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독과의 만남을 통한 새롭게 보기, 낯설게 보기


 하자로 3월호 영화읽는목요일팀과의 인터뷰에서 이들은 영화를 통해 죽돌들이 하자의 이슈에 대해 고민하고 이야기하게 됐으면 좋겠다고 했다. 영화읽는목요일팀은 이번 감독과의 만남을 통해 어떤 이슈를 만들어내길 원했을까? 이들이 만남을 진행하면서 ‘이슈’를 만들어냈던 과정을 정리해보자. 영화 선정 기준이 되었던 주제는 ‘낯설게 보기, 새롭게 보기’였다. 감독 섭외는 유리(열린작업장 판돌)가 했다.
 
첫 번째로 4월 10일 오후 여섯시에 999에서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의 황윤감독과의 만남이 영화 공동체상영 후 이뤄졌다. 진행은 원(하자졸업생)이 맡았다. 대지에 살아가는 거주자들의 입장에서 찍었다는 다큐멘터리 ‘어느 날 그 길에서’는 로드 킬의 실상을 보여준다. 관객들은 함께 분노하는 듯 했다. 로드 킬을 당하는 야생 동물들을 ‘동반자’로 보는 게 영화 목표이다. 단순한 저감 차원의 환경 스페셜식 다큐가 아니라 그들을 보는, 땅을 보는 시선의 문제를 말하는 것이다. 황윤 감독은 로드 킬은 강한 자들이 약한 것들을 누른다는 측면에서 미선이효순이와 다를 게 없다고 말했다. 또한 개봉 다음 날 도로공사에서 상영하게 된 게 굉장히 뜻 깊었고 앞으로도 그런 기회를 만들어 나갈 계획이라고 했다. 리뷰 모임에서의 이슈는 독립영화와 그 유통에 관한 것이었다. 기대했던 이슈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인간 제일주의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끔 하는 것. 이날 999앞에서 모은 후원금은 황윤 감독에게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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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하이 여인들’의 펑 샤오리엔감독은 조금이라도 사생활에 관련된 질문은 모두 꺼려하는 바람에 자연스레 영화 내용 위주로 질문이 던져졌다. ‘상하이 여인들’은 펑 샤오리엔감독이 한 중학생의 글을 보고 감동을 받아 제작한 영화다. 이 영화에 대한 중국인들의 반응은 그저 그랬고 일본에서 상영했을 땐 반응이 굉장히 좋았다고 한다. 우리는 이 영화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감독은 중국영화라는 것에 의미를 두지 않았다고 했지만 배경음악으로 주로 비파소리가 주로 쓰이는 등 중국의 모습을 느낄 수 있다. 또한 “영화 중간 중간 문틈으로 보는 장면들이 있다. 그래서 중간에 내가 샤샤의 동생이 된 기분이었다. 그들을 관찰하는 느낌. 그것이 의도한 것인지, 왜 의도한 것인지.”라는 나르샤(열린작업장/촌닭들)의 질문에 감독은 “영화 속으로 관객을 끌어들여 함께 느끼도록 유도했다. 영화를 찍을 때 관객의 입장에서 만들어야 하고, 공감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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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날 감독과의만남 진행은 고메(열린작업장/글로벌학교)가 맡았다. 감독의 태도 때문에 진행이 힘들었다고 한다. 준비했던 진행을 예상과 다르게 엎어버려 순발력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이날 진행에 대해 통역이 잘 되지 않았다는 반응도 많았다. 그림자(열린작업장/디자인팀)는 “소통의 답답함을 느꼈다”며 통역이 제대로 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 펑 샤오리엔감독도 마지막에 “지쳤다. 나도 한국어를 배워야겠다.”고 말했다. 만남 시간에 감독이 질문을 받을 때마다 “너는 어떻게 생각하나?”고 되묻는 경우가 많았다. 감독은 영화에 대한 어떠한 해설을 하기보다는 관객 나름의 각자 다른 생각들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듯했다. 감독은 “반응은 좋은데 의도한 반응이 아니었고, 그 영화는 성공했다. 그러면 어떡하나?”는 름사(열린작업장/캐치스코프)의 질문에 “느꼈으면 하고 바란 건 있지만, 관중이 의도와 다르게 느꼈다고 해서 영화가 실패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관객의 느낌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라고 답했다. 또한 여성영화제에서 상영했지만 “중국은 통제가 심한 것 같다. 중국에선 여성영화를 찍는 것에 있어 어려운 점이 있는가?” 라는 질문에 “내 영화를 그다지 여성영화라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답하기도 했다.


