할 수 있다.’라는 또 다른 자신감이 있기 때문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 정해진 길은 없다. 몰론 그 때문에 불안해하고 걱정하는 것이지만, 오히려 어떠한 길도 없기 때문에 스스로의 선택에 자신을 가져도 되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인터뷰였다. 인터뷰에 응해준 이윤선 양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아이러니 민들레
방문에 앞서 민들레사랑방에 대해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하고 싶은 일을 중심으로 프로젝트를 만들고 진행하는 하자작업장학교의 모습과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하자작업장학교가 속해있는 하자센터보다는 규모가 작은 ‘사무실’의 이미지가 떠올랐다. 그러나 직접 방문했던 사랑방은 가정집들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그래서 인지 오래간만에 친척집에 놀러 가는 느낌과, 아늑하고 마음이 편해지는 공간이었다. 길/찾/자(길을 벗어난 불안, 길을 찾는 자유)팀은 민들레사랑방의 학생들과 ‘대안학교의 졸업을 앞두고 진로’에 대해 테이블에 둘러앉아 이야기를 나눴다.
어느 학교에 가나 먼저 묻게 되고 궁금한 질문인 ‘대안학교를 왜 오게 되었나?’를 묻게 된다. 함께 이야기를 나눌 민들레사랑방의 친구들은 어떤 이유를 가지고 대안학교에 왔을까? 질문에 먼저 답을 해준 이규호(민들레사랑방 15)군은 “일반학교에서 트러블이 많았다. 그러면서 학교에서 얽매여있다가는 아무것도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한테 이야기하고 학교를 안 나갔다. 나중에 학교에 안 나갔다는 사실을 아신 아버지는 노발대발하셨고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물으셔서 자퇴하겠다고 했다. 아는 형이 민들레사랑방에 다니고 있어서 자연스레 따라왔다. 오다보니 가족 같은 분위기가 좋고 편해서 계속 있게 되었다”고 웃으면서 말했다. 옆에 앉아있던 이수연(민들레사랑방 14)양은 쑥스러운 듯 “자유롭게 공부하고 싶어서 대안학교에 갔지만 그곳만의 틀이 있어 답답했다. 하지만 공부에 대한 미련이 많아 홈스쿨링을 하게 되었고, 평소 자전거 타기를 좋아해서 민들레사랑방에서 진행되는 여행모임에 참석한 뒤 계속 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렇듯 민들레사랑방에서는 다양한 사람들이 소모임을 통해 민들레사랑방을 알게 되고, 가족 같은 분위기에 끌려 사랑방 내에서 이뤄지고 있는 프로젝트, 워크숍, 간담회 등에 참여하면서 민들레사랑방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덧붙여 이야기했다.
어떤 이유에서 민들레사랑방을 찾았던 간에 학생들은 지금 이곳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작업을 하면서 지내고 있다. “음악을 좋아해서 집에서 열심히 작곡하고, 지금은 밴드활동을 하고 있다. 원래 학교 다닐 때 아는 친구들과 시작했는데 자퇴하고 나니 그 친구들과 시간이 안 맞아 민들레사랑방의 친구들과 밴드를 결성하고 며칠 전 공연을 했다.”고 이규호(민들레사랑방 15)군은 웃으며 “어렸을 때는 좋은 직장 예쁜 아내 얻어서 살고 싶다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고 싶다.”고 이야기를 해주었다. 이수연(민들레사랑방 14)양은 “클래식 기타를 전공으로 하고 있다. 4개월 전에 하자센터에서 커피수업을 들은 후로 커피에 한동안 빠져있다. 그동안 배웠던 실력으로 수요일과 목요일 사랑방에서 드립커피를 팔고 있다.” 커피판매 수익금으로 용돈에 보태서 사용하려고 했으나 아직까지는 커피판매 수익금은 재료비로 사용된다고 한다.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좌담회에 참석한 친구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고 싶다고 말을 한다. 학생들이 말하는 행복하게 사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솔직히 자신이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만으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필자는 개인적으로 아무리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하면서 산다고 해도 생활의 기반을 뒷받침할 수 있는 돈벌이가 있어야 된다고 생각한다. 좌담회에 참석한 친구들이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작업을 하면서 행복할 수 있을까? “지금 나에게는 음악을 하고 있는 것 자체가 행복이다”라고 이규호(민들레사랑방 15)말해주었고, 반대로 나한솔(민들레사랑방 17)양은 “하고 싶은 일을 해서 돈벌이가 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다. 먹고 살기 위해 다른 힘든 일도 해야 한다. 하고 싶은 일만 하면서는 생각을 하게 된다.”