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 하자와의 첫 만남은 내 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던 중학교 3학년 시절, 언니의 소개로 하자에서 검도를 하게 되었다. 비록 길찾기도 주니어도 판돌도 아니었지만 검도를 배우는 하자의 무용실에서 만큼은 하자의 죽돌인 양 죽치고 검도만 했다. 2년이 지난 뒤, 검도 부 스승이신 박홍이 선생님의 퇴임으로 검도부는 없어 졌고, 난 학교에서 조리 자격증 위주로 공부를 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열아홉 마지막 여름 방학이 찾아 왔다. 7월 "일과 요리"라는 창업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창업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단지 열아홉 내 마지막 십대를 뜻 깊고 새롭게 보내고 싶었다. 그리고 요리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감이 컸던 것 같다. 일과 요리 팀에 들어가기 위한 인터뷰는 머리를 질끈 묶은 세이렌과 검정색 옷과 단아한 웃음의 히옥스,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추출해 주신 그레이스, 하얀 얼굴과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가인과 함께 현실과 미래 속에 공존하는 창업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시간이었다. 더웠지만 즐거웠던 7월, 맛보기시장에서 생과일주스와 파인애플 막대를 팔았었는데, 생과일주스를 만들 때 블렌더를 갈고 나서 씻을 개수대가 없어 수돗물을 받아 와서 씻었던, 기억이 남는다. 더운 날씨 덕에 예상 외로 생과일주스는 잘 팔렸지만, 204호에서 히옥스와 함께 노동비와 재료의 원가, 그 원가에 맞는 가격 선정 등 많은 것을 따져보니 우린 적자였고, 아롱아롱 맺혀 버린 204호의 추억들이 첫 창업 도전의 쓰디 쓴 맛을 보게 해 주었다.

  현재 우리팀은 요리 스튜디오를 기획 하고 계시는 그레이스와 환타, 급식을 총 담당 하시는 풀꽃님, 요리 트레이닝과 케이터링을 가르쳐 주시는 하영 쌤, 목소리 큰 가인, 디테일 한 설, 눈도 크고 코도 크고 키도 큰 왕언니, 거침없는 미란, 순수한 진아, 지구인 샨티가 이루어 요리 하모니(하자 내에서 운영하는 급식)와 hello 79!(카페 “그래서”에 의탁 판매 형식으로 브라우니와 쿠키를 납품하고 있는)를 운영하고 있고, 외부에서는 케이터링을 하기도 한다. 케이터링은 출장 뷔페와 같은 개념으로 우리에게 케이터링을 의탁한 회사나 기업에 찾아가 우리들이 만들어낸 음식으로 테이블 세팅을 한다. 우리 요리 팀은 사회적 기업을 목표로 삼고 있다. 일반 기업에서는 영리를 주된 목적으로 하지만, 사회적 기업에서는 영리가 아닌 일자리 창출을 목적으로 사업을 벌인다. 요리 하모니를 운영하면서 우리는 몸에 베인 기술을 습득하고, 경험 속에서 배우는 신속함, 정직한 요리를 하면서 사회적 기업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Hello 79!는 요리 팀 안에 있는 창업 팀 중 하나인데, ‘안녕 친구! 안녕 하자!’(하자에 번지수가 79번지 여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음식이라는 매개체로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금 현재 카페 "그래서"에 의탁 판매로 쿠키 또는 브라우니를 납품하고 또 다른 방식의 베이커리를 만들어 보는 실험을 하고 있다. 매주 목요일 마다 장애인 친구들을 대상으로 베이킹 수업을 진행하게 되는데,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리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창의력과 언어, 그리고 즐거운 마음이다. 요리트레이닝은 접해 보지 못한, 또는 접해 보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음식들을 만들고, 음식에 맛이 어떤지 얘기를 나누며 진행 된다. 또는 다음에 만들 때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보는 실전을 통해 트레이닝에 대한 복습도 해본다.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고, 대화 나눌 수 있는 요리사가 되기 위해 요리 팀 내에서는 4월부터 매주 화요일마다 영어수업을 듣는다.

  요리를 한다는 즐거움은 내 마음에서부터 나온다. 요리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기분이 좋아진다. 가끔씩 내가 요리 안에 빨려 들어가는 느낌이 들 때도 있다. 그래서 요리를 만들 때 는 정신과 마음 그리고 내 육체가 그 요리 안에 집중하게 될 때 내 모든 에너지가 요리 속에 들어간다. 그래서 몸이 고될 때 도 있지만, 요리를 만들 때는 좋은 기분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한다. 내 손 끝으로부터 전해지는 즐거움이 음식 속에 배어 들어와 내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까지 즐거움과 행복감을 준다. 그리고 더 발전해서 내가 정말 나만의 음식을 만들고자 할 때 내 머리 속에 생각했던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거나, 많이 먹어 보고, 내가 맛 본 음식에 대해 단어장을 만들어 내가 느낀 맛에 대해 글로 표현하는 재미있는 작업들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떠한 역경도 최고의 기회, 최고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 실패는 없다. 다만 미래로 이어지는 결과일 뿐이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 또는 다른 일을 시작 할 때의 초심 모두가 잃지 말길 바란다.

organization Yori팀의 20살 샨티.

지난 3월 3일부터 8일까지 일본의 NPO(Non-profit organization의 약자. 이익을 창출하지 않는, 비영리성에 초점을 둔 조직)관계자들이 한국에 방문했다. <한일 NPO 교류사업>하에 양국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과제를 중심으로 현장을 경험하고 의견 교환을 통해 협력해보자는 취지이다.

[##_1C|1230226872.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자투어를 받는 단체_##]

한일 NPO 교류사업팀(이하 교류사업팀)은 니트족(Neet. '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의 약자로 15~34세의 일하지 않고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무직자라는 뜻)에 관심을 갖고, 그들을 돕기 위한 방안을 세우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으며, 3월 6일 하자센터를 방문했다. 여러 직업들을 체험하기도 하고, 많은 작업장들 중 하나에 속해 팀원들과 공동 작업을 하며 미래를 위해 공부하는 장소에서 청소년들이 어떠한 체험을 하고, 그로 인해 어떠한 영향을 받는지 알아보기 위함이다.

[##_1C|1301802528.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단체를 맞이하는 휘(노리단 단장)_##]

교류사업팀은 글로벌학교의 서울투어 후 센터에서 촌닭들의 공연을 본 뒤 좌담회를 가졌다. 서울투어를 진행한 리사(열린작업장/글로벌학교)는 “투어 당시 그들이 내게 미래의 직업을 물었을 때 그들과 나의 생각이 달랐다는 것에 조금 당황했다. 나는 직업을 정한 후에 그것에 맞춰 공부하는 게 아니라, 공부하며 정하는 단계에 있었기 때문이다.”라며 투어 소감을 밝혔다.

좌담회는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 강구야, 하자센터 부센터장 히옥스, 센터 죽· 판돌들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는 주로 대안학교에 다니는 청소년의 생활이나 직업에 대한 이야기와 사회적 기업으로 독립한 노리단의 이야기를 함께 나누었다.