온달

오드리의 미술이야기



이데올로기적 관습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어린 시절, 가장 먼저 브라운관을 통해 보게 된 세상은 어떠했을까? 나에게는 ‘디즈니’의 인어공주가 보여줬던 세상이 떠오른다. 동생을 분홍색 포대기에 업고 상영시간에 늦지 않게 내 손을 꼭 잡고 티켓팅을 하던 엄마를 기억한다. 늦어서 급한 발걸음으로 걸어갔지만 한 손으론 날 잡고 다른 손으로 업힌 내 동생을 붙잡고 있던 엄마가 빠르면 얼마나 빠를까. 당연히 늦어서 헉헉대며 제일 꼴찌로 들어갈 수밖에. 묵직한 영화관 문도 처음 봐서 어떻게 열어야 되는 건지 순간 두려웠는데 엄마는 능숙하게 문을 열었다. 2시간동안 환상적인 화면에 내 눈은 젤리처럼 말랑거리고 가슴은 무척 두근거렸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으로 무언가 보고 두근거린 게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라서 어쩐지 슬픈 거 같기도 하다. 남들과 다르지 않았던 유년의 경험이 서운했던 걸까? 아니면 나에게 인어공주를 보여주기 위해 헉헉대며 갔던 엄마가 생각나서 일까.

 엄마는 왜 그 애니메이션을 보여주고 싶어 했을까. 그 뒤로도 나는 인어공주를 엄청 나게 좋아했고, 나의 미의 기준엔 흰 피부의 금발머리 신데렐라 보단, 아직 소녀티를 못 벗은 빨간 머리 인어공주가 자리 잡았다(사실 그게 그거다). 그런데 생각해보자. 나같이 어릴 적 시각적 두뇌활동을 디즈니로 시작하는 아이들이 이 세상에 얼마나 많을지. 유치원에서조차 디즈니에 나오는 공주님같이 생겨야 ‘예쁜 애’라고 취급해줄 텐데, 공주님 축에 끼지 못하는 대부분의 아이들은 열등감으로 어린 시절을 시작할지도 모를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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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셔먼,<Untitled Film Still #92>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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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디 셔먼,<Untitled Film Still #71>1980
 

여기 신디 셔먼의 1981년 작 <무제 영화 스틸>을 보자. 신디 셔먼은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여기는 ‘관습’에 주목한다. 우리가 자주 보는 영화와 대중매체 속에서 관습적으로 보여 지는 여성의 이미지를 포착하여, 자신이 직접 등장해 재현하는 작업을 했다.

 여기서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잠깐 설명해보자. 위에서 말한 나의 경우처럼, ‘슈렉’ 이전의 디즈니 만화를 세상의 많은 내 또래 아이들이 기어 다닐 때부터 보기 시작한다. 우리는 그 속에 등장하는 ‘공주’를 보며 공주님이란 서구의 기준에 맞춰진 ‘아름다운 외모’를 한 여자라고 알게 된다. 한마디로, 권력을 가진 문학 텍스트 혹은 시각적 재현물들이(ex.디즈니) 세상을 보여주는 데 있어서, 실제를 왜곡하거나 부풀리는 것. 그리고 그것을 재생산하여 차츰 보편화시킨다. 이러한 인식작용을 이데올로기적 관습이라 하는데, 신디 셔먼은 여성에게 강요되는 이데올로기적 관습을 폭로하고자 <무제영화 스틸>과 같은 작품을 제작한다.

이미지는 현실을 모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우리의 삶과 의식이 이미지들에 의해 영향 받고 규정된다. 그리고 신디 셔먼의 작품들은 이러한 우리들의 시각적 경험을 파고들면서 무엇을 볼 것인가를 질문한다.


또 하나의 예를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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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가정당 CF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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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게인즈버러<Thomas Gainsboro

ugh with His Wife and Elder>1751-2 


  낭만파 초상화가로 알려진 게인즈버러의 <Thomas Gainsborough with His Wife and Elder>는 남녀로 이뤄진 부부와 어린 딸, 애완견으로 ‘이상적인’ 가족구도를 보여준다. 영국의 왕실화가였던 게인즈 버러의 작품엔 대부분 단란한 왕가의 일상이 풍경과 함께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고 있다. 이러한 일종의 ‘가족’에 대한 판에 박힌 인식은 ‘왕실’이 아니어도 현재 우리의 삶 에서도 흔히 발견된다. ‘가족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캐치프레이즈를 걸고 총선에 참여한 평화통일가정당의 홍보영상은 ‘보편적인’ 4인으로 이뤄진 가족의 이미지를 보여준다. 실제로 이러한 구조를 가지지 못한 가족들을 배제하고, 어떠한 ‘허상’을 끊임없이 ‘실제’이며 ‘규범’이라 강요함으로써 우리의 ‘가족구조’에 대한 다양한 가능성과 상상력을 제한하게 된다.