고 솔직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학생들은 공교육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작업을 하기 위해 일반학교를 자퇴하거나 진학을 하지 않고 대안학교를 입학하고 있다. 그러나 대안학교의 졸업을 앞둔 친구들을 보면 일반학교를 그만둔 것이 무색할 정도로 일반학교의 학생들과 비슷하게 늦은 밤까지 수능준비를 하며 대학에 들어가려고 한다. 왜 다시 원래의 길로 돌아가는 것일까? “대학은 사회에서 잘 먹고 잘 살기 위해 가야하는 곳이고, 운전면허를 따듯 쉽게 지식을 얻을 수 있는 곳도 대학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대학이 아닌 다른 것을 선택할 수는 있지만, 그러기에는 불안해서 안정적으로 대학을 가려고 한다.” (민들레사랑방 18)군은 이야기 했다. 반대로 대학을 안가겠다고 대답을 한 이규호(민들레사랑방 15)군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삶의 방식은 대학 가고 안 가고와 큰 차이가 없다 음악을 배우고 싶다면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배울 수 있다. 예전에 한예종(한국예술종합학교)를 목표로 비싼 돈 내면서 작곡을 배웠는데 그렇게 하면 당연히 대학 가서 더 좋은 음악 만들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니 완전 엄마에게 속은 꼴이었고 대학에 안가도 훨씬 좋은 음악 만들 수 있다. 오히려 시간 낭비라는 생각만 들었다” 뒤이어 오정환(민들레사랑방 17)군은 앞서 말한 이규호군의 이야기에 “대학은 가야하는 곳이 아닌가? 한국에서는 전문대라도 나와야 취직이 되고, 예외로 대학을 졸업하지 않은 사람도 취직하기는 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극소수일 뿐이다.”라고 말하며 “장기적으로 봤을 때, 생활비를 포함해 160에서 180만원은 벌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지하단칸방에서 라면 먹으며 살아야 된다.” 오정환(민들레사랑방 17)군은 대학 입학이 곧 행복이라는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이야기를 듣고 있던 금강산(하자작업장학교 18)양은 “지하단칸방에서 라면을 먹으며 살아야한다고 할 때 대학에 가는 것만으로 그 생활을 피할 수 있다면 당장 대학을 간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대학에 관해 기대를 걸고 있고 그래서 나는 그들이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이 있다. 물론 대학을 가지 않겠다는 것에서 파생되는 불안이 나에게도 있고 꼭 유명대학이 아니라 내가 만나고 싶은 사람들이 있는 곳이었음 좋겠다”며 이야기를 해주었다.
대학에 대한 이야기를 일단락 정리하고 다시 대안학교에 대한 이야기로 좌담회는 진행되었다.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다니기 전의 모습과 비교하자면 무엇이 변했냐는 말에 “다른 대안학교도 마찬가지겠지만 평소에 체험하지 못했던 것을 체험하는 것, 예를 들면 다양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서 여러 사람들과 대화하면서 그 사람들의 심정이나 처지들을 많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 좋았다”이라 누가?? 답했고 김단비(하자작업장학교 17)양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얘기를 잘 못하는데 지금은 좀 대범해졌다. 자신감이 생긴 것 같고 원래 대안학교를 찾은 이유가 독립심을 얻기 위해서였는데 대안학교를 다니면서 혼자 살아가는 것에 대해 경험하며 배우기도 했고 더불어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는 법에 대해 더 많이 배웠던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사랑방을 방문하기 전 갔던 영산성지고등학교와 이우학교는 하자작업장학교와 다르게 인가를 받은 학교였다. 지금 다니고 있는 하자작업장학교와의 교육과정도 많이 달랐고 어떤 이야기를 나눠야 될지 난감했다. 처음이었지만 수업참관을 하면서 ‘역시 우리와 다르게 공통교과를 중심으로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과 함께 인가받은 대안학교는 일반학교와 비슷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 같았다. 그러면서 서로 공유하는 부분이 달라 이야기가 나누는 것이 힘들었다. 무엇보다 이번 탐방프로젝트를 통해 개인적으로 대안학교 졸업 후의 미래에 대한 힌트를 얻어가고 싶었던 필자에게는 불투명한 미래에 대해 더욱더 불안하게 만들었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민들레사랑방의 방문을 통해 개인적으로 듣고 싶었던 대학진로에 관련한 다양한 이야기를 듣게 되면서 다시금 진로와 미래에 대해서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좌담회를 마치고 나서 많이 이야기가 나눴던 하고싶은 일을 하면서 행복하게 살기에 대해 필자에게는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보려고 한다.