[##_1C|1338727204.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자투어를 받는 단체 (2)_##]

교류사업팀의 방문에 대해 수(카페 그래서 인턴)는 "그들이 한일 NPO 교류사업팀이라는 건 몰랐지만, 촌닭들의 공연을 보는 것이 즐거웠고, 내가 일하는 하자센터가 외국에 알려질 정도로 유명하다는 것이 뿌듯했다."고 했고, 성궤(하자작업장학교 길찾기 과정)와 양따(하자작업장학교 길찾기 과정)는 "하자에는 하자에 대해 알려주고 반겨줄 수 있는 언어들이 있다는 게 멋졌지만, 교류사업팀 방문에 대해 자세히 알려줬다면 그에 관심 있던 사람들이 여러 가지로 물어볼 기회를 갖고 참여했을 것이다."라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이번 행사는 센터 내에서 죽돌들이 공연과 투어, 그리고 좌담회에 참석할 정도로 비중이 큰 행사였음에도 불구하고 사전에 정보공유가 부족했다는 것에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한일 NPO교류사업의 일부이자 첫걸음이 하자센터에서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행사가 되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_1C|1044850081.jpg|width="500" height="37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인터뷰에 맛 들려서 인터뷰만 한 기자. 밤비




참고기사

[오마이뉴스] "88만원 세대는 메이저, '니트족'은 마이너"
[오마이뉴스] "하자센터의 즐거운 분위기 배우고 싶어요"
[머니투데이:투자뉴스] "백수를 구세주로, 시민단체를 유망직장으로"


3월 13일 목요일 18시 하자센터 미니극장에서 ‘영화 읽는 목요일’팀이 구스 반 산트 감독의 <Good will hunting>이라는 제목의 영화로 첫 상영회를 가졌다.


왕양(열린작업장/촌닭들), 뿡(열린작업장/영상팀), 고메(열린작업장/글로벌학교)로 구성된 ‘영화 읽는 목요일’팀은 13일을 첫 시작으로 매주 목요일 18시마다 미니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게 된다. 극장장 고메는 “죽돌들이 하자의 이슈와 관심사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하는 것이 필요했다. 유리는 그 과정이 ‘영화’를 통해 이루어졌으면 좋겠다고 제안하셨고, 길드하자가 그것을 받아들여 ‘영화 읽는 목요일’을 기획하게 되었다.”고 전했다.[##_1C|1380498871.png|width="500" height="449"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극장장 고메, 왕양_##]


 극장장들은 관객들과 함께 최근 하자의 관심사가 된 ‘비평동무’에 초점을 맞춘 영화 <Good will hunting>의 리뷰모임을 가졌다. <Good will hunting>을 비롯하여 상영된 영화 <세계>, <타인의 삶>의 리뷰모임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영화 읽는 목요일’ 블로그에 올라와있다.(http://cinema.haja.net/)

 고메는 리뷰모임에 대해 “영화를 상영한 극장장으로서 관객들의 ‘입으로 말하는’ 리뷰가 궁금했다. 그리고 그들이 영화를 본 후에 하는 이야기들을 통해 극장장들이 무언가 배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누군가 ‘영화 읽는 목요일’의 핵심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나는 리뷰모임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것이다.”라고 했으며, “우리가 상영을 위해 하자의 이슈들을 파악해야하고, 그것에 맞춰 영화를 많이 보면서 고르는 게 힘들었다.”고 덧붙였다.

[##_1C|1268832064.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관객들의 모습_##]

극장장 왕양은 “‘영화 읽는 목요일’에 꼭 참석하지 않더라도 목요일 저녁 6시를 기억해주는 사람이 조금씩, 혹은 많이 늘었으면 좋겠다. 그러한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들이 영화를 고를 때 더 즐겁게 고르게 되는 것 같다.”고 전했다.

[##_1C|1053904282.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관객들의 모습 (2)_##]

유리(열린작업장/영상팀 판돌)는 “‘영화 읽는 목요일’팀의 멘토로서 그들의 많은 것을 지켜보았다. 극장장들이 초대, 멘트 등을 많이 고민했고, 그것들이 이번 상영회에 반영되었다.”며 자신의 생각을 말했고, 토토(열린작업장/영상팀)는 “시간이 애매해 곤란한 점들이 있었는데, 영화 선정이 좋아 그러한 점들이 커버되었다. 그리고 리뷰모임에서 극장장들이 영화에 대한 생각을 즐겁게 이야기할 때 나도 그들의 즐거움이 함께 느껴질 정도여서 좋았다.”고 전했다.

[##_2C|1329606496.jpg|width="260" height="172"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리뷰모임|1194511921.jpg|width="260" height="389"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리뷰모임 (2)_##]

좋은 영화와 그에 대한 생각을 유도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생각들을 다른 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시간까지 마련된 ‘영화 읽는 목요일’. 목요일 18시의 하자센터 복도는 한적하기도 하지만, 왠지 모를 즐거움마저 느껴진다. 앞으로 있을 극장장들의 활동을 기대해본다.

 

영화가 너무 보고 싶어서 김밥을 먹다 말고 미니극장으로 달려간 기자. 밤비

코로 냄새를 맡으며 처음을 기억하다.


 마을공동체를 기획하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마을 주민들이 서로를, 서로의 일상을 잘 아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생각은 그렇다. 글쓰기에 빠져서 살고 싶었던 주니어 첫 학기를 상상한 내게 갑작스럽지 않은 갑작스러움으로 찾아온 것은 바로 ‘웹진 하자로’였다. 주니어 첫 과제로 ‘하자로를 본 후 리뷰쓰기’라는 과제를 받았을 때는 나름 열심히 쓰겠다고 ‘웹진 하자로’가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았지만, 도저히 내 눈으론 링크가 어디에 걸려있는지조차 찾을 수가 없었다. 나는 하자마을의 주민인데도! 결국 하자넷(
http://www.haja.net/)에서 낯선 이름의 배너를 찾아냈다. 그 때도, 지금도 계속해서 열심히 조사하고 생각한 결과, 내가 현재 보고 있는 하자로는 ‘열린작업장’만의 이야기가 아니라, 정말 ‘하자센터’ 그 자체를 보여주는 기능성 웹진이다.

 ‘처음’이라는 것은 지독한데도 계속 맡게 되는 중독성이 있는 냄새라, 나는 종종 하자센터 구석구석을 킁킁대며 돌아다니는 내 모습을 발견하곤 했다. 그렇게 수도 없이 킁킁대다보니, 가장 가까운 사람들, 즉 같은 글쓰기팀이자 ‘웹진 하자로’의 편집국을 함께 맡고 있는 괭과 온달의 냄새를 킁킁대기 시작했다.

 코를 들이대며 낯선 냄새를 맡는 건 즐거울 때도 있지만, 즐겁지 않을 때도 있나보다. 적은 인원이라면 의견도 잘 모이고, 팀끼리 서로 단합도 잘 될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리의 냄새는 서로 너무나 달랐다. 행사들 속에 자리 잡고 앉아 일까지 거들며 취재할 건 다 취재하고 쓰는 족족 모모를 찾아 삼만 리를 헤매는 괭과, 회의 시간에 무언가 물어보면 ‘싫지는 않다’고 대답하며 사람 애간장 태우기도 하지만, 결국 믿을만한 이야기를 해 다시 안도하게 만드는 온달, 그리고 기사를 쓴답시고 2층 컴퓨터 앞에 살림이란 살림은 다 차려놓고 사람들이 지나갈 때마다 농담이나 던지며 제 할 일 제대로 안 하는 나(밤비)의 냄새들이 섞이자, 새로 마련한 집에 새로 산 가구들이 꽉 차있는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러한 것들이 점점 코에 익숙해지고, 몸에 익숙해져 한 달 정도 산 집의 냄새처럼 탈바꿈되었다. ‘새로운 팀이라서’, ‘처음이라서’라는 게 변명이 될 수도 있지만, 나에겐 그것이 기회가 되어 알아가는 과정을 만들어주었다는 점에 고마움을 느꼈다.