 

 다시 ‘공주님’의 이야기로 돌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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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그르<The Turkish Bath> 1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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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비아 슬레이 <The Turkish Bath>1973
 


여기 두 점의 작품이 있다. 터키탕 안의 여성들을 담은 앵그르의 1862년 작 <The Turkish Bath>와 동일한 제목을 달고 있지만, 하나도 비슷하지 않은 실비아 슬레이의 1973년작 이다. 앵그르의 작품에서 이 터키탕의 여자들은 죄다 젊고 아름다우며 요염하다. 대중목욕탕, 혹은 찜질방에 갔을 때 ‘아름다운’ 여자들은 과연 몇이나 될까? 더군다나 여탕 마루에서 벌거벗고 주무시는 아주머니들이 요염한 포즈를 취했던 적이 있나? 동그란 프레임안의 여자들은 마치 누군가에게 엿보이고 있는 것 같다. 그렇지만 어느 한 명도 이 훔쳐보는 시선을 느끼지 못하는 듯하다. 관음증적 시선 아래서 여성들은, 요염하게 ‘보여 지고’ 있을 뿐인 이 이미지를 통해 우리는 여성의 몸은 젊고 ‘아름다워’야 한다는 것과, 젊고 아름다운 여자들만이 ‘자연스럽다’고 느끼게 될 뿐 아니라, 이들은 늘 ‘보여짐’의 ‘대상’이어야 할 것이라고 인식하게 된다.

 실비아 슬레이의 <The Turkish Bath>는 이러한 관습에 반기를 든다. 아름다운 여인들 대신 털이 북슬북슬한 남정네들이 등장한다. 그다지 성스럽거나 아름다운 몸도 아니고, 멋진 외모도 아닌 ‘남자’들이, 전혀 요염하지 않은 자세로 앉아 그림을 바라보는 관객을 향해 똑바로 시선을 두고 있다. 누드는 아름다운 여성이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던 우리는, 군더더기 없는 남성의 누드와 마주쳤을 때 어쩐지 당혹감을 느낀다.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것들이 깨지는 순간 우리는 어떤 ‘당혹감’을 느끼게 되는데, 실비아 슬레이는 이러한 당혹감을 관객에게 선사함으로써 마치 관습적 이데올로기가 산산조각 나는 경험을 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발하는 듯하다.

 우리는 유년기에 디즈니를 통해 공주의 이미지를 접한다. 그 속에서 항상 주인공인 공주는, 당연히 서구적인 외모를 지닌 젊은 여자(거기다 ‘착한’)였다. 그리고 그 공주의 이미지는 자신 혹은 타인에게 열등감 주게 된다. 이처럼 이미지가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과 함정은 곳곳에 포진해 있다. 미술은, 혹은 미술의 언어는 그 함정들을 찾아내는 통찰력을 우리에게 요구한다. 그리고 이미지란 단단하게 구현되는 것이 아닌, 해체하고 돌파하기 위해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돌파했을 때 맞닥뜨린 당혹감이야말로, 어쩌면 ‘명쾌한 해답’으로 진화할 수 있는 미술언어의 자기 쇄신 능력은 아닐까?




찾아보면 좋을 자료들: <여성, 미술 이데올로기>, <이것은 미술이 아니다>

다음 회에서 예술가의 신화와 이데올로기에 대한 이야기를 진행하겠습니다.


 Audrey(열린 작업장 ToT) / Hidoori@gmail.com

오늘 웹진 이미지에 올라갈 짧은 기사 글귀랑

기사를 웹진 하자로 폴더에 올려서 기사 주소 링크할 것 텍스트파일로 만드는 것.

사진 최종적으로 다 골라서 기사에 함께 사진들 올리는 것 (이건 나만 하면 될 것 같고)

우리 화요일에 아침 7시에 출발한다고 하니. 오늘 다 준비해놓아야 할 것 같아요.

나는 사진기 대여해놨고, 사물함에 넣어 놨다가 아침에 꺼내갈 예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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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에서 만나다

 

우리들의 공연은 레드썬을 기점으로 시작된다. 시끌벅적한 촌닭들이지만 그 시간만큼은 차분하다. 본격적인 공연에 들어가기 전에 몸과 마음을 가다듬어, 무대 위에서 그 시간에 충분히 몰입하고 즐기기 위하여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는다. 이번 공연 파트는 파고지(조용한 곡)오슘, 바투카다(시끄러운 곡) 바람이 불어오는 곳, 쾌지나 칭칭 나네, 그리고 쏘유메우 순서로 진행된다. 한 출판사의 어린이 문학상 시상식이라 전체적으로 신나고 행사를 블레싱 할 수 있는 곡들을 골랐다. 공연마다 이렇듯 분위기에 맞게 레파토리를 설정하고 공연 당일에는 곡 소개, 의미들을 항상 소개해주고 시작하며 특히 몇 개의 곡들은 정해진 가사를 부르는 것이 아니라 그 때 그 때 공연마다 맞는 가사들을 만들어 공연한다. 귀찮은 작업이라고 여겨질 수 있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촌닭들은 하자작업장학교 재학생들로만 이루어진 아프리칸 브라질리언 퍼커션과 춤, 노래를 하는 공연팀이다. 나를 비롯해서 든든한 엽, 춤과 노래를 잘 하는 마린, 에너자이저 포디, 팔방미인 환, 웃음폭탄 진, 아이디어 뱅크 왕양, 자기 할 일 잘하는 속눈썹, 배려심 깊은 비호, 부끄럼쟁이 양파, 예쁜 미소 미리내, 꽃미남 하루 총 12명의 팀원이 있다. 모두 십대이다. 우리는 열린 작업장의 인문학 수업과 촌닭들의 퍼커션, 보컬 트레이닝을 받고 있으며 워크숍과 공연 또한 함께 진행해나가고 있다. 공연에서는 적지만 페이를 받고 있고 공동으로 그 돈을 관리한다. 공연단 촌닭들은 앞으로 계속 변해가겠지만 지금은 창업과 ‘창업아님’의 중간 어딘가에 있는 듯하다.

