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 사전형식 에세이
관계 (關係)
[명사]
1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계관(係關) .
2 어떤 방면이나 영역에 관련이 있음. 또는 그 방면이나 영역.
3 남녀 간에 성교(性交)를 맺음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
4 어떤 일에 참견을 하거나 주의를 기울임. 또는 그런 참견이나 주의.
5 { ‘관계로’ 꼴로 쓰여} ‘까닭’, ‘때문’의 뜻을 나타낸다.
관계되다 〔-계되-/-게뒈-〕
[동사]『 …에』『 (…과)』 { ‘…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여럿임을 뜻하는 말이 주어로 온다} 연관이 되다. 또는 영향을 미치다.
관계하다 〔-계--/-게--〕
[동사]
━ ⅰ『 …에』
1 ⇒ 관계 .
이번 일에 관계하고 있는 분들은 대체로 어느 부서에 소속된 분들입니까?
그가 출판에 관계하므로 유인물을 책임 맡았습니다.≪김원일, 노을≫
소크라테스는 정치에 관계하기를 원치 않았고 또 국가 공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안병욱, 사색인의 향연≫
2 ⇒ 관계 .
그의 개인적인 사연에 관계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관계해서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거요?
━ ⅱ『 (…과)』 { ‘…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여럿임을 뜻하는 말이 주어로 온다} ⇒ 관계 .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부인과 관계하지 마십시오.
우리 부부는 권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관계하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관계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사람과 나의 어느 지점을 설명할 때. 나는 난해함을 겪는다. 간혹 ‘관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나 시간들로 이루어진 퇴적층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 연인, 가족, 직장동료라는 식으로 관계를 아주 짧고 대중화 시킬 수 있는 단어들이 즐비해있지만 의구심만 들뿐이다.
그들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저런 한 단어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고 누구나 공통되게 쓰일 수 있는 단어로 묶어 공용화할 수 있는 것인지. 간혹 지나가면서, 아니면 하루의 반 정도를 그 생각으로 소비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질 수밖에 없는 그 관계는 그렇게 규정지어서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하는 걸까? 학교에서 같은 반이 되면, 혹은 같은 나이일 때 정말 다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면 모두가 직장동료라고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
당연히 가져야 할 관계라는 것들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일까?
*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가족이 되어버린 그들은 나에게 정말이지 가족인 건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살아간다.
나는 나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이라는 단어 자체도 나에게는 끊임없이 모순이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 조금의 의심도 없다.
나에게는 오빠가 있다. 나는 나의 오빠를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지금도 그것에는 큰 변화가 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와 나의 관계는 이전까지의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가족. 그 소속감과 편안함에 어느 순간에는 배려라는 것을 잊는다.
때는 A.C 2007년 6.25사변일 이었다. 나에게 교통사고가 발생한지 두 달 정도가 지나있던 상황이었고 그때당시 오빠도 나도 지쳐있었다. 봉원사라는 절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여느 날같이 찾아온 그가 갑작스럽게 집 주인 스님에게 소란을 일으켰고 그 난리 속에서 그가 떠난 뒤 나는 울며 용서를 빌어야했다. 6월 24일까지 20여 년간을 참아온 오빠의 무지막지한 행동들로 쌓여있던 것이 폭발한 나는 이틀 만에 집을 알아보고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1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오빠의 소식을 묻거나 궁금해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이 ‘언제까지 이렇게 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3년 이상은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그의 행동들을 무작정 받아들이고 참는 것이 그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간 끊임없이 나의 이야기를 그에게 전했고,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욕구와 그 범위에 대해 그에게 요구해왔었다.
그는 나와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그렇기에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어야하고, 가족이 아닌 다른 친구에게 대하는 만큼이라도 배려가 필요했었다. 가족이여서, 가족이기 때문에 눈감고 넘어가는 부분과 당연시 여기는 그 지점이 끔찍했다. -여기서 그가 얼마나 미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똑똑하며, 유쾌한 사람이라는 기타등등의 이야기는 별 소용이 없다- 내가 요구했던 작은 변화들에 대해 무관심 했던 그에게 그 도피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알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 관계에서 도망쳐서라도 나는 쉬고 싶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좀 더 돌봐야했고 사랑하기 위해서, 급작스럽지만 관계의 변화를 가졌다. 이런 일방적인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관계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은 물론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시간을 가지면서 각자가 서로에게 하는 행동과, 그리고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배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면 했다. 아직 내 안에서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려한다.