 어색하면서도 익숙한 냄새들이 모여 하자 사람들이 함께 알아주었으면 하는, 그것이 지속되었으면 하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린 것은 ‘자판기’였다. 물론 자판기 운영자로서 홍보를 하고 싶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자판기 운영자라고 하면 무조건 ‘신기한 기계를 다루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이 많았기에 겉으로 보이는 모습보다 운영자만의 이야기와 의지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래서 팀원들에게 꼭 자판기 이야기가 아니라도 ‘청소년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게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했고, 그것이 시발점이 되어 ‘청소년 창업-릴레이 기고’라는 고정코너가 생기게 되었다.

 또, 죽돌의 입장이 아닌, 하자센터를 바라보는, 혹은 센터 사람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보니 죽돌도, 판돌도 아닌 사람의 모습이 떠올랐다. 회의에서 ‘자원봉사’라는 것을 매개체로 센터에 관심을 보이고, 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다는 이야기가 나왔고, 그것을 ‘하자마을 사람들 이야기’라는 코너로 보여주자고 결론지었다.

 코를 킁킁대며 모든 사물과 사람과 환경을 둘러보는 것은 첫 도전이자 시작이다. 앞으로 우리는 하자센터의 모든 이야기에 코를 킁킁대고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귀로 들으며 우리의 모든 정보와 고민들을 ‘웹진 하자로’에 꽉꽉 채울 계획이다. 여러분은 글쓰기팀 블로그(http://findroad.haja.net/)에 한 학기 동안 많은 정보가 들어가고, 그 정보들이 기사화되는 것을 꿈꾸는 우리들을 상상하며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시길!

완료된 기사는 텍스트파일로 만들어 ftp에 올리도록.

완료된 사진은 제목을 페이지 숫자로 만들어 ftp에 올리도록.

(편집자 칼럼 이미지 x)

영화 읽는 목요일

->대신 쓸 수 있는 이미지.

. 포스터 꼴라주

. 크기는 1010x654 px

-->그림자에게 부탁함. (목요일까지 해오도록)

하자 마을 사람들 인터뷰 사진

->온달 연락

빔 1, 2: 달갱과 테디.

커버: 테디

 

page

 

(이미지가 완료되지 않은 것 밑줄)

(기사가 완료되지 않은 것 굵은 글씨)

cover -테디

편집자 칼럼 -밤비. 이미지x

1) 시작1 꽃 -괭

2) 시작2 줄넘기 -괭

3) 시작3 의자도색 -괭

4) 시작4 신발끈 -괭

5) 시작5 107호 도색 -괭

6) 빔1 -달갱

7) 살롱1 -온달

8) 살롱2 -온달

9) 영화 읽는 목요일 기사 -밤비. 이미지 - 그림자

10) 별자리파티 -괭

11) 하자마을사람들이야기-찬호샘 인터뷰1 -온달

12) 인터뷰2 -온달

13) 릴레이기고 -밤비

14) 빔2

15) 카툰

16) NPO 기사

17) 멘토링파티

18) 일정

 

3월 12일. 마을기획팀에서 준비한 별자리파티는 가람과 리사의 사회로 시작되었다.

쇼케이스 벽면을 물고기자리 모양 따라 전등으로 장식하니, 제법 별자리파티 분위기가 났다. 따뜻하고 아늑한 조명 속에서 짧지만 훈훈한 생일축하파티가 계속되었고, 열린작업장 주니어 왕양과 고메의 축하공연까지 어우러졌다.

이번 물고기자리 파티는, 매년 봄 즈음에 기획되고 봄이 끝나갈 무렵 자취를 감춰왔었던 별자리파티가 마을기획팀에 의해 새롭게 진행된 것이다. 하자센터 판돌 두부와 바다가 함께 공동체행사를 기획, 진행하는 팀이며 별자리파티는 앞으로도 ‘길드하자’와 함께 엮어나갈 것이다. 그간 자치회가 작업장학교 안에서만 움직였었다면 마을기획팀은 하자마을 전체 그리고 열린작업장 죽돌뿐 아니라 판돌, 자원봉사자 등 모두를 묶는다. 별자리파티를 기획하게 된 이유에 대해 바다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모여 서로 존재의 이유를 물어봐주고, 서로 격려해주는 이런 작은 행사들로 하여금 마을을 아우를 수 있었으면 하기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그럼 생일을 맞아서 물고기자리 파티에 초대되었던 당사자들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세세하게 챙겨준 것이 고맙고, 열린작업장과 연결되어 꾸려지는 것이 좋았다. 앞으로가 기대된다.”고 가람이 소감을 밝혔고 “갑자기 불려나가 당황했지만 따뜻하고 가족 같은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고 성은도 비슷한 의견을 말했다. 토토는 “개인적인 생일까지 하자사람들이 다같이 모여 축하해주어서 고맙고 감동적이었다.”고 인터뷰에 응했다. 아쉽거나 부족했던 점은 없었을까? 이에 대해 토토는 “전체적으로 준비가 부족했고 별자리파티 고유의 느낌은 못 받았다. 별자리의 특성을 무대디자인이나 진행에서 잘 보여졌으면 한다.”고 답했다. 마을기획팀 역시 “준비기간이 짧아 우왕좌왕한 점도 있었고 컨셉을 미리 정하지 못해 아쉽다.”라며 “길드하자 뿐 아니라 파티기획, 디자이너로써 활동하길 원하는 10대 작업자들과 기획을 함께 하고 싶다. 죽돌과 판돌, 그리고 개인을 엮어내는 이런 공동체행사를 앞으로고 열어갈 것이고 이에 마을기획팀이 기반이 되겠다.”는 계획까지 밝혔다. 앞으로의 별자리파티도 기대해 보며, 겨울까지 잘 진행되길 빌어본다.


겨울 출생 사심기자. 괭


[##_1C|1069958672.doc|style="width: 90px; height: 30px; border: 2px outset #796; background-color: #efd; background-repeat: no-repeat; background-position: center center; background-image: url('/image/extension/unknown.gif')"|_##]

참고로 지난 1월의 청소년 시민기자학교에서 오마이뉴스의 오연호 대표가 했던 강의자료예요.
이미 가지고 있는 글? 온라인학습생태계-오마이스쿨 페이지에서 다른 글들과 함께 볼 수 있어요.
 

3월 6일

NPO 단체 좌담회


희옥스 :

여러 그룹에서 와 있는 사람들이 있는데, 일단은 자기소개들을 해주세요.


죽돌 - 리사, 소라, 로이, 나나, 산, 고메, 가람, 꼬미

NPO - ?, 야마모토 시게루, 타츠야, 히비야, 미노리, 쿠도, 와카코, 마사, 리소우다 코우지

서울시대안교육센터 - 스피노, 강구야

판돌 - 세이렌, 모모, 단지, 바다, 두부, 희옥스

김찬호 선생님


희옥스 :

대안교육센터와 하자센터 소개를 해드릴게요.


