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떨어지지 않는 지점. 연결.

 

얼마 전 폴란드 청소년 대표단이 하자센터를 방문하면서 센터투어를 열린작업장 죽돌들이 영어로 진행했었다. 외부인이 하자센터를 방문하는 일은 다반사이기 때문에 그 점이 큰 이슈는 아니다. 투어를 맡았던 죽돌들은 통역교실(spikaja). ‘투어’라는 컨텐츠와 영어를 결합하여 또 다른 학습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우리가 집중하고자 했던 부분이다. 스픽하자 죽돌들은 글로비쉬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렇게 배우기만 하는 수동적인 모습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배운 것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전달’하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와중에 한창 진행 중에 있는 글로비쉬에 대한 자세한 기사를 이번 웹진에서 다루어 보려고 한다. 글로비쉬 기사는 ‘언어’라는 것이 중점적인 소스이다. 이와 연결하여 ‘하자마을 사람들 인터뷰’ 코너에서는 하자에서 불어수업을 진행중인 빠삐(리필클럽/자원 활동 강사)를 인터뷰했다. 인터뷰 글에서도 읽을 수 있지만 언어라는 부분에서만 연결되는 것이 아니다. 빠삐는 프랑스에서 국방무관으로 오랫동안 근무하셨고, 은퇴 후 하자에서 무료로 불어를 가르쳐 주고 계신 것이다. ‘청소년 창업’에서는 리사(글로벌학교 죽돌)가 글로벌학교의 창업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리사는 스픽하자에 속해있는 죽돌이기도 하다. 이 이야기들은 모두 연결지점을 가지고 있다. 기획단계에서 큰 원안에 작은 원들이 들어있고 그것들이 각자의 이야기를 가지고 연결될 수 있겠다는 이야기가 나왔었다. 마치 한 덩어리의 밀가루 반죽이 몇 십 가닥의 면발로 변하듯 언어라는 것을 가지고 여러 사람과 여러 방법으로 퍼뜨려지고 있다. 글로비쉬뿐 아니라 ‘청소년 창업’이나 ‘하자마을 사람들 인터뷰’ 코너 또한 마찬가지로 ‘언어’라는 한 덩어리에서 연결되어 나오는 이야기들이다.

 

예상하건대 완성되어 발행될 6월호 ‘하자로’는 종전과는 다른 모습일 것이다. 적응훈련을 마치고 제법 능숙하게 써낸 기사라든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스스로 마무리 짓는 모습들이,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을 좀 더 분명하게 보여준다. 여과기를 거치지 않고 ‘되는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를 외쳐대며 뛰어다녔던 3-4월의 순진함은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듯 자연스레 변화되었다. 편집팀은 페이지 수가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않고 좀 더 웹진 기능을 가지고 있는 ‘하자로’가 만들어지기를 원했고, 그렇게 읽혀지기를 원한다.

요즘 같은 때에는 다들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고민이나 버거움으로, 그리고 춘곤증과 함께 찾아오는 무기력함에 허덕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런 이유들은 언제나 항상 도처에 있고, 언제 또 다시 불쑥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내일을 위해 사는 모진 오늘을 고이고이 잘 접자.

 

 

6월호 편집자의 편지- 괭(열린작업장 죽돌/웹진 편집팀)

함께 걸어서 뜻 깊었던 날들.

내가 느리게 걷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았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잘 걸었던 나는, 한 살 아래 동생이 태어나면서 주로 걸어 다녀야 했다. 엄마께선 동생을 업고 다녀야 해서 나를 업어줄 수 없으셨는데, 걷는 능력이 타고 났었는지 걸어 다니면서도 업어주라는 투정을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내가 살던 집은 5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거려야 했고, 내가 다니던 유치원은 걸어서 2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는데 유치원 버스가 없어서 걸어 다녀야 했다. 또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실상사 작은학교’ 이었는데 그 곳은 학교 주변에 있는 마을에서 생활을 한다. 생활하는 곳과 학교 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데 걸어서 통학을 했다.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생명평화 탁발순례로 2박3일 동안 걷기도 했고 지리산, 설악산, 북한산, 도봉산, 히말라야 등반 등 걷는 것은 나의 일상이었다. 지금 까지 했던 경험들로 봤을 때 걸바는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걸어서 바다까지를 갈 날이 가까워져도 다른 아이들처럼 걱정하지 않았다.

걸어서 바다까지(이하 걸바)를 처음 기획하신 강구야는 준비 모임에서 우리에게 걸바를 가서 자연을 느끼고 일상에서 느끼는 것과 다른 것들을 느껴보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걸어서 바다까지를 가는 일정을 잠시 보았을 때 자연을 느끼거나 다른 것을 체험하는 게 중점이 아니라 하루 종일 걷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게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걸어서 바다까지라는 긴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예상과 달리 오랜만에 긴 시간을 걸어서인지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 지도에 나온 다리를 세면서 목적지까지 어느 정도 남았는지 계산하며 걸었다. 똑같지는 않지만 똑같아 보이는 건물, 자동차, 다리. 나는 서울이란 곳에서 특별함을 찾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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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산에서 3년을 생활하면서 왠지 모르게 도시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하자센터로 오게 되었다. 처음에 도시로 왔을 때는 도시의 불빛들과, 북적거리는 사람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는 생활, 누리기 쉬운 문화적 혜택들이 새로웠고 즐거웠다. 그렇지만 두 달 정도 생활하니 모든 곳이 같아 보이고, 내가 생각했던 특별함은 곧 지루함으로 변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다시 시골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고,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도 들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니 사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안티푸라민과 파스는 불티나 게 나갔고, 발에 물집이 잡혀 판돌 두부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물집치료는 바늘 끝을 불로 소독하고, 실을 꿰어 물집에 실을 통과 시킨다. 그러면 며칠이 지나 물집이 없어진다. 나는 물집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이런 방법 외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물집을 터트렸다. 그대로 놔두는 사람도 있었고, 도구 없이 자신이 물집을 터트리는 친구도 있었다.

하루에 35km정도 되는 긴 거리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아 갔다. 빠르게 걷는 사람도 있었고, 느리게 걷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선두에 서서 매일 숙소 도착 신기록을 세우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빠르게 지나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 옆으로 있는 강과 강을 따라 있는 산과 나무들이 수면에 비춰져 보인 그림자, 빠르게 걸을 때와는 다르게 내 살을 부드럽게 휘감고 가는 바람, 변덕스러웠던 하늘,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 어딘지 모를 곳에서 나는 싱그러운 풀내음이 느껴졌다. 원정이나 종주를 주로 했던 나는 앞사람을 쫓아가야 길을 잃지 않고, 전체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내 앞에 보이는 사람과 1m 간격으로 맞춰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걸바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가던, 다른 사람과 발걸음을 맞추던 선택이었다. 나는 걸바에서 내가 느리게 걷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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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걸으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가기도 했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기도 했다. 가장 인기 있었던 노래는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노래다. 촌닭들이 공연할 때 불러서 길찾기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곡이었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라는 노랫말은 걷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았다. 가사를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음만 흥얼거려서 더 재미있었다.

정답이란 건 없어..