*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인지, 정말로 그렇게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 나에게 현실이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이다.
*
누군가 한 명이 없어진다고 하여 그 관계가 끝나는 것인지,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 없었던 일로 하자고 말을 내뱉는다 하여 없었던 것이 될 수 없고, 끊어버리자 하여 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느끼기에 그 관계라는 것은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기도 하고 반대로 단단하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내일이 다르고 꽁꽁 싸매어져 있어 그 속을 알기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반복했었던가.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구차하고 식상한 말을 되새김질 해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관계는 끊을 수 없다. 이것은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이 죽는다 하여도 그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간을 기억할 사람이 없을 뿐이다. 관계는 하루하루 변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까워지든 멀어지든, 어느 방향으로든지 오늘에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친구의 부재를 전해 들었고 그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관계는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감정이 소용돌이치던 열여덟을 함께했었다. 그것이 아주 잠깐이었고 그 뒤에 우리의 관계가 시들다 못해 사라진 듯 희미했어도, 미련스럽게도 그 잠깐의 시간을 부여잡고 말 그대로 미련이 있었기에 그 끊을 놓쳐버린 것이 슬픔으로 물 밀 듯 밀려왔다. 후회다. 후회를 했다. 내가 너에게 그토록 해명하고, 하고 싶어 하던 말을 하지 못한 것이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장면으로 표현됐다.
후회하지 않는다 했고, 미련이 없다고 했다. 그런 조그만 것에 내 온 감정들을 쏟아 부어 집중하는 것이 구질구질하다고 느껴졌다. “그 말을 하지 못 했어”이러면서 눈물 흘리는 것. 3류 드라마로 변질되는 것 같아 싫었다. 아직 글이든 말이든 그 친구와 나의 관계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할 수 없다. 이 이야기에 대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로 말하는 것도, 감정몰입에 맡긴 채 울며불며 하소연 하는 것도 싫다. 그렇지만 그 죽음으로 인하여 나와 그 아이의 관계, 그리고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서 뿌옇게 흐려지는 그 부분에 대한 나의 의문들. 네가 죽는다 하여 우리의 관계가 끝난 것일까? 예전 같지 않고 멀어졌다한들 너의 죽음이 나에게 가벼웠던가? 미련과 한숨, 거짓 그리고 무관심으로 비틀거리던 그 친구와 나의 관계는 모질었던 사월에 수면 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어릴 적에는 사교성이 좋다는 말을 곧잘 들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서로가 만나 그 시간이 즐겁고 좋으면 그만이었고 싸우면 화해하면 됐었고 화해하면 다시 어울리면 됐었다.언제부터 이런 것들이 어려워졌을까? 어떤 누군가와 내가 함께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스무 살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킁킁대며 사족을 못 쓰던 내가,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피하기 시작했다. 관계라는 것이 ‘뇌하수체가 뇌압을 이기지 못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런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그것은 꼭 거쳐야만 하는 과정 같은 것이었다.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변성기나 2차 성징이나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처럼 두렵고 어쩔 줄 모르겠고, 초경의 고통처럼 그냥 ‘아프다’라고만 표현할 수 없는 새로움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성향을 알아가고 그 사람과 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고, 한 명 한 명과 다른 관계를 맺어가고, 두 사람 이외의 사람들을 의식하고, 반갑지 않지만 반가운 척 해야 할 때가 있고, 휴대전화에 저장 된 전화번호부를 관리해주기도 하면서 나 외의 사람들을 인지해갔다. 언제까지 관계에 대한 고민과 아픔을 겪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 할 것이다. 계속 이렇게 관계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에게 노래했으면 좋겠다. 이 감정들이 내 음악에 내 목소리에 묻어나 호흡할 수 있었으면 한다.
서울에 처음 상경하여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사람에게 흥미로워하던 열여덟이 너무 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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