강구야 :

대안교육센터는 서울시에 위치해 있는 도시형 대안학교들을 지원하고 연결하는 곳입니다. 이 학교에는 560명의 학생들이 있습니다. 모두들 일반 공교육을 그만 두고 온 학생들입니다. 그래서 이 도시형 대안학교들은 학력 인정이 되지 않습니다. 이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은, 상급학교를 지나가기 위해서 검정고시를 보고 있습니다. 이 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의 특성을 보시면 크게 6가지로 나뉘어지고 있습니다. 그 중 한가지는 굉장히 주거가 불안정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어제 꿈틀 학교를 방문하셨으면 아실 것 같습니다. 가정에서 최소한의 돌봄도 못하는 아이들이 그룹으로 모여 학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다른 한 유형은 정서적인 문제나 신체적인 장애가 있는 아이들입니다. 이 학교들에서는 교사들이 특수한 상황에 있는 아이들에게 대처하는 방법과 학습적으로 적용하는 방법을 연구하며 그 방법으로 배우고 성장하게 합니다. 세 번째는 탈북 청소년들을 위한 학교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싶은 게 혹은 하기 싫은 게 너무나 분명한 아이들을 위한 창의적인 학교도 있습니다. 그 다음은 자기가 하고 싶은 것과 하기 싫은 것이 판단이 안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여섯 번째는 우리 아이는 공교육으로 보내지 않겠다라고 생각하는 부모들이 보내는 학교입니다. 여러 유형의 아이들과 학교들이 있지만 크게는 이렇게 여섯가지로 나뉘어져있습니다. 각각의 학교들은 20~30명 정도 되는 작은 학교이기 때문에, 학교를 운영하는데 어려운 면이 있습니다. 그래서 서울이라는 도시 전체에 학습 자원들을 개발하는, 미술관 박물관 문화센터 등을 학습 자원으로 개발하고 네트워크를 만드는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각각의 작은 학교들끼리 모여서 중창 대회라던지, 체육대회, 연합 여행 등의 공동 행사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지만 네트워크를 통해 커지는 형태를 상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학생들의 교류와 경험을 위해 네트워크를 만드는 곳이 서울시 대안 교육센터입니다.


희옥스 :

(하자 설명 : 일어로 개표를 그리다.)

서울에 청소년을 위한 시설들이 있는데 하자센터는 그 중의 특화시설입니다. 서울시에서 운영해야하는 직업체험센터라고 하는 것을 연세대와 ( ) 위탁을 받아서 운영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로부터 이 건물하고 땅을 운영비로 보조를 받고 있습니다. 올해로 9년 째 운영되는 중입니다. 이게 서울시의 시설이기 때문에 특정한 청소년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기의 스텝들이 생각할 때는 청소년들이 겪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고 특히나 살면서 해야 하는 직업에 대한 고민과 문제가 있을 때, 청소년들이 각자 무엇을 하면서 살고 싶다 라고 얘기를 하는 게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속 해서 그런 실험과 작업을 실행하고 있습니다. 그런 실험을 위해서는 서울시에서 보조 받지 않는 예산을 쓰기 때문에 다른 기업과 국가로부터 예산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 배경을 생각하면서 하자센터는 운영부를 제외하면 네 개의 그룹으로 설명드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런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질문과 실험을 하게 되는 우리 만에 reference 그룹이 있는데, 그것은 작업장 학교와 열린작업장(오픈 스튜디오)를 통해, 청소년들이 무엇을 하는 게 좋고 무엇을 해야 하는 지를 찾아보게 하는 작업장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질적으로는 이 프로젝트는 연결된 프로젝트인데, 이 작업장은 탈학교 학생들을 중심으로 무기력해지는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서, 다시 몸과 마음을 일깨우고 뭔가를 시작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하는 단계라고 생각을 하시면 됩니다. 여기서는 아마 제일 중요한 게 아침에 제시간에 등교를 할 수 있냐 라는 것입니다. 제일 부담스러우면서도 기대를 하고 있는 신입생 프로젝트는 걸어서바다까지입니다. 바다까지 걸으면서 자기 자신을 재활을 하는 프로젝트가 매년 신입생들에게 진행되고 있습니다. 처음엔 1400km 정도 걸었는데, 현재 1500km를 걷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과정을 거친 다음에 가게 되는 곳이 열린작업장입니다. 청소년들이 스스로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스스로 작업을 하고 기획을 하고 공동작업을 하게 되는 단계입니다. 예를 들면 아까 보셨던 촌닭들이라던지, 디자인이라던지, 영상이라던지, 글로벌이라던지 이런 프로젝트들이 열린작업장에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열린작업장에서 경험하는 것이 두가지로 진화하게 됩니다. 한 가지 방향은 이것을 경험한 사람들에 대한 것이에요. 그 사람들이 다음 단계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했을 때 하자 내에서 하게 되는 것은 창업팀입니다. 창업 프로젝트 안에는, 제일 첫 번째 프로젝트가 노리단이었고, 두 번째는 여전히 진행되고 있는 요리스튜디오, 촌닭들, 글로벌학교, 명함 디자인팀, 미디어 아트 교육팀. 어제 희망청을 통해 명함 디자인팀과 미디어 아트 교육팀을 만나보셨을 거에요. 그런 사람들은 20살을 넘었기 때문에 노리단과 함께 희망청에서 위탁을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로, 열린작업장 다음에 사람이 아닌 컨텐츠로 가는 사람들은 직업체험 프로그램으로, 하루짜리, 일주일짜리, 한달짜리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몇 명의 청소년들이 이곳에 있느냐 라는 질문이 굉장히 어려운데, 이 세 개의 프로젝트를 합하면 100명이 조금 넘을 것입니다. 그리고 직업체험 프로젝트에서 꾸준히 체험을 하고 있는 사람은 100명에서 150명 정도 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1일 체험이라던지 여러 방식의 프로그램이 있기 때문에 참여를 하는 사람을 다 합하면 10000명 정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1980년대에 이 건물은 남부근로청소년회관이었는데요, 그건 왜 그렇냐면 이 근처가 전부 공장이었기 때문에, 공장 기술을 배우는 청소년들을 키울 생각이었기때문입니다. 오전에 봤던 전태일 동상처럼 그런 사람들이 사용하는 공간이었다고 생각하시면 될 겁니다. 90년대 쯤 돼서부터는 이 건물의 공간도 해체가 되기 시작했고, 이 시설을 사용하는 청소년도 별로 없었습니다. 돈을 벌기 위해서 일을 해야 하고 일을 하기 위해 훈련을 받는 프로그램이 아니라, 하자센터에 오려면 왜 일을 해야 하고 왜 이곳에 오고싶은지의 이유가 없다면 아마 하자센터는 지속되지 않았을 겁니다. 아침에 창신동을 보셨을 때 너무 급격하게 변화해가는 상황에서 삶의 동기와 의미를 추적하면서 그것이 일도 되고 삶도 되고 그런 일을 찾는다는 것은 하자센터에서 하는 실험 없이는 찾기 힘들다고 생각하고, 그런 일을 직업으로 연결시키는 작업들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에는 정치적으로 이용되고 있는 단어이기 때문에 조심스럽지만, 창의적인 산업과 관련된 프로젝트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생산업이라는 게 전태일이 말했던 우린 기계가 아니다 라는 말과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쿠도 :

13억원이라고 되어있는데, 건물 유지비 같은 것도 다 운영비의 포함되고 있나요?