걷다보면 자신과 비슷한 속도로 가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걸으면서 대부분 “주니어가 되면 뭐 할거야?” 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글쎄…….”라고 대답 했지만 생각해보니 주니어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고민하고, 불안해했고, 20대로 넘어가면 자립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대화에서 느껴졌다. 어떤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지금 생활에 충실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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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 일정을 화기애애하게 잘 지낸 것 같지만, 몸이 피곤하다 보니 서로에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리고 하자 안에서는 작업할 때만 만났지만 걸바에서는 눈 뜨고 일어나 잠들 때 까지 같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까지 길찾기 과정을 하면서 서로에게 느꼈던 좋지 않던 감정들이 걸바에서 눈에 띄게 드러났다. 크게 싸운 일은 없었지만, 6일째 되는 날 저녁모임을 하다가 새벽 2시 반까지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무난하고 평탄한 관계가 깨질까봐, 혹은 친하지 않아서 못했던 말들이 오고 갔다. 몇몇 아이들의 대해 코멘트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새롭게 알기도 했고, 예전부터 있던 문제라서 앞으로 고쳐나가겠다고 했다. 서로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숨기는 게 아니라 꺼내놓고 해결방법을 찾는 게 집단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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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학부모님들과 함께 걸어서 바다까지를 하루 정도 같이 했었다. 학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길 내심 기대했었는데, 걸바의 구성원으로써 같이 참가 하는 게 아니라 잠시 길찾기들 응원 겸 학부모 모임을 가지는 느낌이었다. 학부모님들께서도 길찾기들이 지키고 있었던 걸바 규칙을 똑같이 지키기로 하셨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학부모님을 소개하는 시간이 없어서 하자 별명과 누구의 부모님이신지 알 수 없었다. 다음에도 학부모님들께서 참여하신다면 걸바 구성원으로써 동등하게, 같은 경험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학부
모님들께서 주신 간식은 걸을 때 정말 힘이 되었다.


나에게, 걸어서 바다까지...

몸이 고통스러워서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하도 걷다 보니 뇌에서 걸으라고 하는 게 아닌데 다리가 따로 노는 듯한, 길찾기들 사이에선 다리만 해탈 또는 다리에도 뇌가 달린 듯 하다고 표현한 것들. 힘들어서 정신을 놓아야만 걸을만했던 것들이 나에겐 이미 했었던 경험이지만 길찾기들과 함께해서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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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바다가 가까워져 수평선이 보일 무렵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왠지 감동이 밀려온다던가, 감정이 북받쳐 오를 거 같았는데 그렇지 않은 까닭은 아마 내가 꽤나 편하게 걸어와서 일거다. 친구들은 바다에서 물장구 치고, 껴안고 난리를 치면서 놀았는데 나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에 땀나게 뛰어다녔다. 물놀이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낙산해수욕장에서 보는 바다는 내가 봤던 바다 중에서 가장 예뻤다. 9박 10일 동안 걸어온 끝에 본 바다라서 예뻤고, 이곳까지 오기위해 길찾기들이랑 같이 걸어온 시간이 있기에 예뻤다. 피서를 가기 위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간 바다가 아니라, 처음에는 왜 바다를 가는지도 모른 채 무조건 걸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만의 의미가 차곡차곡 쌓인 후 보게 된 바다라서 예뻤다.

내가 여태 해왔던 걷기와는 다르게 걸어서 바다까지는 공동의 목적이 없이 걸었기에 더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처음에는 의미가 없어서 시간이 헛되이 보내는 건 아닌지 불안해했지만 결국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을 얻었고, 꼭 의미가 정해져 있어서 그 것대로 배워왔던 나에게 꼭 그렇게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목적이 있든, 없든 아직 나는 무엇이 좋은지 잘 모르겠지만 목적이 없어도 의미를 얻는 것과는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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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 울려퍼진 핑팽퐁의 유쾌한 은유

 

지난 5월 3일부터 4일까지 주식회사 노리단의 핑팽퐁이 제 19회 ‘마카오 국제 아트 페스티벌’에 초청되어 두 번의 공연을 가졌다. ‘마카오 국제 아트 페스티벌’은, 마카오 정부의 지원을 받아 만들어진 국제적인 규모의 페스티벌로, 유럽의 공연시장으로 통하는 관문이라고 칭해질 정도로 유명한 행사이다. 이 행사는 해외로 나간다는 의미에서 노리단 사업의 중요한 전환점이라 할 수 있다.

[##_1C|1224478574.jpg|width="500" height="37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마카오 공연 당시 노리단의 모습_##]

‘핑팽퐁’은 노리단에서 ‘위트앤비트’로 시작하여 2007년 10월에 만들어낸 공연의 이름으로, 글자 하나하나마다 각각 뜻이 담겨있다. ‘핑’은 삶의 이야기로 내는 소리의 울림이고, ‘팽’은 삶의 여정이 만들어주는 고통, 슬픔 등을 넘어서는 삶의 희노애락이며, ‘퐁’은 삶의 에너지와 열정의 향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이 공연은 완전함이란 없고 저마다 갖는 그 불완전함이 모여서 우리 모두를 살린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공연을 본 해외 관객들은 노리단의 ‘핑팽퐁’을 ‘정열적인, 건강하고 에너지 넘치는, 긍정적인 에너지를 60분 동안 끊임없이 주는’ 공연으로 평가했다. 또, 지난 5월 11일 방영한 ‘MBC 시사매거진 2580’에서 이 공연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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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에서 성공적인 공연을 마치고 돌아온 노리단은 5월 14일(수), 하자센터 999클럽에서 마카오 국제 아트 페스티벌 참가에 대한 쇼하자를 진행했다. 쇼하자는 핑팽퐁 공연을 소개하고 그 성과를 사람들에게 알려주는 자리로, 하자센터의 사람들과 더불어 노리단에의 다양한 지인들이 초대되었다. 노리단 프로젝트팀 팀장 솔가는 “공연 엔딩 장면에서 기립박수를 받을 정도로 호응이 대단했다. 심지어 백발의 노인 분들이 감격해주어 너무나도 고마웠다. 우리의 공연이 어린이부터 노인 분들에게까지 전해진다는 것에 기뻤다.”며 소감을 밝혔다. 이 쇼하자에선 ‘핑팽퐁’의 짧은 맛보기와 단원들의 여행 이야기, 공연 소감, ‘이매진’팀의 공연이 어우러졌다.

[##_2C|1134917533.jpg|width="250" height="18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로젝트팀 팀장 솔가가 공연성과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하고 있다.|1397504242.jpg|width="250" height="18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마카오 공연당시 했던 무대를 짧게 선보이는 노리단의 모습_##]

하자센터의 모토는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살자’이다. 그것은 돈 버는 일과 즐겁게 노는 일과 학습하는 일이 같이 돌아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센터의 많은 죽돌들이 원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에 센터는 2004년 죽돌과 판돌 일부를 한 팀으로 묶어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먹고 살자’라는 키워드로 하나의 실험을 했는데, 거기서 탄생한 것이 ‘노리단’이다. 노리단은 이를 ‘자기고용’이라는 말로 집약했으며, 2007년 ‘사회적 기업’으로 인정받아 이윤창출과 공익의 극대화를 함께 꾀하며 활발하게 나아가고 있다.

휘(노리단 단장)는 “하자센터는 노리단이 자립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중 센터의 또 다른 ‘사회적 기업’을 만들고자 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organization Yori’팀이 두 번째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는 중이고, ‘A10studio’와 ‘Digic’라는 두 팀은 ‘희망청’에서 또 다르게 사회적 기업을 준비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또, “하자센터와 죽돌(청소년)에게 노리단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먹고 살자’라는 것을 실천한 본보기이며, ‘자기고용’의 길에 대한 거울이 되는 역할을 해주는 기업이다.”라고 전했다.

[##_2C|1142745295.jpg|width="250" height="18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단원 방울이와 레몬의 깜짝 공연|1253252045.jpg|width="250" height="185"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프로젝트팀 '이매진'의 축하공연_##]

노리단은 2007년 러시아를 시작으로 싱가폴, 홍콩, 일본에 이르기까지 국내외의 많은 사람들과 공연을 통해 만나고 이야기 나누길 원하고 있다. 또, 이들은 자신들의 소망과 이야기를 담은 공연과 악기, 멜로디들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전해지길 바라고 있다.

노리단이 담아낸 ‘핑팽퐁’의 의미가 여러 사람들에게 닿길 원하며 그들에게 박수를 쳐본다.

하자센터 열린작업장 소속기자. 밤비.