<대안적 삶을 꿈꾸는 사람들의 아지트, ‘공간 민들레’>
12월 12일 하자작업장학교 대안학교 탐방 팀은 홍대 주택가에 위치한 ‘민들레 사랑방’을 찾았다. ‘공간 민들레’라는 작은 문패를 보지 못했다면 가정집으로 오해할 여지가 다분한 3층 주택은 담이 없고 매우 정갈한 모습이다. 현관으로 들어서자마자 거실이 나오고, 소파와 테이블이 오밀조밀 놓여있는 익숙한 풍경. 또 알록달록 천들을 붙여 만든 퀼트벽걸이와 크리스마스트리 인형들이 벽면을 장식하고 있어 공간 전체에 정겨운 느낌이 물씬 묻어난다. 거실 옆으로는 주방과 작은 정원이, 맞은편에는 위층으로 오르는 나무 계단이 있어 내부 구조도 영락없는 가정집이다. 사람의 손길이 느껴지는 공간 그래서 따뜻한 공간. 공간 민들레의 첫 인상이 그러했다.
공간 민들레는 민들레 사랑방이 ‘민들레 출판사’에서 독립한지 6년이 되는 올 해 여름, 출판사와 함께 마련한 공간으로 현재 매주 4, 50명의 청소년과 어른들이 드나들고 있다. 청소년들의 아지트인 사랑방과 다양한 어른들이 드나드는 출판사의 만남은 기존의 청소년 아지트에서 벗어나 다양한 세대들이 모여 공부하고, 돌볼 수 있는 독특한 대안 공간이다.
민들레 사랑방이 문을 열게 된 계기가 독특하다. 발단은 이렇다. 1999년 탈학교 한 청소년들이 대안교육 잡지를 발간하는 민들레 출판사를 찾아왔다. 그 때 모인 아이들이 ‘탈학교 모임’을 결성, 매달 2회의 정기모임과 탈학교 학생들의 간담회를 진행하고 탈학교 학생들의 이야기를 모아 책 [자퇴일기]를 발간했다. 이런 소식이 각종 언론을 통해 퍼졌고 민들레 출판사로 더 많은 청소년이 모여들었다. 대개 대안학교, 대안교육기관들이 교사, 학부모의 발족으로 시작되는 것과는 달리 사랑방은 이렇게 청소년들이 모여 필요성을 이야기하고, 출판사와 함께 만들어 낸 공간이다. 2001부터는 공간을 독립해 민들레 사랑방이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공간을 마련, 지금까지 세계 곳곳의 대안교육 기관과 연결하여 학생들의 자기 길 찾기, 작은 사회 운동들을 함께 해나가고 있다.
학교 구조 또한 독특해 한 마디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입학, 졸업, 학년 등 기존의 대안학교에서 갖추고 있는 제도가 없고 준 학교 프로젝트에서부터 동아리까지 수업과 참여 방식, 제도들이 가지각색이다. 대안학교 중, 소외 계층을 위한 학교가 아닌 경우 경제적인 문턱이 높고, 또 홈스쿨링은 교사와 동료가 마땅치 않아 어려움을 겪게 되는데 민들레 사랑방에서는 이러한 어려움을 보완하여 도시의 보통 가정에서 큰 경제적 부담 없이, 자유롭고 다양한 배움을 할 수 있는 곳으로 만들려 애쓰고 있다.