 

촌닭들의 첫 공연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엄청난 떨림과 잦은 실수, 연습 때만큼 나오지 않는 목소리와 악기 연주. 촌닭들 모두 무대 위에서 안간힘을 쓰며 공연을 했지만 관객들 중 누군가의 심장을 터치하지는 못했다. 첫 공연은 우리에게 첫 깨짐이었고 굉장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 후 우리는 실력을 업그레이드하기 위하여 연습과 팀워크 형성에 몰입했다. 하지만 현재 촌닭들에게 중요한 것은 단지 공연의 퀄리티만이 아니다. 앞에 잠깐 이야기 했던 것처럼 우리는 촌닭의 공연에서 관객 혹은 공연기획자들과의 만남을 중요시한다. 누군가를 어떻게 만날지 항상 생각하고 무대 위의 모습을 설정한다. 워크숍에서도 마찬가지다. 워크숍에 어떻게 임할지, 수강생들을 어떻게 만날지 계속 생각한다. 그런 성의와 진심은 무대 위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올 수밖에 없다. 악기, 노래 실력과 무대 위의 공연자의 마음이 함께 만날 때 (가끔이지만) 굉장한 시너지를 낸다. 그 시너지는 무대 밖의 사람들과 무대 안 우리를(무대가 중심이 아니게 될지라도) 이어주는 끈이 된다.

 

이렇게 진심으로 무대 안팎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일들이 참 즐겁다. 단순히 공연을 잘하는 사람이 아니라 공연을 하면서 그들의 이야기를 빌어 나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현명한 공연자가 되고 싶다. 또한 그런 공연을 통해 관객들의 산 경험을 끄집어 낼 수 있기를 꿈꾼다. 끊임없는 연습과 열정, 그리고 자기 업그레이드가 필요한 작업이다. 10대라는 비교적 어린 나이이고 10대 공연팀이기에 힘든 점도 많다. 아직은 삶의 경험이 부족해서 서로 어긋나는 점들이 많고 학습과 공연을 함께 가져가는 것이 힘겹게 느껴질 때도 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촌닭들이 10대이기에 나오는 열정, 패기를 맘껏 펼치며 그런 무대 위의 자신을 계속해서 사랑해나갔으면 한다. 그런 진심과 에너지로 똘똘 뭉쳐 앞으로도 즐겁게 나아갈 것이다.

 

20살을 코앞에 둔 19살 촌닭들 팀장 나르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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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촌닭들의 공연 정보/재미있는 사진 등을 보려면 촌닭들 블로그로 가봅시다.

길찾기들의 외침

 

허겁지겁 라디오 스튜디오로 뛰어 들어간다. 10시 30분, 우리는 하자마을 주민들이 모두 하자에 들어왔을 때 아침을 열어주는 라디오 방송을 시작한다. 모두들 스크립트 인쇄물과 방송에 대한 기대를 한 뭉치씩 안고는 각자의 자리로 간다. 그러더니 제법 능숙하게 스튜디오 안에 있는 DJ들과 소통을 한다.(스튜디오 안에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곧 하자센터 전체에 이 방송이 울려 퍼진다. “안녕하세요! ‘그대와 여는 아침’입니다!”