노리단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강구야는 현재 서울시대안교육센터 부센터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2002년도 ‘피터팬’으로 불리우던 시절 하자작업장학교에 ‘걸어서 바다까지’라는 프로젝트를 기획했다. 왜 걸어서 바다까지를 기획하게 되었는지 그 시절 ‘피터팬’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걸바의 목적은 "낭만을 갖는 것이다"라고...

 글쎄.. 잘 기억나지 않는데 처음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자리에서 이런 이야기를 했던 것 같아. 걸바의 목적은 "낭만을 갖는 것이다"라고... 이를 위해 가슴에 별 하나 담고, 그 별의 끝에 있을 바다를 생각하면서 자기 몸의 리듬을 찾고, 다른 이의 리듬에 맞춰보며 스스로 우주임을 느껴보라는 것이었지.

별은 바다로 가는 나침반 또는 자기영웅일 것이고,
바다는 자신이 다다르고 싶은 어느 곳이었지.
바다까지는 많이 멀지.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갈 수가 없어.
그래서 자기 몸의 리듬감을 가져야 하고 다른 이들과 함께 가야하는 길이기에 서로의 리듬을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지.
그러다보면 사람에 따라 어느 순간 우주가 생명으로 느껴지고.
아! 내가 스스로 우주이거나 우주 어느 한 켠을 걷는 찰나의 나그네임을 느끼게 되지.

난 몸과 마음과 머리, 그리고 의지의 관계를 늘 생각해보는 편인데,
각각은 어디에서부터 출발하는 지 상관없지.
각각이 우리를 움직이게 하는 최초 동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야.
걸바는 몸을 움직여 마음과 머리, 그리고 의지를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전제에서 출발한 프로젝트이고 하자작업장학교의 길찾기 프로젝트에 입학하는 십대들의 경우, 물론 제도권 교육을 무사히(?) 통과한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자기 몸의 자율권을 한 번도 행사해보지 못했거나 아니면 미디어에 의해 소비되는 몸의 이미지를 흉내내는 훈육된 몸을 가지고 있어서 이를 빨리 벗어나도록 해야 할 필요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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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머리 참 크기도 하다"  

 첫 번째 걸바는 참가한 모두에게 실험이었지. 나 역시 8일을 걷기만 하는 여행은 처음 해보는 것이었으니... 출발하고 얼마동안은 죽을 것 같고 길만 보이고 주위는 보이지도 않고 내 몸 아픈 것만 신경 쓰이더니, 그 과정을 통과하자마자 몸이 막 들뜨고 기분이 좋아지고, 같이 걷는 사람들이 보이고 서로 의지하게 되고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이 들고 세상이 아름다워 보이는 거 있잖아.

사랑에 빠진 감정 같은 건데...
어쨌든 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지. 그리고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걸바의 효과가 바다에 다다랐을 때 떠올랐는데... 바다에 도착해도 7박8일 동안 마음속에 기대했던 바다는 이미 거기에 없다는 거였지(캄캄한 밤에 도착한 때문이기도 했고)
그러니 허탈해지고 아쉬워질 수밖에!!!
이럴 줄 알았으면 힘들어하는 친구의 손이라도 한 번 더 잡아줄 걸...
개울에 발이라도 한 번 담궈볼 걸.
느티나무 아래서 낮잠이라도 자둘 걸.
이런 아쉬움이 생기는 게지.

에피소드라~ 글쎄...
정말 독특한 감성의 캐릭터들에게 어울리지 않는 패키지 여행 같은 것이었으니
여행 내내 자잘한 사건들이 꽤나 많았던 듯. "지랄같은 나의 인생에~ 돌아오지 않을 청춘의 여름날~"로 시작하는 크라잉넛의 '양귀비'라는 노래를 부르던 몇 몇 친구들.
둘째 날 저녁이었나?
지금 생각해보면 거리계산을 잘 못해서 거의 40Km 정도를 걷지 않았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데... 앞서간 조로부터 “용두휴게소까지만 오면 거의 다 왔다”라는 연락을 받아뒀던 터였지. 난 퉁퉁 부은 발로 절룩거리며 걷는 제일 마지막 조와 함께 있었는데 밤은 깊었고 춥기도 해서 힘들어 하든 차에도 저 멀리 휴게소가 보이면 막 뛰어갔는데... 도착해보면 용머리휴게소란 짝퉁이름이고 또 휴게소 불빛을 보고 달려가면 용머리만남의광장이란 이름이고... 지나는 길 가에 간간히 들어선 밥집의 이름도 용머리국밥, 용두국밥, 용마을국밥 이다보니 "용머리 참 크기도 하다"는 누군가의 독백에 많이 웃게 되었는데...

바로 그때 하늘에는 별이 억수 같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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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에 도착해 아무 것도 보지 않아도 좋아..

내게 걸바는 인생의 축소판 같은 것이었는데...
삶에 생략은 없다, 오롯이 내 걸음으로 디디고 나아가는 수밖에.
그 길을 함께 하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 있고 때로는 고독하고 때로는 명랑하고 때로는 부딪히기도 하고... 그래서 그 길은 우연적이면서도 필연적인 수많은 인연들을 만들어내고
그것을 즐길 것인지 괴로워하며 피할 것인지는 스스로가 판단할 몫이라는 것.
네가 그러고 있는 동안에도 밤하늘에 별은 우라질 것이고
길 가에는 도라지꽃, 애기똥풀, 며느리밥풀꽃이 흐드러질 것이란 것.

바다에 도착해서 아무 것도 보지 않아도 좋지.
언젠가 그 바다로 내가 걸어서 갔었다는 것.
그래서 또 언젠가는 다시 그곳으로 걸어갈 수 있으리라는 것.
뭐 이런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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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낭만은 나비이고, 산수유열매고, 지나가는 바람과 새소리고, 따뜻한 손이고, 휘파람소리이고..

에~ 낭만이라...

다시 걸바의 목적으로 돌아와서 낭만을 갖는다는 것.
이건 파라다이스를 찾을 수 있고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의 다른 말인데...
내게 낭만은 나비이고, 산수유열매고, 지나가는 바람과 새소리고, 따뜻한 손이고, 휘파람소리이고... 그런 걸 충분히 바라보고 느낄 여유를 갖는 거였지.
각자에겐 각자의 낭만이 있겠지.
그런 게 없으면 재미없잖은가 말이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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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팽퐁의 ‘유쾌한 은유’, 마카오를 울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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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10월, 노리단에서 탄생한 ‘핑팽퐁’은 ‘마카오 국제 아트 페스티벌’에서 공연을 했습니다. 노리단은 ‘핑팽퐁’의 해외 공연에 대한 성과와 그들이 경험한 것을 지난 5월 14일에 ‘쇼하자’ 형식으로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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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핑팽퐁’은 보다 많은 사람들과 자신들의 이야기를 공유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들의 이야기에 귀기울여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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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보러가기 배너

 

‘글로비쉬’로 자신의 공간을 설명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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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센터 열린작업장 안에 포함되어있는 죽돌들은 모두 ‘spikaja’에게 ‘글로비쉬’라는 언어를 배우고 있다. 이들은 외국인이 찾아왔을 때 자신의 공간은 자신의 언어로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에 이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spikaja’는 5월 8일 폴란드 청소년 대표단이 찾아왔을 때 ‘글로비쉬’로 ‘영문하자투어’를 진행하기도 했다. 편집진은 이들이 바쁘게 돌아다니는 모습을 포착, 그들의 속내와 이야기를 들어보려 한다. ‘글로비쉬’ 프로젝트와 ‘영문하자투어’는 무엇이며, ‘spikaja’가 생각하는 것은 무엇인지 들어보도록 하자.

 

청소년 창업 릴레이 기고- 너와 나, 지금 이 곳에서

 

열린작업장의 글로벌학교는 현재 창업을 준비하는 과정에 있다. 이들은 창업팀의 프로젝트인 ‘성미산 학교’ 워크숍을 진행 중인데, 워크숍의 과정과 그 속에 숨겨진 이야기는 어떠한 모습일까? 센터 죽돌이자 워크숍 진행자인, 그리고 창업을 준비 중인 리사의 속 깊은 이야기를 들어보자.