현재 사랑방에서는 대안학교와 홈스쿨링의 중간 형태로써 ‘안채 과정’이, 누구나 자유롭게 수강 할 수 있는 강좌로 ‘사랑채 과정’이 이루어지고 있다. 안채 과정은 일주일에 두 번, 화요일 목요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진행되는 준 학교다. 화요일에는 글쓰기/인문학 수업을 하고, 목요일에는 ‘뿌리와 홀씨’라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연구공간 수유+너머의 ‘월목학교’에서 따온 아이디어로 한 학기 동안 진행되는 작은 학교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뿌리와 홀씨’에서는 공간 디자인, 청소년 잡지 만들기, 애니메이션 제작 등 복합적인 활동을 통해 청소년들이 자기 관심사를 구체화 시킬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앞서 말했던 안채 프로젝트를 제외한 프로젝트와 소모임을 모두 사랑채 프로젝트라고 부른다. 나이제한이 없어 학생들과 어른들이 함께 참여하며 목공 모임, 치유적 글쓰기/그림그리기 모임, 영화 모임, 문화 이야기 모임, 영어 커뮤니티 모임 등을 운영한다. 뿐만 아니라 모임을 개설하고, 강사를 맡는 것도 학생들, 민들레를 드나드는 어른들이 될 수 있다.
위에 나온 안채 과정과 사랑채 과정, 프로젝트와 소모임 등이 모두 학생의 선택이다 보니 누구는 매일 꼬박꼬박 나오지만 또 누구는 1주일에 한 번 나오고 또 어떤 친구는 한 학기 동안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자신이 신청한 프로젝트를 열심히 수행한다면 사랑방에서는 이런 것이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이렇게 독특한 공간을 어떻게 설명 할 수 있을까? 학생들은 사랑방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 이@@군은 사랑방을 노인정이라고 소개한다. 특별한 일 없이도 찾아 올 수 있는 공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라는 이유에서다. 또 다른 학생들은 또래를 만나는 곳,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표현할 수 있는 곳 등으로 사랑방을 표현했다. 이러한 이유에서인지 성인이 되었음에도 종종 민들레 사랑방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고 밥상을 나누는 사람, 외부에 나가 일을 하면서도 주기적으로 들러 소모임에 참여하는 사람 등 사랑방을 드나드는 사람들의 포지션에는 굉장한 차이가 있다.
사랑방의 독특한 커뮤니티를 보며 나는 가족을 떠올렸다. 다양한 세대가 모여 서로를 챙기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모습이, 언제든 찾아 갈 수 있는 공간이, 같은 미래는 아니지만 함께 미래를 그린다는 것이 내게 ‘가족’의 개념으로 이해되었던 것 같다. 그런데도 딱히 가족이라고 명명 할 수 없는 이유는, 그들이 공간 민들레에서 하고 있는 일이 가족의 범위를 넘어서 작업 동료, 멘토의 역할까지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 크지 않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진행하는 크고 작은 모임만 30여개. 민들레 식구들이 이렇듯 많은 모임을 꾸리고 진행할 수 있었던 것은 비단 같은 공간을 사용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같은 관심사를 가지고 대안을 꿈꾸며 함께 공부하고, 활동하는 그들이 새로운 마을을 일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직까지 나는 그들의 커뮤니티를, 사랑방을 대신 할 마땅한 단어를 찾지 못했다.