희옥스 :

아니요.


시게루 :

3년정도 하자센터를 알고 있었는데 예산과 지원금이 늘었다고 들었는데?


희옥스 :

서울시에서의 예산을 크게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다른 쪽에서 돈이 들어오고 있습니다. 후원금이 있다던지, 그런 것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코우지 :

어떤 사람들이 무급 쪽으로 일하고 있는지? 스텝들을 모집은 어떻게 하는지? 연령층은? 얼마나 많이 바뀌고 있는지?


희옥스 :

무급이 아니고요, 파트 타임 강사를 그렇게 썼습니다. 15세 이상에서 24살이 법적으로 청소년들인데 그 정도는 오픈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스텝의 연령층은 딱히 정해져있는 것은 아닙니다. 20대인 사람이 10명정도, 30대인 사람이 14명, 나머지는.. 채용은 많이 하고 있는 편입니다. 충분히 이 내용을 알고 있는 사람들을 모집하고 있고, 지금은 공개모집을 하고 있습니다. 큰 문제는 없지만, 때때로는 대안적인 실험을 계속 해야하기 때문에 그런 감을 잘 못 잡고 있고, 젊은 나이에 재미있는 경험을 겪고 싶은 사람들이 있고. 그래서 1년 쯤 됐을 때 즐거운 경험했다고 나가시는 분들이 많으시고 3년 정도를 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는 편이에요. 많이 순환되고 있는 편이지요.


20대들 같은 경우는 누구든지 하자에서 경험을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더 많이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다른 곳에 갔다가 오는 경우도 있고요. 3년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안하고, 이 곳에 오래 있는 사람은 2~3명 정도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코우지 :

6년은?


희옥스 :

지금까지 8년동안 있었던 사람은 한 사람이고요. 나머지는 3년 정도. 나갔다가 다시 온 케이스에요. 저도 나갔다가 다시 온 케이스입니다.


와카코 :

도시형 대안학교 같은 경우는 꿈틀학교에서 학생들이 대안학교로 많이 간다고 하는데, 자신들은 작은 규모라고 말했다. 네트워크 쪽은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강구야 :

한국사회라는 건 어쨌든 학년과 학벌 사회입니다. 그래서 학년 인정에 학교를 아이들이 자발적으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제도적으로 8살이 되면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가고 중학교에 가고 제도적으로 규정되고 있을 뿐입니다. 90% 이상이 그렇게 따르고 있습니다. 학교를 그만두고 나오는 사람들은 학교의 부정을 통해가지고 나오는 경우이기 때문에 이 아이들이 학교에서 나와서 작은 학교를 찾지는 않는다는 것이죠. 1년에 4만명 정도 되는 아이들이 학교를 그만두고 있습니다. 대안학교로 들어오는 아이들은 2000명정도 됩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어디에 있을까요? 대부분이 집에 있습니다. 혹은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거나 PC방에서 게임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이들이 안전하게 배움의 과정을 학교를 그만두더라도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고 배움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서울시 대안학교의 주 역할입니다. 아까 네트워크에 대한 질문도 하셨는데, 네트워크는 두가지로. 하나는 지역네트워크로, 학교, 문화센터, 지역센터 등이 있는데 그것들이 적절하게 작은학교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합니다. 두 번째는 기관 네트워크는 교육청과 서울시, 청소년 상담원 이런 식의 정책적인 네트워크들이 필요합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올 때마다 더 많은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시게루 :

하자센터 같은 경우에는 창의적인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이 참 많을 것 같은데, 자신들이 좋아하는 장르를 생활과 직업으로 연결시킨 경험이 있으면 얘기 좀 해주시겠습니까? 음악가가 되고 싶다거나, 댄서가 되고 싶다거나, 영상 기획자가 되고 싶다거나,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나요?


희옥스 :

제도적으로 그렇게 갖고있진 않지만, 개념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있어요. 열린작업장을 통해 작업을 하는 게 있는데, 아트 쪽으로 가는 건 거의 없다. 창업으로 가져가거나 아르바이트로 가져가거나 하거든요. 하자센터 안에 있을 때는 자신의 노동과 고민으로 가져가는 훈련을 하고 있는 것이에요.


코우지 :

아까 대안학교의 형태가 6가지라고 했는데 거주 불안정 빼고 나머지 같은 경우는 부모와의 관계성은 어떤지? 그리고 부모들의 대한 프로그램이 있는지.


강구야 :

학교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부모와의 관계를 대단히 중요시 하는 학교도 있고 그렇지 않은 학교도 있고. 중요시 하는 학교는 수시로 부모와의 워크숍과 회의를 진행시키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학교는 부모와의 거리를 두고 있습니다.


희옥스 :

하자센터가 재미있는 경우는 이런 것이 있어요. 경제적인 측면에서 접근하는 세대의 유형이 있는데,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인 것을 접할 때 대안적인 학습에서 참여를 하기 시작했어요. 이제부터 왜 이렇게 되고 있고 어떻게 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기 시작한 것 같아요.


타츠야 :

하자센터에서 노리단이 사회적기업으로 훌륭하게 진행되었는데, 노리단이 하자센터에 있다가 독립할 때까지 스텝들이 얼마나 관여했는지? 완전히 독립한 다음에는 완전히 손을 때고 회계와 재정을 없애는 건지?


희옥스 :

처음에 시작할 때는 10대들의 프로그램으로 시작했던 것이고, 그것을 관여하는 직원들은 4명이었어요. 그 프로그램이 어느정도 성공적이라고 생각했을 때는 연령대를 넓혀서 어린이부터 어른들까지 다 함께 할 수 있는 시스템으로 진화했습니다. 공연 수입과 워크숍 수입이 참여한 사람들에게 인급을 줄 수 있는 수준이 되어서 창업팀으로 확장을 했습니다. 작년 말에 독립을 하게 되었는데 주식회사도 만들고 사회적 기업의 인증도 받았고, 독립을 했던 건 현재로서 재정을 했다는 것이고요, 그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스텝들이 지금은 노리단의 단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중요한 기획 회의라는 것은 하자센터와 대안교육 센터의 장인 조한혜정이 참여를 하면서 저와 강구야와 노리단의 단장인 휘와 네명이서 항상 함께 회의를 하기 때문에, 서로에게 조언을 주는 관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시게루 :

대안교육센터나 하자센터나 잘 운영되고 있는 것 같은데, 지금 가지고 있는 가장 큰 과제는 무엇일까요?


강구야 :

대안교육센터는 아무래도 학력인증이 되지 않는 학교이니까, 제도적인 지원이 없는 상황입니다. 이런 정책적인 과정들이 어떻게 변하느냐에 따라 크게 요동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런 불안감 속에서 학교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학교들을 운영하다 보면 공교육의 체계들 속에서 조금씩 고쳐가면서 여기까지 왔는데, 그런 것을 부정하고 새롭게 무언가를 만들어나가야 할 때의 부담감이 있습니다. 교사들이 자신이 얼마만큼 감당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능력에 대해 회의를 하고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그럼으로 교사들이 오래 버티지 못하고 나가버리는 경우가 꽤 있습니다.


교사들이 그런 불안감에 시달리지 않고 서로를 지지하고 서로의 관계속에서 성장을 하는 그런 커뮤니티를 어떻게 만들어 낼것인가가 현재 가장 많이 고민하고 있는 질문입니다.