 

하자마을 사람들 이야기 - Avec papi

 

하자센터에는 자원봉사를 오는 많은 분들이 계십니다. 빠삐는 리필클럽 안에서 활동하고 계시며, 센터 죽돌들에게 불어를 가르치고 계십니다. 오드리는 디자인팀에 속한 죽돌로, 빠삐에게 불어를 배우고 있습니다. 오래전부터 빠삐의 수제자였던 오드리는 빠삐에게 궁금한 것과 빠삐가 해주실 말씀들이 듣고 싶어 인터뷰 요청을 했습니다. 오드리와 빠삐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봅시다.


-;> 좀 느끼하게 썼어요. -_-

 

 

편집자 칼럼을 어떻게 써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가득 차 있었다.

‘어떻게’라기 보다 ‘무엇을’이란 말이 더 맞겠다.

5-6월, 한 학기 내지는 1년 중 한창 속도를 붙이고 각자의 일에 집중하는 시기이다. 시작의 설레임과 긴장감은 꽃가루와 함께 날아가고 남은 것이라곤 광대뼈까지 내려오는 다크써클과 수채 구멍 가득 메운 머리카락들이다. 새삼스럽게 춘곤증이란 말을 앞에 갖다 붙이고는 합리화 시켜보지만 점점 하얗게 멍해져오는 머릿속은 이미 분리수거가 어렵다.

 

얼마 전 폴란드 청소년 대표단이 하자센터를 방문하면서 센터투어를 열린작업장 죽돌들이 영어로 진행했었다. 외부인이 하자센터를 방문했다는 점이 큰 이슈는 아니다. 투어를 맡았던 죽돌들은 통역교실(spikaja). ‘투어’라는 컨텐츠와 영어를 결합하여 또 다른 학습의 연장선에 있다는 것이 우리가 집중하고자 했던 부분이다. 스픽하자 죽돌들은 글로비쉬 프로젝트를 진행하기도 한다. ‘죽돌이기 때문에 배우기만 하는 입장’이 아닌,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를 나누고 가르치기도 하면서 마치 한 덩어리의 밀가루 반죽이 몇 십 가닥의 면발로 변하듯 언어라는 것을 가지고 여러 곳에, 여러 사람과 여러 방법으로 퍼뜨려지고 있다. 누군가에게 배운 것을 또 다른 누군가에게 다시 전달하는 모습에 대해 이야기 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와중에 한창 진행 중에 있는 글로비쉬에 대한 자세한 기사를 이번 웹진에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웹진을 만들어가는 진행과정이나, 예상하건대 완성되어 발행될 6월호 ‘하자로’는 종전과는 다른 모습일 거라 생각한다. 적응훈련을 마치고 제법 능숙하게 써낸 기사라든지 자신이 해야 할 일에 대해서 어느 정도 스스로 마무리 짓는 모습들로 우리가 말하고자 하는 것들이 좀 더 분명하게 보여 질것이다. 여과기를 거치지 않고 ‘되는대로, 할 수 있는 것들은 전부’를 외쳐대며 뛰어다녔던 3-4월의 순진함은 봄이 지나고 여름이 오듯 자연스레 변화되었다. 편집팀은 페이지 수가 많고 적음에 연연하지 않고 좀 더 웹진 기능을 가지고 있는 ‘하자로’가 만들어지기를 원했고, 그렇게 읽혀지기를 원한다.

요즘 같은 때에는 다들 진행하고 있는 일들에 대한 고민이나 버거움으로, 그리고 춘곤증과 함께 찾아오는 무기력함에 허덕이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이런 이유들은 언제나 항상 도처에 있고, 언제 또 다시 불쑥 찾아올지 알 수 없다. 그렇기에, 내일을 위해 사는 모진 오늘을 고이고이 잘 접자.

 

6월호 편집자의 편지- 괭(열린작업장 죽돌/웹진 편집팀)

 

조금 더 강경한 말투, 어투? 편집자의 권위를 드러내거나 위치를 이용하여 글을 써도 좋을 것 같다는 달갱의 코멘트가 있었습니다용.

이미지는, 의사전달은 되지만 요리사가 너무 크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나...

직접 손으로 그린 다음 내일 스캔으로..

 

함께 걸어서 뜻 깊었던 날들.

 

어렸을 때부터 유난히 잘 걸었던 나는, 한 살 아래 동생이 태어나면서 주로 걸어 다녀야 했다. 엄마께선 동생을 업고 다녀야 해서 나를 업어줄 수 없으셨는데, 걷는 능력이 타고 났었는지 걸어 다니면서도 업어주라는 투정을 않았다고 한다.

그 당시 내가 살던 집은 5층이었는데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계단을 오르락내리락 거려야 했고, 내가 다니던 유치원은 걸어서 20분 정도 되는 거리에 있었는데 유치원 버스가 없어서 걸어 다녀야 했다. 또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지리산 자락에 위치한 ‘실상사 작은학교’ 이었는데 그 곳은 학교 주변에 있는 마을에서 생활을 한다. 생활하는 곳과 학교 까지는 30분 정도 걸리는데 걸어서 통학을 했다.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생명평화 탁발순례로 2박3일 동안 걷기도 했고 지리산, 설악산, 북한산, 도봉산, 히말라야 등반 등 걷는 것은 나의 일상이었다. 지금 까지 했던 경험들로 봤을 때 걸바는 해볼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인지 나는 걸어서 바다까지를 갈 날이 가까워져도 다른 아이들처럼 걱정하지 않았다.

걸어서 바다까지(이하 걸바)를 처음 기획하신 강구야는 준비 모임에서 우리에게 걸바를 가서 자연을 느끼고 일상에서 느끼는 것과 다른 것들을 느껴보라고 하셨다. 그렇지만 걸어서 바다까지를 가는 일정을 잠시 보았을 때 자연을 느끼거나 다른 것을 체험하는 게 중점이 아니라 하루 종일 걷는 것이었기 때문에 이게 무엇을 위해 하는 것인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렇게 걸어서 바다까지라는 긴 여행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내 예상과 달리 오랜만에 긴 시간을 걸어서인지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 지도에 나온 다리를 세면서 목적지까지 어느 정도 남았는지 계산하며 걸었다. 똑같지는 않지만 똑같아 보이는 건물, 자동차, 다리. 나는 서울이란 곳에서 특별함을 찾지 못했다.

지리산에서 3년을 생활하면서 왠지 모르게 도시로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고, 그래서 하자센터로 오게 되었다. 처음에 도시로 왔을 때는 도시의 불빛들과, 북적거리는 사람들, 지하철과 버스를 타고 다니는 생활, 누리기 쉬운 문화적 혜택들이 새로웠고 즐거웠다. 그렇지만 두 달 정도 생활하니 모든 곳이 같아 보이고, 내가 생각했던 특별함은 곧 지루함으로 변했다. 그래서 나중에는 다시 시골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더 절실해졌고, 도시에서 생태적으로 살 수는 없을까라는 고민도 들었다.

일정을 마치고 숙소에 도착하니 사방에서 신음 소리가 들렸다. 안티푸라민과 파스는 불티나 게 나갔고, 발에 물집이 잡혀 판돌 두부에게 치료를 받으러 온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물집치료는 바늘 끝을 불로 소독하고, 실을 꿰어 물집에 실을 통과 시킨다. 그러면 며칠이 지나 물집이 없어진다. 나는 물집이 나지 않았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친구들은 이런 방법 외에도 자신만의 방식으로 물집을 터트렸다. 그대로 놔두는 사람도 있었고, 도구 없이 자신이 물집을 터트리는 친구도 있었다.