<이우학교 학생회를 들여다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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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학교 마을 만들기> 첫 기사에서 밝힌 바 있듯 '하자작업장학교' 글쓰기 팀은 전국 대안학교 몇 곳을 방문, 학생들과 만나 ‘대안학교 학생들의 진로 고민’, ‘대안학교의 구조와 활동’에 대해 토론하고 그 때 나온 이야기를 바탕으로 연재 기사를 작성한다. 대안학교의 활동을 평가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과 함께 고민하기 위해서다. 대안학교 탐방팀은 11월 30일, 오후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이우고등학교를 찾았다. 이우학교는 2002년 설립한 특성화 고등학교로 현재 120여명의 학생이 재학 중이다. |
우리 세대에게 ‘니트 족’, ‘코쿤 족’이라는 이름이 붙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부모에게 의존하는 ‘캥거루 족, 외부 생활로부터 도피하는 ’나 홀로 족‘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각종 언론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입시위주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낳은 위기라고 말하고 그 대안으로, 많은 대안학교에서 학생들이 자율적, 주체적, 독립적, 창의적인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교육하고 있다. 학생 중심(<->교과서 중심 수업)의 수업, 함께 만드는 수업 등을 통해 ‘회색 인간’이 아닌,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자기 학습을 결정할 수 있는 아이들을 기르고자 하는 것이다. 학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겠지만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자기 목소리를 내는 공간으로는 크게 학생회가 있다. 학생들이 자기 학습, 학교 운영에 참여하는 기구로, 하자작업장학교에는 ‘자치위원회’가, 간디학교에는 ‘학생총회’가 있고 이우에는 ‘학생회’가 있는 등 학교마다 조금씩 다른 이름으로 학생회가 운영 중이다. 이번 기사에서는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이우학교의 학생회를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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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작업장학교 자치위원회에서 활동했던 기자와 이우학교 학생회 임원들이 만나 각 학교의 학생회를 파헤쳐보기로 했다.
금강산 하자작업장학교 주니어과정 수료. 2007년 봄 학기 자치위원회(학생회)장 장대환 이우학교 고등과정 3학년. 2007년 학생회장 이소중 이우학교 고등과정 3학년. 2007년 학생회 임원 |
금강산/ 제도권학교에서의 주입식, 암기식 교육이 아니라 학생이 교육의 주체 중 하나로써 함께 학교를 꾸려나가는 이야기를 나누어보면 좋겠다. 각 학교 학생회를 들여다보며 차이를 이야기해도 좋을 것 같고, 편하게 궁금한 것을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가려 한다.
이우학교는 학생회가 굉장히 크다고 들었다. 구조도 복잡하던데 조금 설명을 하자면?
장대환/ 학생회에는 학년 학생회가 있고 그 안에 총 학생회가 있다. 학년 학생회는 각 반의 대표가 참석하는 것으로 약 28명 정도의 인원이 활동 중이고, 총 학생회의 구성은 회장, 부회장, 임원, 각 부장으로 구성, 15명의 임원이 있다.
부서로는 환경부, 생활부, 총무부, 사법부, 문화부, 학습부가 있고 각 부서 당 한두 명의 부장이 있다. 부서에 참여하려면 학생회에서만 뽑는다.
금강산/ 와, 정말 많다. 학생회 이름으로 묶인 사람들이 43명이나 되다니. 학교 활동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친구들이 꽤 많은 것 같다.
장대환/ 사실 그렇지도 않다. 학년 학생회 같은 경우 한 반당 두 명의 임원을 뽑으니 그렇게 많은 인원이 된 것이고, 실상 학생회에서 주도적으로 활동하는 것은 총학생회 정도다. 부장들이 담당 부서의 일을 기획해오면 학생회에서 원하는 친구들이 모여 함께 일을 벌이는 구조다.
[우리 당 이름은 ‘마주치당’.]
금강산/ 이우학교는 선거하는 과정이 남달리 재미있다고 들었다. 출마하기 전에 먼저 당을 만들고 그 당내에서 학교에 관한 문제들을 논의하고 의제, 정책을 만든다고. 그리고 그 당에서 학생회장을 내놓는다고.
장대환/ 그렇다. 내가 선거에 출마했을 때 우리 당 이름이 ‘마주치당’이었다. 선거에 출마 할 때는 학생회장을 필두로 원하는 친구들이 모여 당을 기획하고 학교의 사안, 문제에 대해 논의한다. 그리고 정책을 만든다. 그 때 나온 정책을 가지고 선거에 출마하여 공략을 편다. 선거 운동을 당원이 모두 함께 하는 셈이다. 하지만 당원이라고 해서 모두 학생회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선발을 통해 뽑힌 사람만이 학생회에 들어올 수 있다.
금강산/ 선발? 그 선발은 누가하나?
장대환/ 학생회를 함께하고 싶은 친구들은 자원을 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학생회장이 지명, 선출한다. 학생회의 팀워크가 중요한 만큼 학생회장과 마음이 맞아야 한다는 것이 학교 측의 입장이다. 그런 이유로 학생회장에게 그 위임을 넘긴다.