 

우리는 갓 하자에 들어온 새내기 ‘길찾기’들이다. 우리는 하자에서, 말 그대로 자신의 길을 찾는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하자를 알고, 보고, 느끼는 시간을 가진다. 그래서 우리는 하자의 모든 프로젝트들을 체험한다. 그 중 라디오 프로젝트는 우리가 늘 듣기만 하던 라디오 방송을 직접 제작하고, 방송까지 할 수 있는 드문 기회를 가져다준다. 길찾기들은 4개의 팀으로 6명씩 나눠서 진행된다. 처음에는 다들 그저 ‘내가 방송을 만들다니!’하는 기대에 부풀어 라디오의 준비 형식, 역할 분담에 대한 것은 까맣게 모르고 방송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각자 하고 싶은 것, 해보고 싶은 방송을 다 꺼내놓으며 적지 않은 마찰도 있었고, 결국 우리 팀은 역할분담의 해답으로 ‘가위 바위 보’를 했던 적도 있다. 게다가 3월까지는 길찾기만 듣던 방송이었는데, 4월부터는 하자마을 사람들 모두가 들을 수 있게 open방송을 시작하게 되었다. 우리는 전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많아봤자 17~18살을 웃도는 학생들이 하면 뭘 하겠냐는 생각은 우리도 같았을지 모르겠다. 그리고 드디어 떨리는 첫 방송을 시작했다. 생전 처음 들어 가보는 스튜디오, 정확한 가격은 몰라도 따져보면 어마어마할 것 같은 장비들, 스피커와 마이크, 준비된 대본. 이젠 정말 시작이었다. 첫 방송이니 사실 그렇게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그저 ‘해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우리의 첫 방송은 너무나 순조롭게 끝났다. 즐겁고 시원하기도 했다. 내가 만드는 방송이라는 것부터가 다음을 기대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한편으론 준비를 하는 시간이 힘든 것에 비해 방송은 정말 짧은 순간에 후다닥 지나가 버려서 아쉽기도 했다. 그렇게 첫 번째, 두 번째, 세 번째…. 우리는 지금까지 관객들이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이 공간에서 즐겁기도, 침울하기도 했다. 우리가 만드는 방송들은 비록 어눌한 말투와 어색한 코너들, 툭하면 일어나는 방송사고 까지 별별 문제점이 다 있지만, 보통 라디오 방송과는 전혀 다른 스릴감을 맛볼 수 있었다. ‘못 한다’기 보다는 ‘노력한다’는 모습이 보이는 게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웃음 짓게 만드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우리가 만드는 라디오가 정말 재미있다고 생각한다.

또, 자칫 방송 사고라도 나면 우리끼리는 ‘처음이니까’하며 넘겼지만 방송 뒤에는 길찾기의 다른 팀들과 담임들의 평이 기다리고 있었다. 처음 우리들은 다른 팀들의 방송이 조금이라도 지루하다 생각되면 듣지 않다시피 해왔다. 그러고서 재미없던 팀에게 엄청난 혹평을 날렸고, 재미있던 팀에게는 박수를 쳤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요즘 우리들의 방송이 ‘우리만의 방송’이 아닌, ‘관객들만을 위한 방송’이 되어가며 관객의 호응에만 포커스를 두어 호응이 없을 법한 다른 아이디어들은 무산되어버리는 것 같다. 또, ‘열심히 노력하는 하는 방송’보다 무조건 ‘잘해야 하는 방송’으로 변해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더 나은 방송을 만들려고 하는 모습 같아 흐뭇하기도 하다.

우리 팀은 다른 팀과는 달리 모두 여자라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우리 팀의 이름은 ‘우먼파워’이다. 우리 팀은 처음부터 서로 의견이 부딪혀서 라디오 의견을 모을 때마다 제일 시끄럽고 의견 결정이 제일 오래 걸리던 팀이다. 또 우리는 방송 이야기나 스크립트를 짤 때에는 정말 진지하나, 실제 방송에서는 제일 화기애애한 팀이기도 하다. 신나는 노래가 나오면 다 같이 따라 부르고 어깨를 흔든다. 그럴 때 마다 새벽까지 새면서 짠 스크립트의 피곤함이 싸악 날아가는 기분이여서 정말 좋다. 또, 우리 팀은 더 좋은 방송을 위해 수정하고 수정하다가 언제나 방송 당일에만 스크립트가 완성된다. 그래서 완벽한 대본숙지가 안되어 실수를 할 수가 있는데, 역대 DJ들은 잘 소화해주어서 언제나 고맙다. 또 가끔 PD나 DJ가 방송 직전에 도착하여 스크립트 내용을 전혀 모르고 시작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도 침착하게 자기 할 일을 다 해주는 팀원들을 볼 때면 나도 다시 힘이 난다. 그리고 방송이 끝나는 마지막 곡을 알릴 때면, 우리는 슬픈 노래든 신나는 노래든 다 같이 즐긴다. 그리고 다시 스튜디오를 나선다.

우리는 밖에서 우리들의 방송을 듣는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다. 반응이 좋든, 썰렁하든 우리는 우리가 준비한 것을 더 맛깔나게 하려고 언제나 노력한다. 우리 팀뿐만이 아니라, 다른 팀도, 이 세상 모든 라디오 팀들은 다 그럴 것이다. 지금까지도, 앞으로도 말이다. 길 찾기 라디오 프로젝트 파이팅!