하루에 35km정도 되는 긴 거리가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자신만의 페이스를 찾아 갔다. 빠르게 걷는 사람도 있었고, 느리게 걷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처음에는 선두에 서서 매일 숙소 도착 신기록을 세우는 사람 중 하나였는데, 어느 날 문득 내가 빠르게 지나쳐서 보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도로 옆으로 있는 강과 강을 따라 있는 산과 나무들이 수면에 비춰져 보인 그림자, 빠르게 걸을 때와는 다르게 내 살을 부드럽게 휘감고 가는 바람, 변덕스러웠던 하늘, 자동차의 매연과 소음, 어딘지 모를 곳에서 나는 싱그러운 풀내음이 느껴졌다. 원정이나 종주를 주로 했던 나는 앞사람을 쫓아가야 길을 잃지 않고, 전체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기 때문에 내 앞에 보이는 사람과 1m 간격으로 맞춰 가야 한다는 생각이 나도 모르게 머릿속에 박혀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걸바는 자신의 페이스대로 가던, 다른 사람과 발걸음을 맞추던 선택이었다. 나는 걸바에서 내가 느리게 걷는 것을 더 좋아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리는 걸으면서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가기도 했고,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며 가기도 했다. 가장 인기 있었던 노래는 김광석의 ‘바람이 불어오는 곳’이라는 노래다. 촌닭들이 공연할 때 불러서 길찾기들이 대부분 알고 있는 곡이었고, ‘바람이 불어오는 곳. 그 곳으로 가네.’라는 노랫말은 걷고 있는 우리의 상황과 비슷한 것 같았다. 가사를 모르면 모르는 대로 음만 흥얼거려서 더 재미있었다.

걷다보면 자신과 비슷한 속도로 가는 친구와 이야기를 나누게 된다. 걸으면서 대부분 “주니어가 되면 뭐 할거야?” 라는 질문을 했다. 나는 “글쎄…….”라고 대답 했지만 생각해보니 주니어가 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 모두들 자신의 앞날에 대해서 고민하고, 불안해했고, 20대로 넘어가면 자립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대화에서 느껴졌다. 어떤 명쾌한 답을 얻지는 못했지만, 지금 생활에 충실하자는 결론을 내렸다.

대부분 일정을 화기애애하게 잘 지낸 것 같지만, 몸이 피곤하다 보니 서로에게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었다. 그리고 하자 안에서는 작업할 때만 만났지만 걸바에서는 눈 뜨고 일어나 잠들 때 까지 같이 있었기 때문에, 지금 까지 길찾기 과정을 하면서 서로에게 느꼈던 좋지 않던 감정들이 걸바에서 눈에 띄게 드러났다. 크게 싸운 일은 없었지만, 6일째 되는 날 저녁모임을 하다가 새벽 2시 반까지 서로에 대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지금까지 유지되었던 무난하고 평탄한 관계가 깨질까봐, 혹은 친하지 않아서 못했던 말들이 오고 갔다. 몇몇 아이들의 대해 코멘트를 하는 시간이 있었다. 이 시간에서 자신의 모습에 대해서 새롭게 알기도 했고, 예전부터 있던 문제라서 앞으로 고쳐나가겠다고 했다. 서로의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문제점을 숨기는 게 아니라 꺼내놓고 해결방법을 찾는 게 집단의 발전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을 문득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처음으로 학부모님들과 함께 걸어서 바다까지를 하루 정도 같이 했었다. 학부모님과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있길 내심 기대했었는데, 걸바의 구성원으로써 같이 참가 하는 게 아니라 잠시 길찾기들 응원 겸 학부모 모임을 가지는 느낌이었다. 학부모님들께서도 길찾기들이 지키고 있었던 걸바 규칙을 똑같이 지키기로 하셨는데 잘 되지 않았다. 그리고 학부모님을 소개하는 시간이 없어서 하자 별명과 누구의 부모님이신지 알 수 없었다. 다음에도 학부모님들께서 참여하신다면 걸바 구성원으로써 동등하게, 같은 경험을 나누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학부모님들께서 주신 간식은 걸을 때 정말 힘이 되었다.

몸이 고통스러워서 어떻게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빨리 목적지에 도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 그리고 하도 걷다 보니 뇌에서 걸으라고 하는 게 아닌데 다리가 따로 노는 듯한, 길찾기들 사이에선 다리만 해탈 또는 다리에도 뇌가 달린 듯 하다고 표현한 것들. 힘들어서 정신을 놓아야만 걸을만했던 것들이 나에겐 이미 했었던 경험이지만 길찾기들과 함께해서 새로운 경험이 되었다.

마지막 날, 바다가 가까워져 수평선이 보일 무렵 마음이 오히려 차분해졌다. 왠지 감동이 밀려온다던가, 감정이 북받쳐 오를 거 같았는데 그렇지 않은 까닭은 아마 내가 꽤나 편하게 걸어와서 일거다. 친구들은 바다에서 물장구 치고, 껴안고 난리를 치면서 놀았는데 나는 바다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발에 땀나게 뛰어다녔다. 물놀이를 싫어하기도 하지만, 가만히 앉아서 바다를 보고 싶은 마음이 더 컸었다.

낙산해수욕장에서 보는 바다는 내가 봤던 바다 중에서 가장 예뻤다. 9박 10일 동안 걸어온 끝에 본 바다라서 예뻤고, 이곳까지 오기위해 길찾기들이랑 같이 걸어온 시간이 있기에 예뻤다. 피서를 가기 위해서, 울적한 마음을 달래기 위해서 간 바다가 아니라, 처음에는 왜 바다를 가는지도 모른 채 무조건 걸었지만 여기까지 오는 동안 나만의 의미가 차곡차곡 쌓인 후 보게 된 바다라서 예뻤다.

내가 여태 해왔던 걷기와는 다르게 걸어서 바다까지는 공동의 목적이 없이 걸었기에 더 많은 것을 느낀 것 같다. 처음에는 의미가 없어서 시간이 헛되이 보내는 건 아닌지 불안해했지만 결국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을 얻었고, 꼭 의미가 정해져 있어서 그 것대로 배워왔던 나에게 꼭 그렇게만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게 된 시간이었다. 목적이 있든, 없든 아직 나는 무엇이 좋은지 잘 모르겠지만 목적이 없어도 의미를 얻는 것과는 상관없다는 걸 알게 되었고 좋은 경험이었다.

Avec Papi

(빠삐와 함께)

Refillclub et Papi

(리필클럽의 빠삐)

 

Papi (빠삐)는 프랑스어로, 한국어의 ‘할아부지’정도의 할아버지를 부르는 친근한 단어다.

그 분과 처음 만난 건 2006년 가을, 첫 불어수업. 평소 프랑스어가 너무나 배우고 싶었던 나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수업에 들어갔다. 그 날 처음 본 그 분은 말쑥한 양복차림에 점잖은 말투의 Monsieur(무슈)였다. 우리는 차를 마시며 자기소개를 했다. 모두 알다시피, 하자센터 안에선 본명 외에 자신이 직접 이름을 짓는 전례가 있다. 허나 그 당시 그분은 아직 닉네임을 정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일 년 동안 그 분을 ‘무슈’라고 불렀다.

그리고 해가 돌아 2007년 새 학기 불어수업이 돌아왔다. 그 분은 새로운 학생들 앞에서 새롭게 자기소개를 하시며 자신 있게 ‘Papi’라고 불러 달라 말하셨다. 그래서 나는 새 학기 불어문제집 앞에 정성스럽게 ‘Papi’라고 적었다.

첫 수업 때의 티타임은 서비스라고 생각했는데, 빠삐는 매 수업마다 “Café 할까?” (꼭 ‘캬페’라고 발음하신다)라고 물으시며 티타임으로 수업을 시작했다. 정말 ‘빠삐’같은 편안한 분위기의 말랑한 불어발음을 하시는 빠삐가 좋았다. 무엇보다 ‘리필 클럽’이라는 이름으로 자원해서 불어선생님을 하시며 한 번도 지각하시지 않고 매번 열심히 수업하시는 빠삐가 멋있었다. 그렇게 빠삐를 흠모해 온 지 벌써 세번째 해. 그 동안 작게나마 편지나 꽃 등으로 마음을 표현해 봤으나, 이렇게 수업 외에 시간에 둘만 있는 건 처음이라 기대된다. 그리고 외국어를 배우는 재미를 알게 해 주신 빠삐에게 매우 감사하고 있다고 전하고 싶다.