금강산/ 독특하다. 학생회장이 지명하는 것. 사실 다른 대안학교에서도 학생회장을 주축으로 아이들이 모여들거나, 학생회장이 마음이 맞는 친구들에게 학생회에 들어올 것을 권유하고는 있지만 공식적으로는 추천, 선거 등을 통해 학생회를 뽑는다. 하자작업장학교에서는 학생 수가 적은 편이고 자치활동에 관심을 갖는 친구들이 많이 생긴 것이 얼마 되지 않은 터라 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히면 모두 다 ‘자치위원회’에 들어올 수 있다.
학생회장이 지명하는 경우라면 당 활동을 함께 한 사람들이 같이 학생회에 올라오는 경우가 많겠다.
장대환/ 그렇지 않다. 그래서 어려움이 있었다. 당 활동만 참가하고 선거에는 참가하지 않는 친구들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 당에서 학생회를 하게 된 것은 이우정 딱 한 명뿐이다. 아무래도 당을 함께 하며 토론하고 함께 의지를 냈던 친구들이 빠지니 학생회를 시작할 때 당에서 논의 된 이야기들을 다시 꺼내어 합의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다.
이소중/ 아무래도 고 3이 다가오면 다른 활동을 하는 것이 꺼려지는 것 같다. 게다가 학생회는 일이 많기 때문에 활동하는 것을 부담스럽게 느끼는 친구들이 있다. 얼마 전 선거를 치루고 내년 학생회를 조직하는 후배들은 아예 당을 꾸린 사람들이 책임지고 통합하여 학생회를 가져가기로 합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앞으로는 그렇게 운영될 것이다.
[함께 문제를 푸는 법]
금강산/ 학생회에서 결정한 사안이 학교 운영에 어느 정도 반영되는지 궁금하다. 또 함께 결정하는 자리가 있는지.
장대환/ 학생들이 하는 것은 학생이 결정해야 한다는 것이 초기 교사들의 생각이었다. 자치라는 이름이니만큼 학생들이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도난, 음주, 흡연 등 학교에 꽤나 큰 문제들이 발생했고 교장 선생님이 나서서 이러지 말자고 학교 뒷산에 올라갔다 오는 등 학교 전체의 각성이 있었다. 이를 통해 이들 스스로 자생력을 발휘하여 나아지리라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결국 선생님들이 나섰는데 곧 학생회 내부에서 학생회 일에 교사들이 너무 개입하는 것 아니냐, 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래서 사법부가 생겼다. 학생들이 법정을 만들어서 우리의 일은 우리가 알아서 처리하겠다는 거였다.
금강산/ 정말 법정처럼 판결을 내리나?
장대환/ 그렇다. ‘민족사관고등학교’에 이런 게 있다고 해서 따왔다. 법조계에 관심 있는 선배를 주축으로 학생들이 문제가 일어났을 때 무작위로 뽑힌 배심원들과 판결을 내리기로 했다. 그러나 취지와는 달리 실행에서는 법정에 대한 비판들이 쏟아졌다. 같은 학생인데 내가 왜 너에게 옳고 그름을 선고받고 처벌(봉사활동)을 받아야하냐 등등의 이야기가 나왔고 ‘사법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친구들이 생겼다. 회의 자리에서 가끔 말다툼이 오가기도 했다. 이런 문제 (흡연, 절도)는 학생회에서 맡기가 버거운 측면이 있었다. 술 먹지 말라고 이야기 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고 말을 한다고 듣는 것도 아니고 해결이 나지 않았다. 결국 교사회 내에서 학생생활협의회라는 상설기구를 만들어 운영하기로 했다. 학생생활협의회는 기존 학교의 선도부를 이우학교 구조에 맞추어 만든 것이다. 교사회에서 이런 일들을 맡기로 합의를 하고 나니 학생회에서는 좀 더 학생들 간의 소통에 집중할 수 있었다.
금강산/ 우리 학교에서는 그런 음주, 흡연, 폭력 등 학교에서 발생하는 큰 문제들은 공론화 시키고 학교 구성원 전체가 모여 토론을 벌인다. 하자 뿐 아니라 어떤 대안학교들은 문제가 불거졌을 때 공청회나 학생들의 토론을 통해 문제를 푸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 학교에서는 나름대로 잘 진행되는 편인데, 이우에서는 어떤 이유로 힘들었는지 궁금하다.