 

우먼파워 그대와 여는 아침 전용 새벽반 작가 양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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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다른 배움, 직업체험

[##_1L|1047922367.jpg|width="300" height="224"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직접 자신의 이름을 짓는 학생들_##]지난 4월 15일 하자센터의 일일직업체험 팀이 청량리에 위치한 전농중을 찾아갔다. 멤버는 일일직업체험 판돌 아미고, 분홍신과 스타일리스트 강사 고주연 씨로, 스타일리스트 직업체험을 위해 방문했다. 일일직업체험은 체험을 받고 싶어 하는 학교가 하자센터에 신청을 하고, 학생들이 센터로 찾아오는 프로그램이다. 그러나 이번 직업체험은 기존과 다르게 센터에서 직접 학교로 찾아가게 되었다. 이러한 변화에 대해 분홍신은 “어떤 학교는 직업체험을 하고 싶어 하지만 거리가 멀어 오지 못한다. 그런 학교와 학생들을 위해 직접 찾아가자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그것을 수렴하여 찾아가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변화에 가장 중점을 둔 것은 ‘찾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_1R|1102630427.jpg|width="300" height="200"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이번 시간은 ‘여러 가지 룩 스타일’이란 이름으로 진행되었다. 강사의 설명 후, 학생들은 3개의 조로 나눠 앉아 그 날 배운 룩에 대한 사진을 배열하며 직접 스타일리스트가 되어보았다. 학생들은 대부분 ‘재미있고 독특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잡지에서 사진을 오려 배열하고, 같은 조의 친구들과 즐거운 이야기를 하며 완성시켜나갔다.

‘찾아가는 일일직업체험’은 한 학교에 한 번만 가는 게 아니라 일정한 시간을 두고 계속해서 찾아간다. 매 시간마다 직업이 바뀌거나 학생의 요청에 의해 같은 직업을 두 번 체험하게 되기도 한다. 그에 대해 참가학생 김창희(직업체험용 이름 샤)는 “여러 가지 직업을 체험하기 위해 이 프로그램을 신청했다. 그래서 현재의 진행에 만족하고, 이런 과정을 통해 내가 정말 관심 있는 것을 발견하면 나중에 직업으로 가져갈 생각도 있다.”고 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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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직업체험과 일일직업체험의 분위기 차이에 대해 분홍신은 “학생들이 센터에 찾아올 때는 우왕좌왕하기도 하고, 아이들의 표정도 좋지 않았으며 부끄러움을 많이 탔다. 그러나 전농중 학생들은 자신들의 학교에서 체험해서 그런지 얌전하고 침착하게 수업을 받았다.”라고 답했다. 또, 하자센터 죽돌들의 자유분방한 외모와 스타일의 영향이 있는 건 아니냐는 질문에 “최근 직업체험을 왔던 여고는 굉장히 조용했던 반면에, 어떤 학교는 굉장히 소란스럽기도 했다. 센터 죽돌들의 모습도, 낯선 공간으로 찾아온다는 것도 모두 영향이 있다. 개인적인 생각은, 전농중의 학생은 모두 학년이 달라서 서로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조용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같은 학년이 많이 섞인 학교는 수업 도중 말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여러모로 영향도, 환경도 다르므로 딱히 ‘이렇다’할 무언가가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직업체험은 청소년들에게 숨어 있는, 혹은 알려져 있는 여러 직업을 체험하게 하는 것에 있어 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다. 이 체험이 청소년들에게 자신들의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한 번 더 하게 해주고, 그들의 능력과 장점을 일깨워주는 시간이 되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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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농중에서 사진 찍다가 ‘선생님’이라는 소리를 들은 10대 기자 밤비.



*직업체험을 받고 싶다면?
*그 외 보도기사1
*그 외 보도기사2
*그 외 보도기사3
*그 외 보도기사4

4/24 일정

18:41~ 산의 글 검토
19:00~ 분홍신과 이야기 후 나의 기사 작성
19:40~ 직업체험 기사 모모 검토
20:00~ 사진작업 or 기사 수정
기사들 제목 모두 타이핑 후 속눈썹 타이포 이야기
나르샤 재촉


청소년창업 나르샤 제목받기
라디오하자 사진 더 찾기
김찬호 선생님 사진 꺼내도록 운영지원부에 문의....(멀린이 제가 쓰던 도중 카메라를 빌려가셨고, USb를 주문해서 아직 안 왔다고 하시네요.)
개인글작업
자판기 장부 정리 .... (뜨든)

개인적인 일정이 생기면 계속해서 올리도록 하죠. 무슨 일로 있어야 할 자리에 없는지, 중간 회의를 만들 때 일일이 연락해서 시간 맞추기 전에 블로그에 있는 일정 보고 대충 조정하면 더 쉽지 않을깝쇼? 개인작업도(저는 자판기나 지식넷 등) 올리도록 합시다. 고럼~~~~

 하자센터 열린 작업장의 주니어들로 이루어진 글로벌 학교는, 서울을 가이드하고 있습니다.
 글로벌학교는 창신동, 동대문, 북촌의 역사와 문화, 사람들을 끊임없이 발견해내며 여행 상품으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글로벌학교는 서울 안에 있는 중국인 거리 투어를 개발 중이며, 이 여행은 투어 가이드와 가이드북을 통해 보여질 예정입니다. 글로벌학교와 함께 여행을 하고 싶으신 분, 그 여행이 궁금하신 분들은 글로벌학교 블로그(http://global.haja.net)로 문의를 주시기 바랍니다.