빠삐에게 듣고 싶었던 이야기들, 그리고 빠삐가 속하신 ‘리필클럽’의 정체는 무엇인지 들어보자.

 

A: 인터뷰를 하기 전에 빠삐를 모르시는 분들을 위해 소개부터 시작할까요? 소개 부탁드려요.

P: 이미 알고 있잖아 흐흐.

2년 전 첫 수업 때 이미 이야기를 했잖아. 일단 나는 육군사관학교를 다녔고 군대 최전방에서 근무도 하고 연대장 지휘관 이런 것도 했어. 그러다 외국어 대학교에서 불어를 전공했지. 위탁교육 받아서 문학사를 받았어. 그리고 불란서(프랑스) 가서 2년 동안 공부하고 국제 외교 공부를 하고, 7년 동안 국방무관이라는 국방부 대표를 했어. 국방무관으로 프랑스에 파견된 거지. 그리고 정년퇴직 후 사회경험을 쌓고, 현재는 하자센터에서 여러분들과 이야기 하고 있지.

A: 군대에서 많이 일을 하셨다는 건 하자에선 굉장히 특이한 경력 같아요. 여담이지만, 빠삐는 군대에 계셨잖아요. 그래서 여기오니까 여학생들이 많아서 좋다고 하셨잖아요.(웃음) 그런데 빠삐가 남학생들 대하실 때는 여학생들과는 다르게 조금 엄하게 대하시는 것 같아요. 그렇죠?

P: 그럴지도 모르지. 근데 차별하면 안 되는데.

A: 그래도 남학생들에겐 조금 딱딱하게 대하시는 것 같아요. 저는 좋아요.(웃음)

P: 내가 아들만 있어서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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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생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역할’ 정도가 되주고 싶어. 그게 나의 목적이지.

 

A: 궁금한 게 있는데, 빠삐는 군대에도 계셨고, 프랑스에도 계셨고 지금도 세계 여기저기 많이 여행하시잖아요. 그런데 하자 센터에는 어떤 동기로 오게 되셨나요?

P: 정년퇴직을 한 후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나 혼자 알고 있지 말고 뭔가를 위해 봉사하자 라는 생각을 했지.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불어를 이용하자고 생각했어. 불어를 배우고 싶은데 여건이 안 되거나 환경이 안 되서 못 배우는 사람들을 위해서 봉사하자고. 그 사람들이 젊거나 나이가 많거나 상관없이. 리필클럽의 박 교수님과 내가 마음이 같았는데, 그 분이 이곳을 추천해 주셔서 오게 됐지.

A: 아, 박홍이 교수님이라면 하자센터에서 검도를 가르치시던 분이시죠? 리필클럽의 일원이시구요. 작년에 살롱수요일(리필클럽포스터)에서 리필클럽과 대화하는 시간이 있었지만 아직 리필클럽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어떤 모임인지 설명해 주세요.

P: ‘리필클럽’은 서로 전공이 다른 친한 4쌍의 부부가 모여 만든 친목회야. 함께 이야기하고, 토론하고, 여행하고 그러지. 작년에 중국, 이집트 갔던 것도 그 사람들하고 같이 갔어. 거기 가서도 중국문명, 이집트문명 등 지식을 공유하지. 서로 취미도 이야기하고. 우리는 어떤 목적도 주제도 없지만 정기적으로 모여서 이야기를 나눠. 그렇게 이야기를 하다보면 자주 과거 이야기를 하게 돼. 그러다 다들 과거에 부족했던 것을 되새겨 보거나, 채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어. 정신적으로든, 육체적으로든 말이야. 그래서 ‘리필클럽’이라고 지었지. 큰 단체가 아니라 까페에서 커피를 리필하는 거랑 똑같은 의미를 가진 친목회야. 그래서 우리는 음식점 가서도 농담으로 ‘우리 리필클럽이니까 리필해주세요’라고 말하기도 해.

인생을 시작하는 과정에서 하나의 ‘역할’ 정도가 되주고 싶어. 그게 나의 목적이지.

사회생활을 쭉 해오고 지금은 마무리 단계에 있기 때문에 욕심을 내는 게 아니라 내가 갖고 있는 것을 작게나마 나누고 싶어.

A: 진심으로 멋있어요. 저도 나중에 이런 모임을 가질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혹시 여기 말고 다른 곳에서 활동은 하세요?

P: 아니. 안하지.

A: 그럼 하자에서 하는 언어수업에 관련해서 가볍게 이야기 해주세요.

P: 하자센터에서 뭘 한다는 것을(불어 수업을 한다는 것을) 어디 가서 이야기 한 적도 없고, 누가 알지도 못해. 하자센터에 몇 사람들하고 리필 클럽 사람들만 알고 있어. 내가 경험한 것을 학생들과 나누고 같이 있고 싶어서 오는 거지, 사명감을 갖고 있는 것도 아니고 누구에게 알리고 싶지 않아.

A: 그래도 저희는 항상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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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더하기 1은 2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왜 1 더하기 1을 배워야 하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것.

A: 같이 수업하시면서 저희에게 주는 것 말고도 빠삐가 얻어가는 게 있다면 무엇이 있나요?

P: 내 마음에 기쁨을 가져가지.

불어를 배우는 것만으로 끝나는 게 아니라 불어를 이용해 나의 경험담을 전달하며 자극을 주거나, 동기를 불어 넣어 주는 게 내 가장 큰 목적이지. 사실 20,30대도 훌륭한 선생님은 많지. 그러나 그 들이 학문이나 테크닉 적으론 훌륭하겠지만, 진정한 경험에서 우러나는 생활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에 있어서 우리가(리필클럽) 나을 수도 있지.

어린 학생들에게 목표의식을 심어주거나 뭔가를 교육할 수는 없지만, 희망을 갖고 목표를 향해 하나하나 가는 와중에 작은 도움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 불어에 관심을 갖은 것이 어떤 계기가 돼서 그 사람의 미래에 열매를 맺는 데 도움이 되는 것으로 만족해.

1더하기 1은 2가 되는 방법을 알려주는 게 아니라, 왜 1더하기 1을 배워야 하고 그것을 배우기 위해선 무엇이 필요한지 깨닫게 해주는 것. 주입시키는 것이 아니라 본인이 그것을 느끼게 하는 것이 내 바람이지. ABC를 배우는 것 보다 나와 이야기 하며 살아가는 방법에서 하나의 아이디어를 찾아간다면 나는 만족스럽겠지. 나에게 불어를 배우며 살아가는데, 자라는 데 하나의 동기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어. 그런데 그건 본인이 찾아야지. 학생이 직접 찾게 되면 좋겠지.

A: 이 말 참 좋아요. 1+1의 방법이 아닌 이유…. 학생들 이야기가 나와서 말인데요, 하자에 오셨을 소감을 이야기해 주세요.

P: 나는 외국에 있었기 때문에 외국 학생들과 많이 비교하게 돼. 이곳은 한국이 아닌 외국 학교 같은 자유분방함이 있어. 그런데 사고는 자유스럽겠지만 하나의 우려가 있어. 살아가는데 항상 즐거움만 있는 게 아니라 어려움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해.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하나의 큰 과정이고 경험이 필요한 것인데, 이 학교 체계로는 어려움이 왔을 때 내가 어떻게 그것을 극복할 수 있는지 깨닫기가 조금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사실 나는 일주일에 한번 와서 2시간 잠깐 보고 가는 건데 잘 모르지. 그러나 여기 분위기를 봤을 때 그런 느낌이 없잖아 있었지. 그런 면에선 정규교육 받는 사람들에 비해 (어려움에 대처하는 것이)뒤떨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어려움을 모르면 즐거움도 느끼지 못해. 우리 오드리도 하루 내내 10시간 내내, 행복하고 즐거운 건 아니잖아. 이곳 학생들이 사회생활 하는 데 더 어려움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 사회생활에선 이미 어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을 써먹을 때지.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극복하는 법을 익혀야 하지 않나.