희옥스 :

현실적으로 하자센터는 서울시와 3년만에 한번씩 재개약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내년을 바라보면서 하고 있는 고민은 사회적 책임에 대한 고민이에요. 우리가 지금까지의 어떤 내용을 잘 만들어왔는데 그것을 서울적인 방향으로 더 고민을 해보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청년문화원에서 파일럿 프로젝트처럼 시작한 것이 있는데, 온라인 학습 생태계라는 것이고요. 지금까지 10년 동안 대안교육센터와 하자센터를 통해서 배운것들을 온라인에서 공유를 하는 것입니다. 아까 졸업하고 하자에 와 있는 스텝들도 있지만, 졸업 이후에 평생 학습을 걸쳐 하는 고민이고, 김찬호 선생님과 더불어서 하자센터 안과 밖에 있는 청소년들을 위한 새로운 인문학을 위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아직까지는 시작이지만, 직접적인 영향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실험하고 있습니다.


코우지 :

연세대학교가 들어가있는데, 연세대 이외에 이런 대안학교를 지원하고 함께 하는 학교는 없나요?


강구야 :

연세대학교 같은 경우는 조한혜정 선생님이 이 문제를 가지고 일찍이 고민들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청년문화원이 만들어졌었고, 처음엔 하자센터를 이렇게 설립을 한다 라고 했을 때 지금은 먹고 사는 문제이고 이런 고민으로 넘어가야 한다 라고 합니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과정에서도 먹고 사는 문제로 이야기로 대안교육이 조금씩 생기고 있는 것인데, 한국 대학교들은 사회복지사 같은 곳들을 운영할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것들을 운영하고 있지만, 그것이 다 같은 모습으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청소년 문제를 다루고 고민하는 곳은 청년문화원 밖에 없을 것입니다.


시게루 :

나이 든 사람들이 올 것이다라고 생각하셨을 텐데, 젊은 사람 중심으로 온 것입니다. 하자센터 쪽에서 이런 것을 같이 했으면 좋겠다, 혹은 도와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것이 있는지?


희옥스 :

노리단을 하시라고, 하하. 노리단은 목공도 해야하고, 직접 악기도 만들고, 공연 하는 법을 가르치기도 하고, 관계적으로 혼자 작업하는 것, 그리고 무대에 서보는 것, 그리고 남한테 가르쳐 보는 것이 참 좋은 스텝적으로 프로그램이 될 것 같아요.


리사 :

각자 어떤 기관에 있고 무슨 일을 하는지 자세히 얘기를 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책이 있었다...OTL)


가람 :

계속 들었는데, 한국말 일본어를 듣느라고 잘 이해하지 못할 수도 있는데, 이곳에 오신 이유가 하자를 알기 위해서 오신건가요? 그리고 그 다음 단계에 무엇을 할 건지?


히비야 :

저는 국제 교류 기금 직원입니다. 이 NPO 단체를 기획을 할 때는, 처음에 한국 단체가 일본으로 왔고 이제 일본 단체가 한국으로 왔습니다. 자료나 이런 데이터를 봤는데 직접와서 보는 것은 다릅니다. 이런 일을 계속 사업적으로 연결해나가고 싶고 일본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이런 이야기를 해주고 보고서의 형태로 제출해서 최대한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작업을 할 것입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무엇을 함께 하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조금 어렵겠지만 일본으로 돌아가서 정리를 한다음에 또 연락을 취할 계획입니다.


코우지 :

어떤 사람들이 무슨 단체에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모르니까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타츠야 :

나이스라는 단체에서 왔고요. 공동생활을 정부에서 지원을 받아서 프로젝트를 하는데, 공동생활을 통해서 어려움에 있는 학생들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일본에 희생 노동청에 지원을 받아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노리단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을 해보겠습니다.


시게루 :

일본의 니트나 프리타 중에서 꿈을 실현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만화가나 작가나 방송관계일을 하고 싶어하는 청소년들을 키워주고, 구체적으로는 집을 여섯 개정도 빌려서 만화가 지망생 33명을 지원하고 있고 출판사와 올 백수 재팬을 지원하고 있기도 합니다. 조금 더 하자센터 학생보다는 나이가 있는 어른들의 하자센터라고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코우지 :

굿이라는 단체에서 왔고요. 이전에 학교를 다닐 때부터 여행을 좋아해서 아시아 각국의 여행을 많이 했습니다. 50개국 정도 돌아다녔는데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이랑 함께 일하고 싶고 그래서 단체를 만들었습니다. 7살 때 등교거부를 당한 히키코모리를 봤는데, 자신을 살려주고 지원을 해주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다같이 모여서 워크숍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스리랑카에서 우물파는 작업이라던가, 태국에서 수도를 파는 작업이라던가, 그런 워크캠프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접하면서 일본에서도 사회에 적응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단체를 꾸리고 있습니다.


마사 :

케이투 인터네셔널에서 왔습니다. 14~15살까지 학교를 다니다가 등교거부를 당했습니다. 그것이 계기가 되어서 젊은 청소년들을 지원해주고 싶었습니다. 저희 단체에서는 뉴질랜드, 요코하마, 호주의 시드니를 통해 학습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을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어학을 지원해주기도하고, 뮤지컬에 다닌다거나 서핑을 하거나 그런 자신이 원하고 즐거워하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주고 있습니다. 하자센터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좋은 시설이 있다고 생각하고 찾아온 만큼, 빨리 좋은 상태로 회복되고, 노리단도 성공을 시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와카코 :

젊은이들을 위한 서포트 센터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히키코모리, 니트, 프리타들을 사회로 나가게 하기 위해서 지원을 해줍니다. 카운슬링, 그룹 워크, 세미나를 통해서 자신의 길찾기를 하게끔 지원하고 있습니다. 계속 다니는 형태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 다이나믹한 공연을 보여주시고 좋은 학생들의 모습을 많이 봐서 굉장히 기분이 좋습니다.


쿠도 :

사회 참여와 일을 할 수 있게 지원해주는, 일을 지속하게 하는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와 대학교에서 제도권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적응하기 어려운 학생들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저도 일본대학에서 2년정도 다니다 그만두고 미국에서 3년다니다 그만두었습니다. 시간적으로 하기 보다는 힘들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사는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합니다. 학생분중에서 일어를 잘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기숙형태가 갖춰져있는 곳을 아니까, 일본을 싸게 가고 싶은 분들은 저에게 연락을 해주세요.