 

서울을 떠나 서울성곽으로.

 

·

북악산 서울성곽 트래킹.

‘북악산은 서울의 금지옥엽이며, 보석이다.’

북악산과 그 안의 서울성곽. 600년 전의 한양의 모습을 한눈에 내려다 볼 수 있는 지리적 위치, 우리민족의 수난의 역사를 상상해볼 수 있는 곳. 2008년 지금도 무장한 군인들이 초소에 배치되어 서울을 방어하고 경계를 늦추지 않고 있는 곳. 자신은 자유로움을 외치지만 계속해서 방어용 성곽과 경비들의 초소에서는 더 강한 목소리로 “안 돼, 그거 하지 마. 나 너 감시하고 있어”라고 말하는 것 같아 묘한 긴장을 하게하는 곳. 글로벌 학교에서 숨통이 필요한, 보다 더 높은 곳을 찾아 일상에서 탈출하고 싶은 당신에게, 쉴 새 없이 움직이는 도시인들에게, 심심하지 않은 자연의 공간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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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중심부 있는 산이면서도 1.21사태 이후 40년간 폐쇄되어
 
잊혀져왔던’

 

여행하자, 북악산의 서울성곽.

북악산은 청와대가 근접해있어서 후반부에 설명할 1968년 1.21 사태 이후 대통령의 안전을 위해 출입이 제한되었다가 작년 2007년에 개방되었다. 서울의 중심부에 있는 산임에도 불구하고 40년 동안이나 베일에 싸여 있던 것이다.

[##_1L|1322707413.jpg|width="300" height="199"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베일에 싸여 있던 북악산을 함께 여행해보자. 북악산으로 들어가기 위한 제1관문, ‘말 바위 쉼터’를 통과했다면 당신은 노란색 번호표를 목에 걸고 있을 것이다. 노란색 번호표를 목에건 당신은 탐방 로를 따라 올라가다 산 아래로 70년대 요정정치의 상징이었던 삼청각을 지나, 조선시대 한양의 사대문 중 북쪽문인 숙정문을 통과할 것이다. 북악산을 탐방하다보면 중간 중간에 보이는 군인들의 초소가 당신의 자유로운 여행에 거슬릴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미워하지는 말자. 서울 성곽에서 매일 근무를 하다보면 때로는 지루함을 느낄 것이다. 그때를 틈타 장소에 대해 질문을 한다면, 당신에게 마치 전문가가 주는 것 같은 정보를 주지 않을까? 그들이 근무하는 하루 사이에도 수많은 가이드들이 지나갈 테니.
 

[##_1L|1295980561.jpg|width="300" height="28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숙정문을 통과해 계속해서 산을 타다보면, 어느 정도 지친다 싶을 때 마치 “널 위해 준비 했어”라고 말하는 것 같은 오르막 계단이 보일 것이다, 힘내시길. 이 봉우리를 넘어 땀도 나고 힘이 들어 옷을 걷어 올릴 때 쯤, 1.21사태가 쓰여 있는 비석과 함께 총알 자국이 남아 있는 소나무를 만날 것이다. 1.21 사태란, 실미도의 북한버전이라고 할 수 있는 특수부대원들이 청와대 습격과 정부요인을 암살하기 위해 남침한 사건을 말한다. 자, 다시 출발하자. 계단을 올라가 조금만 더 걸으면 머지않아 꽃과 시야가 탁 트인, 해방감을 품고 있는 북악산 정상에 도착해있을 것이다. 정상의 보랏빛 꽃 사이에서 사진도 찍고, 바위에 올라 높은 곳에 가서 바라보는 서울은 가슴을 뻥 뚫을 것 같이 시원할 것이다. 항상 멀리, 더 많이 보고 싶어 하는 당신.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을 충분히 맛보았는가? 그렇다면 이제 내려가 보자. 내려가는 길은 계단이 잘 닦여있으나, 매우 가파르기 때문에 발목을 다치기 쉬우니 조심하자. 내리막을 다 내려와 노란색 목걸이를 반납했다면 좀 쉬자. 안내소에서 물도 마시고 화장실을 다녀와도 좋다. 쉬는 동안 내려오느라 바짝 긴장했을 다리를 풀어주는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는 것이 다음 날 활동에 좋지 않을까?