A: 우려하시는 그 부분 이해할 것 같아요. 헌데 하자가 겉으로 보기엔 그렇게 보일 수 있지만 안 에서는 오히려 공부도 해야 하고 일도 만들어야 하는 고민들이 있어요. 그래서 오히려 어려움이 더 많기도 해요.

P: 물론 어려움이 있겠지. 하지만 시간제약을 두고 규정된 시간, 규칙을 지키는 상황에 대해서는 여기가 조금 자신이 없지 않나 싶어. 여긴 많이 자유스럽지. 각자가 자유스러운 가운데서 아이디어를 창출하고 나 자신을 개발할 수 있는 교육체계로써는 바람직해. 정규교육도 틀 속에 갇힌 일제시대의 교육체계에서 탈피해야지. 내 자신의 능력을 개발해서 뭔가를 완성시킬 수 있다는 것에선 바람직해. 하지만 나는 자세히 모르기 때문에 이야기하기가 조금 그래.

A: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건의하고 싶으신 거나 조언하고 싶으신 거 있으신가요? 수업 받는 학생들에게라도.

P: 딱히 없고. 하지만 아무래도 불어는 취미처럼 여겨지기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가서 흥미가 떨어져. 열심히 해서 성과가 있으면 기운이 나는데 그런 성의가 조금 떨어지니 열의가 식게 되지.

A: 저도 동감해요.

P: 작년 초나 지금이나 진도가 변한 게 없어. 이해 못 하는 사람들을 또 끌고 나갈 수도 없고.

A: 저도 2년 째 계속 같은 부분만 배우고 있어서 안타까워요. 그래서 불어로 편지 쓰거나 하는 걸로 조금 성의를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저 불어공부 열심히 하는 거 같아요?

P: 오드리는 열심히 하지. 열심히 해야지. 그렇지 않으면 안 돼. 내가 벌써 몇 년이야, 이렇게까지 공부했잖아. 그런데 그렇게 해도 끝이 없는 거야.

A: 계속 열심히 할게요.

 

A: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하고 싶은 말 있으시죠?

P: 아까 수업시간에도 이야기 했던 이야기를 할게. 나는 이제껏 내 삶이 없이 살아왔기 때문에 나를 돌아볼 여유가 없었어. 나라를 위해 일하고, 그 뒤론 자식들을 위해 일하고. 그래서 목표로 가는 과정에서 자기를 돌아보는 시간을 꼭 갖아야 해. 상기시키는 시간을. 이것은 어렵지만 꼭 필요한 거야.

그럼, Au Revoir~다음에 봐.

A: 인터뷰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Merci beaucoup! 다음 주에 봐요!

-FIN


로 스픽하자!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과 비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서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 지구촌시대 제2의 언어로 꼽히고 있는 영어는 이제 그것을 모국어로 삼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영어 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대다수의 어린이들과 청소년, 성인들이 영어 공부를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필수과목 중 하나인 영어시간이면 문법을 비롯해 읽기와 쓰기를 배우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취업을 위해 토익을 준비한다.
 
 하자센터 역시 초창기부터 영어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렇다면 하자센터에서는 어떤 목적과 맥락을 가지고 영어를 만나고 있을까?


[##_1C|1102381376.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하자투어를 진행하는 'spikaja'의 모습_##]

- 아시안 잉글리시에서 영어들로, 그리고 글로비시로


 이번 2008년 봄학기가 시작되면서 열린작업장 죽돌들은 '글로비시' 공부를 시작했다. 글로비시란 1500개의 영단어로 효율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고안된 언어로, 장 폴 네리에르가 간편하고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의사소통을 위해 쓴 책 「글로비쉬로 말하자」에서 비롯되었다.
 하자센터가 올해 들어서면서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아니다. 국내외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경험을 나누기를 원했던 하자 초창기 죽돌들이 하자센터 영어공부의 발단을 마련해, 이후 죽돌들과 센터가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는 영어와 관련한 다양한 시도들로 이어진다. ‘아시안 잉글리쉬’, ‘영어들 캠프’, ‘글로비시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궤적이 그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혹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영어로, 혹은 한글 섞인 영어로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는가? 이때는 같은 영어임에도 영어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보다 훨씬 편한데, 이는 아시아 언어권이 한자라는 같은 베이스에서 시작해 다른 갈래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아시안 잉글리시'는 이러한 맥락으로 고민되었다.

이는 하자에서 초대 강의를 맡았던 대만의 ‘관신첸’씨가 언급한 개념으로, 당시 영어에 관심이 있던 많은 죽돌들을 이후 아시안 잉글리시 열풍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아시안 잉글리시는 아시아권 사람 사이에서 알아듣기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진 영어인 반면, 영어권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소통이 쉽지 않다는 한계를 지닌다.


[##_1C|1276397743.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spikhaja'는 107studio(영상방)를 소개할 때 캐치스코프(영상팀)의 영상물을 함께 보여주며 공간과 사람에 대한 설명을 했다고 한다._##]

 아시안 잉글리시에서 나온 고민들은 ‘영어들 캠프’라는 실험으로 그 장을 옮겨 지속되었다. 글로벌학교가 참가한 이 프로젝트에서는 다문화세대인 강사들이 직접 '이주여성'이나 '결혼이민자'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어가 아니라 영어'들'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2006년 당시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글로벌학교 죽돌들은 이용자의 어휘력과 사용 방법 등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다양한 언어들을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아시안 잉글리시나 영어들 캠프에서는 따로 영단어를 외우거나 문법을 공부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콩글리시’도 되고, ‘징글리시’도 되며, 심지어 바디 랭귀지까지 사용하여 의사소통만 가능하면 된다는 전제하에 영어를 배웠다. 거기에 키워드 ‘공부하라’를 접목시킨 것이 바로 ‘글로비시 프로젝트’다. 글로비시 프로젝트는 교재 「글로비쉬로 말하자」를 활용해 ‘spikaja(스픽하자)’의 죽돌들이 직접 강사가 되어 같은 팀 죽돌들에게 글로비시를 강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_3C|1343158847.jpg|width="160" height="10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노리단을 소개할 때의 모습|1226589690.jpg|width="160" height="10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히옥스와 폴란드 청소년 대표단|1061692030.jpg|width="160" height="106"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촌닭들의 공연이 끝난 후_##]

- 스픽하자, 언어의 발견이 기여의 즐거움으로


 스픽하자는 ‘하자글로벌프로젝트’의 ‘통역하자’가 글로비시를 하자로 접목시키며 한 학기동안 영어강사로 탈바꿈한 팀으로, 글로비시 프로젝트 외에도 ‘영문 하자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영문 하자투어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폴란드 청소년대표단이 지난 5월 8일 하자센터를 방문했을 때 최초로 시도되었다. 이는 투어에 동행하며 영어 통역을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스픽하자가 직접 센터 공간에 대해 조사하고 이해한 것들을 투어 참가자들에게 직접 영어로 설명해주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과정을 통해 스픽하자는 자신들의 언어를 발견하고, 이를 다시 센터에 기여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글로비시 프로젝트를 위해 스픽하자는 사전학습 차원에서 바이링구얼 강사로부터 글로비시티칭에 대해 배우고 있다. 글로비시 프로젝트의 기획을 맡은 세옹(기획부 판돌)은 “어른이 어린 아이와 대화할 때 쉬운 단어를 골라서 말하듯, 영어 또한 상대방의 여러 특징을 파악해 적당한 단어를 골라 이야기해야 한다. 죽돌들이 글로비시를 배우는 이유는, 1500개의 단어로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이유 외에 언어사용에 있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배려의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이번 학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영어에 대한 죽돌들의 부담감이 다소나마 줄어들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스픽하자 팀 이외의 죽돌들 간에는 영어 실력의 격차가 큰 편이다. 다음 학기에도 이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인데,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죽돌 강사를 더 늘릴 계획에 있다."며 보완사항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보완되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글로비쉬로 말하자」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예문은 ‘I am a businessman.’이다. 당초에 책이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목적으로 출판된 것이라 그렇다. 이에 스픽하자는 십대 및 학생용 「글로비쉬로 말하자」의 제작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아울러 저자 초청 워크숍 등도 함께 계획 중이다.