장대환/ 이우학교에서도 초반에는 학년 총회를 통해 해결했다. 그러나 문제가 뭔 지는 알겠는데, 결론이 나지 않았다. 해결 방안이 나오지 않는 것인데 이런 경우들이 비일비재했다. 그래서 판결을 내 보자고 만든 것이 사법부였고, 사법부에서 하기로 했던 것은 결국 학생생활협의회가 맡게 되었다. 학생생활협의회에서 진행되는 회의에 학생회장은 참여할 수 있다고 명시되어 있다. 학생들이 이야기를 풀어 문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사안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들도 분명 있는 것 같다.
금강산/ 우리 학교는 흡연, 음주를 금지하지 않고 있고 학교 구성원이 이우학교처럼 많지 않아 함께 모여 토론을 하기가 더 쉬웠을 것 같다. 게다가 전체회의에는 교사, 학부모 등이 참석해 방향잡기나 제안에 도움을 주신다. 학생들끼리의 토론이 가능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때에 따라 어려움이 있다는 것에 동의한다.
[학생회, 이래서 어렵다!]
금강산/ 학생회하면서 제일 힘들었던 점을 한 번 꼽아보면 어떨까
장대환/ 처음에 학생회를 조직하는 것이 힘들었다. 3월이 당장 개학인데 2월에도 학생회가 제대로 꾸려지지 않아 이 애, 저 애 만나면서 설득하러 다녀야 했다. 심지어 방학 때 반 친구들을 모두 모아 학생회 함께 해보지 않겠냐고 한 적도 있다. 2월 말 정도에 학생회를 꾸렸다.
금강산/ 지명이라기보다는 책임이구나. 하하.
장대환: 내세운 정책을 수행하는 것과 학생회 내부를 운영하는 것, 두 마리 토끼를 잡아야하는 것도 힘들었다.
금강산/ 교사, 학부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어려움은 없었나?
장대환/ 학생회는 워낙 독자적으로 운영되기 때문에 도와줄 수는 있어도 외부적인 영향이 직접적으로 오지 않는다. 그러나 학교에 대한 아쉬움을 굳이 꼽아 보라면, 학생회는 교사회에 비해 회의비를 비롯한 활동비를 확보하기 어렵다. 또, 교사대표자회의, 학교운영위원회 등에 참석할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다. 설령 기회가 주어진다 하더라도 그게 잘 활용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다. 물론 학생회에서 이러한 권리를 학생회에서 쟁취해야 하는 것이 맞지만 실상 그것이 매우 어렵다. 교사회에서 더욱 동료의식을 갖고 학생회를 바라본다면 그동안 있었던 교사회-학생회 간의 잡음이 어느 정도는 사라지지 않을까하는 생각이다.
이우학교 학생회는 비교적 크고 체계적인 구조를 띄고 있었다. 제도적인 지원 아래 많은 친구들이 즐거이 활동하고, 꾸준한 평가를 통해 학생회가 학교의 상황에 맞추어 학생회가 자리잡은 모습은 여느 대안학교들에게 ‘학생회’의 좋은 모델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그러나 이우의 학생회가 학교를 함께 움직이고 있는 중심 축 중 하나인 지, 또는 학생회가 중요한 학습으로 인정받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조금 의문스럽다.
대안교육 10년이라는 시간동안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규모도, 구조도 성장했다면 이제는 그 내실을 다듬어야 할 때다. 아직까지 대안학교에서는 학생회나 자치활동을 취미생활, 동아리 정도로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적어도 공동체 의식과 자기 기획력을 갖출 수 있는 사람으로 키우겠다고 이야기하는 대안학교에서는 학생들이 주도적으로 활동하고 참여 할 수 있는 장이 확보 되어야 한다. 이 장은 부모와 교사의 지휘를 받는 것이 아니라 학생 자체적으로 결정하고, 운영 할 수 있는 힘 있는 공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학생회에서 활동하고 싶은 친구, 학생회 조직이 어려운 학교들은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는 다른 대안학교의 학생회를 눈 여겨 보기 바란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학생회, 자치활동의 멋진 케이스가 많이 나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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