나는 어떤 늙은 남자에 관한 이야기를 하려고 한다.
이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피곤한 표정을 지니고 있으며
미소를 짓기에도 너무 지쳤고 화를 내기에도 너무 지친 어떤 남자에 관한 이야기이다.
그는 어떤 조그만 도시의 길 끝 또는 교차로 근처에 살고 있다.
그의 모습을 묘사하는 것은 쓸 데 없는 일이다.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는 회색 모자와 회색 바지와 회색 상의를 입고 있고, 겨울에는 긴 회색 외투를 걸친다.
그의 목은 가늘고 피부는 기름기가 빠졌고 주름이 잡혔다.
하얀 셔츠의 깃이 그에게는 너무 넓어 보인다.
그의 방은 그 집의 맨 위층에 있다. 어쩌면 그는 결혼을 해서 자식들이 있을지도 모르고,
옛날에는 다른 도시에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도 한때 어린 아이였을 것은 틀림없다.
그러나 그때는 어린아이들이 어른처럼 교육되던 시절이었다. 할머니의 사진첩을 보면 그런 시절이 나온다.
그의 방에는 의자가 둘, 책상 하나, 양탄자 한 장, 그리고 침대와 옷장이 하나씩 있다.
조그만 책상 위에는 괘종시계가 하나, 그 옆에는 오래 된 신문과 사진첩이 놓여 있고
벽에는 거울과 사진이 한 장 걸려 있다.
이 늙은 남자는 아침마다 산책을 하고 오후에도 한 차례 산책을 했다.
이웃 사람들과 몇 마디 말을 주고받고, 저녁때면 자기 책상에 앉아 있었다.
이러한 일과는 결코 변하는 법이 없었다. 일요일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이 남자가 책상에 앉아 있을 때면 괘종 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가 그에게 들려왔다.
괘종시계는 언제나 똑딱거렸다.
그런데 한 번은 보통 때와는 다른 날이 있었다.
그 날도 햇볕이 났고, 너무 덥지도 너무 춥지도 않았고, 새들은 지저귀었고,
사람들은 친절했고, 아이들은 놀고 있었다.
보통 때와 달랐던 점은 이 남자에게 갑자기 세상만사가 마음에 들게 된 것이었다.
그는 미소를 지었다.
‘이제는 모든 것이 달라질 거야.’
하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셔츠의 맨 위쪽 단추를 끄르고, 모자를 벗어 손에 들고, 발걸음을 빨리 했으며,
심지어는 까치 걸음을 흉내내면서 기뻐했다.
그는 자기 집 가는 길로 접어들자 아이들에게 고개를 끄덕거렸고,
자기 집으로 들어가서는 층계를 높이 올라가,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어 자기 방 문을 열었다.
그러나 방 안에는 모든 것이 여전했다. 책상 한 개, 의자 두 개, 침대 하나,
그리고 그가 앉자마자 다시 괘종시계가 똑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하나도 달라진 점이 없었으므로 모든 기쁨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 남자는 커다란 분노에 사로잡혔다.
그는 거울 속에서 자기의 얼굴이 빨개지는 것을 보았고 자기의 눈이 가늘게 깜빡이는 모습을 보았다.
그러자 그는 주먹을 쥔 두 손을 높이 올렸다가 책상 바닥을 쾅 쳤다.
처음에는 한 번만 쳤고, 좀 있다가 또 한 번, 다음에는 북 치듯 책상을 두드리며 자꾸만 소리 질렀다.
‘달라져야만 한다. 달라져야만 해!’
그에게는 괘종시계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그러는 동안 그의 손은 아파지기 시작했고 목소리는 쉬어 버렸다.
그러자 다시 괘종시계의 소리가 들려왔고,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언제나 똑같은 책상.’
하고 그 남자는 말했다.
‘똑같은 의자, 의자, 침대, 사진. 나는 언제나 책상을 책상이라 말하고,
그림을 그림이라 말하고, 침대는 침대라 부르고, 의자는 의자라고 부른다.
도대체 왜 그렇게 불러야만 한단 말인가?’
불란서 인들은 침대를 <리>, 책상을 <타블>이라 말하고 그림은 <타블로>,
의자는 <셰에즈>라 부르며, 서로들 이해한다.
중국인들은 그들끼리 역시 이런 식으로 의사를 통한다.
‘무엇 때문에 침대를 사진이라고 부르면 안 된단 말인가.’
이렇게 생각하고 그 남자는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나서 그는 껄껄 웃었다.
이웃 방 사람들이 벽을 두드리며
‘조용하시오.’
하고 소리 지를 때까지 그는 웃어댔다.
‘이제는 달라지는 거다.’
하고 그는 외쳤다. 그리고 지금부터 침대를 <사진>이라고 말하기로 했다.
‘나는 피곤해. 사진 속으로 들어갈 테야.’
라고 그는 말했다. 그래서 그는 아침마다 흔히 오랫동안 사진 속에 누워 있었다.
그럼 의자는 무엇이라고 말할까, 곰곰이 생각해 보고 그는 의자를 <괘종시계>라고 부르기로 했다.
즉, 그는 일어나면 옷을 입고 괘종시계 위에 앉아 책상 위에 팔을 짚었다.
그러나 책상은 이미 책상이라고 불리우지 않았다.
책상은 이제 양탄자라고 불리우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아침에 이 남자는 사진을 떠나 옷을 입고 양탄자 위의 괘종시계 위에 앉아
무엇이라 부를 수 있을까 곰곰이 생각하게 된 셈이었다.
침대를 그는 사진이라고 말했다.
책상을 그는 양탄자라고 말했다.
의자를 그는 괘종시계라고 말했다.
신문을 그는 침대라고 말했다.
거울을 그는 의자라고 말했다.
괘종시계를 그는 사진첩이라고 말했다.
옷장을 그는 신문이라고 말했다.
양탄자를 그는 옷장이라고 말했다.
사진을 그는 책상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사진첩을 그는 거울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결국 이렇게 된다.
아침에 이 늙은 남자는 오랫동안 사진 속에 누워 있었다. 아홉 시에 사진첩이 울렸다.
이 남자는 일어나 발이 시렵지 않게 옷장 위로 올라 섰다.
다음에 신문에서 그의 옷을 꺼내 입고, 벽에 걸린 의자를 들여다보고,
양탄자 앞의 괘종시계 위에 앉아 자기 어머니의 책상을 발견할 때까지 거울을 뒤적거렸다.
이 남자는 이것이 즐거웠다.
그는 온종일 연습을 했고 새로운 단어들을 암기했다. 이제는 모든 사물의 이름이 바뀌었다.
그 자신도 이제는 남자가 아니라 하나의 발이었고, 그 발은 아침이었고, 그 아침은 남자였다.
이제 여러분들 스스로가 이 이야기를 끌고 나갈 수 있다.
이 남자가 한 것처럼 여러분도 다른 단어들을 바꿔 볼 수 있다.
<울린다>라는 말은 <세워 놓다>로,
<언다>라는 말은 <바라본다>로,
<누워 있다>라는 말은 <울린다>로,
<서 있다>라는 말은 <언다>로,
<세워 놓다>라는 말은 <펼친다>로 바꿔 보자.
그러면 이렇게 될 것이다.
남자에 달린 이 늙은 발은 오랫동안 사진 속에서 울리고 있었다. 아홉 시에 사진첩은 세워 놓았다.
이 발은 얼어 올라왔고 아침이 바라보지 않도록 이 발은 옷장 위에 자신을 펼쳤다.
이 늙은 남자는 파란 노트를 사서 이 새로운 단어들을 거기에 가득 적었다.
그는 할 일이 너무나 많았으므로 사람들이 그를 길에서 볼 수 있는 기회는 아주 드물게 되고 말았다.
그리하여 그는 모든 사물을 부르는 새로운 명칭을 배웠고
그러는 동안 점점 본래의 정확한 명칭을 잊어버리게 되었다.
이제 그는 자기 혼자서만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언어를 갖게 된 것이다.
어느새 그는 때때로 이 새로운 언어로 꿈을 꾸게 되었고
그리고 나면 학교 다닐 때 배운 노래들을 자기의 언어로 번역하여 나지막하게 혼자서 노래했다.
그러나 얼마 가지 않아 이 번역도 그에게는 힘들게 되었다.
그는 옛날의 언어를 거의 다 잊어버려 이제는 본래의 그 언어를 파란 노트를 뒤적이며 찾아야만 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이 그는 두려워졌다.
사람들이 이 사물을 뭐라고 말하더라 하고 그는 오랫동안 생각해 봐야만했기 때문이다.
그의 사진을 사람들은 침대라고 말한다.
그의 양탄자를 사람들은 책상이라고 말한다.
그의 괘종시계를 사람들은 의자라고 말한다.
그의 침대를 사람들은 신문이라고 말한다.
그의 의자를 사람들은 거울이라고 말한다.
그의 사진첩을 사람들은 괘종시계하고 말한다.
그의 신문을 사람들은 옷장이라고 말한다.
그의 옷장을 사람들은 양탄자라고 말한다.
그의 책상을 사람들은 사진이라고 말한다.
그의 거울을 사람들은 사진첩이라고 말한다.
그리하여 이 남자는 사람들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면 웃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누군가
‘당신은 내일도 축구 경기를 보러 가십니까?’
라고 말하는 것을 듣거나, 또는 누군가
‘벌써 두 달 동안이나 계속 비가 오는군요.’
라고 말하는 것을 듣거나, 또는 누군가
‘미국에 저의 아저씨가 한 분 계십니다.’
라고 말하는 것을 들으면 그는 웃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웃을 수밖에 없는 것이, 그는 이 모든 말을 이해할 수 없었던 때문이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우스운 이야기는 아니다. 이 이야기는 슬프게 시작되어 슬프게 끝났다.
회색 외투를 걸친 이 늙은 남자가 이제는 사람들을 이해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은 그렇게 나쁘지 않았다.
이보다 훨씬 더 나쁘게 된 것은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이해할 수 없게 된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이제 말을 하지 않았다.
그는 침묵했고,
자기 자신하고만 이야기했고,
인사조차 하지 않게 되어 버렸다.