[##_1C|1094874219.jpg|width="500" height="333" alt="사용자 삽입 이미지"|_##] 


 하자센터의 죽돌들은 열심히 영어공부를 한다. 영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이해하기 위해 일정 정도의 시간을 쏟는다. 그러나 이것이 대학에 가기 위해서, 혹은 모든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소통 가능한 언어를 찾기 위한 하자의 노력이 현재 글로비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열린작업장 및 하자센터는 현재 이를 통해 영어공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아가고 있다. 열심히 글로비시를 익힌 죽돌들이 어떤 외국인을 만나더라도 글로비시로 보다 당당하고 보다 쉽게 자신의 작업과 꿈을 설명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으로 보인다.


밤비(열린작업장 주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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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만남을 실천하다

글로벌 학교는 2005년에 세워졌다. 그때 당시에는 글로벌 시대에 살고 있는 청소년들이 모여 글로벌 감수성을 키우기 위해 사회적 약자, 다문화, 지구촌, 세계화 등등의 키워드를 중심으로 공부를 하는 학교였다. 그때 당시 글로벌의 중심 프로젝트는 현장 학습으로 라오스, 필리핀, 태국 등 아시아의 소외 지역으로 가서 그곳에 있는 사람들과 워크숍을 하는 것이었다. 넷째 학기에 접했을 때쯤에는 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인 서울 자체가 이런 키워드들로 구성되었으며, 서울 자체가 이미 글로벌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로벌은 지금까지 여행을 하러 다녔지만, 이제는 여행을 준비하고 기획하는 사람들로 진화해, 서울을 여행하기 위한 투어코스를 만들고 가이드 하는 팀이 되어보자는 이유로 글로벌학교는 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투어를 한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한 것 같다. 이 세상에 가이드를 직업으로 가져갈 청소년이 몇이나 된단 말인가? 글로벌에 온 이유는 다들 다양했으나 가이드가 되고 싶어서 글로벌에 온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글로벌에서 가이드를 하며 뭘 배우려는 것일까?

내가 글로벌에서 중요시 하는 것은 바로 만남이다. 글로벌 학교에서 하는 ‘서울 투어’는 사람들을 초대해 만남을 잘 실천할 수 있는 우리의 방법이다. 때문에 우리는 투어를 준비할 때 어떤 사람을 어떻게 초대할 것이며, 어떻게 인연을 맺을 것인지에 대한 수많은 회의를 거친다. 그리고 600년의 서울 역사 이외에 현재 서울의 모습, 사는 사람과 투어에 참가하는 손님들의 이야기를 어떻게 연결시킬 수 있을지를 생각한다.

장소를 세심히 바라보고 일상적인 생활을 유심히 관찰하는 것. 글로벌의 여행은 이런 질문들에서부터 시작이 된다. 가이드를 시작하면서부터 항상 걸어 다니는 길들을 유심히 관찰하게 되었다. 동네를 돌아다니며, 생각해보니 아파트가 참 많아졌구나, 차가 왜 이리 막히나 했더니만 집 앞에 9호선이 생기네?라는 생각을 하게 되곤 한다. 이런 나의 일상생활 속에서 생기는 호기심들은 현재의 서울과 이슈들로 이어지고, 글로벌의 회의 자리에서, 투어에서 해줄 수 있는 이야깃거리들이 된다.

글로벌은 현재 두 팀으로 나뉘어져있다. 가이드를 열심히 하는 학습팀과 이런 학습팀을 관리하고 발전해나가는 창업팀이 있다. 창업팀은 글로벌 학교 4기인 나와 로이, 5기 소라로 구성되어 있다. 창업팀을 시작한지 1년 정도가 되었는데, 이 1년의 기간 동안 부딪쳤던 난관들과 질문들이 꽤 있었다. 제일 먼저 부딪친 난관은 다들 생각하는 창업팀의 목표와 각자의 지점이 달랐다는 것이었다. 나 같은 경우는 직접 기획을 하고, 판을 짜고, 투어를 상품화하고 싶었기 때문에 창업팀을 시작했지만, 로이는 투어보다는 다문화와 같은 사회적 이슈들을 더 접목시켜 1일 캠프나 레스토랑을 하고 싶어 했다. 소라는 첫 학기부터 창업팀으로 들어왔기 때문에 갑자기 바빠진 일정에 굉장히 당황스러워했고, 다들 기획서를 쓸 때마다 굉장히 힘들어했었다. 하지만 어쩌면 기획서를 쓰면서 왜 투어를 하고, 글로벌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생각들이 정리되면서 조금씩 자신만의 언어들을 형성해나갔던 것 같다.

올해 3월쯤에는 창업팀에게 성미산 학교 워크숍 제안이 들어왔다. 성미산 학교에서 원하는 건 아이들을 데리고 다니면서 많은 장소를 가보고, 서울의 다양한 면모를 많이 봤으면 하는 것이었다. 중등 과정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성미산 장기간 워크숍은 소라와 함께 시작하게 되었다. 워크숍은 총 4개(한강, 남산, 북촌, 창신동)의 투어로 이루어져 있으며, 사전작업과 리뷰 시간을 통해 서로의 생각들과 장소를 보는 시선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시간도 있다.

 

이 워크숍을 진행하며 생긴 질문들은 역할과 책임감에 대한 것이었다. 성미산 워크숍은 창업팀의 임무였기 때문에 그만큼 전문성이 가해져야 했다. 창업팀의 이름을 걸고, 돈을 받고 하는 사업이었기 때문에 우리는 준비와 정성이 충분히 곁들어졌었는지, 투어의 내용과 우리의 태도가 빈약했던 건 아니었는지 등의 질문들을 계속해서 품었다. 처음이라 긴장이 되기도했고, 워크숍 자체가 허점이 많기도 했다. 또한 가이드가 아닌 교사로서 8명의 아이들을 돌보는 것으로 여느 때의 투어보다 책임감이 더 커졌다.

워크숍을 진행하면서 내가 가장 어려웠던 건 아이들에게 일일이 다 설명하는 것이었다. 왜 그래야 하는지, 왜 그러면 안 되는 건지 등등 나의 머리를 괴롭히는 질문들은 참 다양했다. 말이 막히면서 생기는 잠깐의 침묵이 가장 견디기 어려웠다. 그럴 땐 도리어 머릿속이 하얘지는데다가 아이들도 느슨해져 통제하기가 어려워졌다. 이런 실수들을 겪으면서 소라와 나는 알게 모르게 워크숍 진행자로서의 유연성과 순발력을 조금씩 배우고 있었다.

나는 창업팀이 꾸려지고 나서부터 참 많은 역할을 맡게 되었다. 기획서를 쓰고, 판을 만드는 역할에서부터 직접 현장을 뛰어다니며 코디네이터가 되고, 심지어 교사가 되어 보기도 했다. 우리는 계속해서 사람을 만나며 질문을 던지고 장소와 친해지며 가이드 이외에 또 다른 방법은 무엇이 있을지 고민을 하며 배우고 성찰한다.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새로운 역할들을 경험하며, 또 다른 일들을 창작해내는 것. 이런 글로벌에게는 어떤 사람도, 어떤 장소도 새롭고 흥미롭다.

글 / 창업을 열심히 준비하고 있는 글로벌 팀장 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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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사 메일 meejisque_91@hot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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