다시 출발하기 위해 일어나자. 창의문이 보일 것이다. 이 문은 사소문 중 하나로 이 투어의 마지막 관문이다. ‘자하문’으로도 불리는 이 문은, 인조반정 때 인조를 비롯한 의군들이 이 문을 부수고 궁 안으로 들어가 반정을 성공한 유서 깊은 문이다. 그때의 함성과 기세를 상상하면서 문을 지나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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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읽고 북악산을 여행하려 마음먹은 사람들을 위해 몇 가지 팁을 준비했다. 좋은 여행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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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가는 길

안국역 2번 출구로 나오면 02번 마을버스 정류장이 보일 것이다. 안 보인다면 5분 간격으로 버스가 다니니까 잠시 기다린다. 버스에 올라탔다면 성균관대 후문에서 내려 학교로 들어가지 말고 버스가 올라왔던 길을 따라 쭉 올라간다. 의심하지 말고 계속 걷는다. 길을 잘못 왔다면 돌아가서 다시 시작하면 된다. 정 모르겠다면 주변 사람에게 물어 보는 게 상책. 어쨌든 당신은 와룡공원에 도착해 있을 것이다.



- 북악산에서는 모든 인화성 물질의 반입을 금지하고 있으니 주의할 것. 산을 달리는 중에는 약수가 없으니 물과 간식거리를 챙겨 가는 게 좋을 것이다.

- 정상의 꽃밭에 들어가는 건 금지사항이니 자신 있으면 군인들에게 부탁해보시길. (우리는 성공했다.)

- 내려갈 땐 올라오는 사람이 더 힘드니 난간을 양보한다면 당신의 앞날에 축복이.

-창의문을 나서면 바로 왼편엔 부암동의 명소 카페로 뽑히는 ‘클럽에스프레소’라는 카페가 있다. 이 카페는 다양한 나라에서 재배되는 원두와 핸드드립 커피로 유명하니 취향에 맞게 즐겨보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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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산 /글로벌 학교.

jsan119@naver.com

 


창의적, 사회적 기업 노리단[##_1C|1404380825.jpg|width="530" height="39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노리단의 새해는 사회적 기업으로서 우리 자신을 왜, 어떻게, 무슨 모습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인가 하는 논의로 출발했다. 결론은 단원 누구나 창의적 기획자(creative entrepreneur)와 사회적 기업가(social entrepreneur)가 되자는 것. 그간은 배우, 교사, 손노동자를 순환하는 삶을 말했는데, 그 3가지를 통합하는 상위 컨셉으로 창의적 기획가/사회적 기업가를 말하기 시작했다. 단원들 중에 창의적 기획가이자 사회적 기업가로 성장하는 이가 많아질수록, 사회적 기업으로서 노리단의 사명과 성장을 잘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지난 3월8일에는 모든 단원이 모여 ‘단원대회’를 열면서 그런 뜻과 의지를 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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놀이, 광대, 명상, 카니발의 4개 컨셉.

아울러 노리단은 공연팀을 4개로 재구성했다. <플레이 팀>은 관객과의 소통과 놀이를 중시하는 노리단의 대표적인 레퍼토리를 갖고 있다. <이매진 팀>은 각자 자신만의 광대 캐릭터를 찾아 건강한 웃음의 코믹 음악극을 선보이려고 한다. <리싸이클 팀>은 마음의 평화와 치유를 기원하면서 개인과 공동체의 관계회복을 기원하는 공연팀이다. <프로젝트 팀>은 주로 해외 공연을 맡고 있는데, 현재는 브라질리안/아프리칸 퍼커션과 노래를 노리단 컨셉과 융합해서 카니발의 새로운 유형을 시도하고자 한다. 지난 4월5일 ‘08년 노리단 봄 쇼케이스’에서 이런 4개 공연 컨셉의 서로 다른 모습들을 처음으로 살짝 펼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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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아마추어, 공헌하는 프로페셔널.

공연시장에서 차차 지명도가 높아지고, 교육 사업도 늘면서 기업 연수를 개척하기 시작했고, 공공미술 사업으로 새로운 실험을 확대하면서, 노리단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과 응답을 내부적으로 다시 하게 되었다. ‘사랑한다’는 어원을 가진 아마추어의 솔직함과 열정과 위대함을 잘 간직하자고, ‘선서한다’의 어원을 지닌 프로페셔널의 본뜻 그대로 이웃과 세상을 위해 약속한 공헌을 잘 실천하자고. 노리단이 간직하는 아마추어리즘은 지금 이 순간을 사랑하는 것, 노리단이 지향하는 프로페셔널리즘은 당신을 돌보며 사회에 기여하는 것. 단원이 많아지고 사업이 커질수록 노리단이 더욱 잘 벼려야 할 자기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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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로, 올해 초 새롭게 결합한 단원을 포함해 노리단의 주요 단원들 얼굴은 노리단 자유게시판(http://noridan.haja.net/)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