페터 빅셀, 김광규 역, 도서출판 문장 1991, 『책상은 책상이다』p.34

 

열여섯 하자와의 첫 만남은 내 꿈,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고민하던 중학교 3학년 시절 언니를 통해 하자에서 검도를 하게 되었다. 비록 길 찾기도 주니어도 판돌도 죽돌도 아니었지만 검도를 배우는 하자의 무용실에서 만큼은 하자의 죽돌 인양 죽치고 검도만 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나고, 연세대 물리학 과 교수 이신 박홍이 선생님의 퇴임으로 검도 부는 없어 졌고, 난 학교에서 조리 자격증 위주에 공부를 하기 시작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고 열아홉 마지막 여름 방학이 찾아 왔다. 7월 "일과요리"라는 창업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사실 창업에 대해 관심이 많았던 것은 아니다. 단지 열아홉 내 마지막 십대를 뜻 깊고 새롭게 보내고 싶었고, 호기심과 기대감이 컸던 것 같다. 인터뷰는 머리를 질끈 묶은 세이렌과 검정색 옷과 단아한 웃음의 히옥스 쓰디쓴 에스프레소를 추출 해 주신 그레이스 하얀 얼굴과 검은 머리카락을 가진 가인과 함께 우리는 현실과 미래 속에 공존하는 창업에 대해 이야기 나누었다. 그 후 맛보기 시장에서 생과일주스와 파인애플 막대를 팔았었는데, 생과일주스를 만들 때 블렌더를 갈 고 나서 씻을 개수대가 없어 수돗물을 받아 와서 씻었던, 기억이 남는다. 예상 외로 생과일주스는 잘 팔렸지만, 204호에서 히옥스와 함께 노동비와 재료의 원가 그 원가에 맞는 가격 선정 등 많은 것을 따져 보니 우린 적자였고, 아롱아롱 맺혀 버린 204호의 추억들이 창업에 쓰디 쓴 맛을 보게 해 주었다.        


현재 우리 요리 팀은 목소리 큰 가인 디테일 한 설 왕왕 왕 왕언니 거침없는 미란 순수한  진아 지구인 샨티 6명이 요리 하모니(하자 내에서 운영하는 급식) 와 hello 79!(카페 “그래서” 에 의탁 판매 형식으로 브라우니와 쿠키를 납품하고 있는)를 운영하고 있고, 외부에서는 케이터링을 하기도 한다. 케이터링은 출장 뷔페와 같은 개념으로 보아지는데, 우리에게 케이터링을 의탁한 회사나 기업에 찾아가 우리들 만에 음식으로 테이블 세팅을 한다.  우리 요리 팀은 사회적 기업을 목표로 삼고 있다. 간단히 말하자면 일반 기업에서는 영리를  주된 목적으로 하지만 사회적 기업에서는 영리가 아닌 일자리 창출인 기업을 만드는 것이다. 요리 하모니를 운영 하면서 우리는 몸에 베인 기술을 습득하고, 경험 속에서 배우는 신속함, 정직한 요리를 하면서 사회적 기업에 밑거름이 될 수 있는 일을 하고 있다.  Hello 79!는 요리 팀에서 구성 되어 있는 창업 팀 중에 하나인데, 안녕 친구! 안녕 하자! (하자에 번지수가 79번지 여서)라는 뜻을 가지고 있고, 음식이라는 매개체로 누구나 친구가 될 수 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지금 현재 카페 "그래서"에 의탁 판매로 쿠키 또는 브라우니를 납품하고 또 다른 방식에 베이커리를 만들어 보고 실험 해 보고 있다. 3월 3째부터 장애우 친구들을 대상으로  베이킹 수업을 진행 하게 되는데, 즐거운 시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요리를 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창의력과 언어 그리고 즐거운 마음이다. 요리트레이닝은 접해 보지 못한 또는 접해 보았지만 잘 알지 못하는 음식들을 트레이닝 하고, 맛을 보고 이 음식은 어떤지에 대해 얘기 나눈다. 또는 다음에 만들 때는 다른 방식으로 만들어 보는 실전을 통해 트레이닝에 복습도 해본다. 우리에 요리를 세계적으로 광범위하게 보니, 내가 만든 음식에 대해 설명해 줄 수 있고, 대화 나눌 수 있는 요리사가 되기 위해 요리 팀 내에서는 4월  매주 화요일부터 영어수업을 듣는다.


요리를 한다는 즐거움은 내 마음에서 부터 나온다. 요리를 할 때는 나도 모르게

요리를 만들 때만큼은 기분이 좋지 않더라도 좋은 마음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내 손 끝으로 부터 전해지는 즐거움이 음식 속에 배어 들어와 내 음식을 먹는 사람들에게 까지 즐거움과 행복감을 준다. 그리고 더 발전해서 내가 정말 나만의 음식을 만들고자 할 때 내 머리 속에 생각했던 음식을 직접 만들어보거나, " 맛 투어 "를 다녀 보자! 많이 먹어 보고, 내가 맛 본 음식에 대해 단어장을 만들어 내가 느낀 맛에 대해 글로 표현하는 재미있는 작업들을 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어떠한 역경도 최고의 기회, 최고의 지혜가 숨겨져 있다. 실패는 없다 다만 미래로 이어지는 결과일 뿐이다.

현재 내가 하고 있는 일에 대한 열정 또는 다른 일을 시작 할 때의 초심 모두가 잃지 말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