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關係)

[명사]

1 둘 이상의 사람, 사물, 현상 따위가 서로 관련을 맺거나 관련이 있음. 또는 그런 관련. ≒계관(係關) .

2 어떤 방면이나 영역에 관련이 있음. 또는 그 방면이나 영역.

3 남녀 간에 성교(性交)를 맺음을 완곡하게 이르는 말.

4 어떤 일에 참견을 하거나 주의를 기울임. 또는 그런 참견이나 주의.

5 { ‘관계로’ 꼴로 쓰여} ‘까닭’, ‘때문’의 뜻을 나타낸다.


관계되다 〔-계되-/-게뒈-〕
[동사]『 …에』『 (…과)』 { ‘…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여럿임을 뜻하는 말이 주어로 온다} 연관이 되다. 또는 영향을 미치다.


관계하다
〔-계--/-게--〕

[동사]

━ ⅰ『 …에』

1 ⇒ 관계 .

이번 일에 관계하고 있는 분들은 대체로 어느 부서에 소속된 분들입니까?

그가 출판에 관계하므로 유인물을 책임 맡았습니다.≪김원일, 노을≫

소크라테스는 정치에 관계하기를 원치 않았고 또 국가 공직에도 참여하지 않았다.≪안병욱, 사색인의 향연≫

2 ⇒ 관계 .

그의 개인적인 사연에 관계하고 싶지 않다.

당신이 뭔데 남의 일에 관계해서 밤 놔라 대추 놔라 하는 거요?

━ ⅱ『 (…과)』 { ‘…과’가 나타나지 않을 때는 여럿임을 뜻하는 말이 주어로 온다} ⇒ 관계 .

이 약을 복용하는 동안에는 부인과 관계하지 마십시오.

우리 부부는 권태기에 들어서면서부터 관계하는 횟수가 부쩍 줄었다.

 

 

 

 

관계라는 말을 사용할 때. 그 사람과 나의 어느 지점을 설명할 때. 나는 난해함을 겪는다. 간혹 ‘관계’라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상황이나 시간들로 이루어진 퇴적층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친구, 연인, 가족, 직장동료라는 식으로 관계를 아주 짧고 대중화 시킬 수 있는 단어들이 즐비해있지만 의구심만 들뿐이다.
그들과 나의 관계를 어떻게 저런 한 단어로,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고 누구나 공통되게 쓰일 수 있는 단어로 묶어 공용화할 수 있는 것인지. 간혹 지나가면서, 아니면 하루의 반 정도를 그 생각으로 소비하기도 한다. 가족이라는, 태어나면서부터 가질 수밖에 없는 그 관계는 그렇게 규정지어서 죽을 때까지 가져가야 하는 걸까? 학교에서 같은 반이 되면, 혹은 같은 나이일 때 정말 다 친구가 될 수 있는 것일까. 같은 직장에서 근무하면 모두가 직장동료라고 불리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
당연히 가져야 할 관계라는 것들이 성립될 수 있는 것일까?
                                                                  
*
내가 태어남과 동시에 가족이 되어버린 그들은 나에게 정말이지 가족인 건지, 너무나 당연하게 받아들여 누구 하나 죽을 때까지 그렇게, 그런 모습으로 살아간다.
나는 나의 어머니를 사랑한다. 그리고 그녀도 나를 사랑한다. 이것은 사실이다. 이 사실이라는 단어 자체도 나에게는 끊임없이 모순이지만 그녀와 나는 서로 조금의 의심도 없다.
나에게는 오빠가 있다. 나는 나의 오빠를 사랑한다고 말했었다. 지금도 그것에는 큰 변화가 일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와 나의 관계는 이전까지의 관계에서 완전히 벗어나 버렸다.
가족. 그 소속감과 편안함에 어느 순간에는 배려라는 것을 잊는다.
때는 A.C 2007년 6.25사변일 이었다. 나에게 교통사고가 발생한지 두 달 정도가 지나있던 상황이었고 그때당시 오빠도 나도 지쳐있었다. 봉원사라는 절에 살고 있을 때였는데 여느 날같이 찾아온 그가 갑작스럽게 집 주인 스님에게 소란을 일으켰고 그 난리 속에서 그가 떠난 뒤 나는 울며 용서를 빌어야했다. 6월 24일까지 20여 년간을 참아온 오빠의 무지막지한 행동들로 쌓여있던 것이 폭발한 나는 이틀 만에 집을 알아보고 그곳을 떠났다. 그리고 1년 동안 연락하지 않았고, 어느 누구에게도 오빠의 소식을 묻거나 궁금해 하지 않았다. 우리에게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것이 ‘언제까지 이렇게 하자’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으나 적어도 3년 이상은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내가 그의 행동들을 무작정 받아들이고 참는 것이 그를 위한 배려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그간 끊임없이 나의 이야기를 그에게 전했고, 사람으로서 가질 수 있는 기본적인 욕구와 그 범위에 대해 그에게 요구해왔었다.
그는 나와 다른 성향을 지닌 사람이다. 그렇기에 서로의 이야기에 귀 기울였어야하고, 가족이 아닌 다른 친구에게 대하는 만큼이라도 배려가 필요했었다. 가족이여서, 가족이기 때문에 눈감고 넘어가는 부분과 당연시 여기는 그 지점이 끔찍했다. -여기서 그가 얼마나 미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똑똑하며, 유쾌한 사람이라는 기타등등의 이야기는 별 소용이 없다- 내가 요구했던 작은 변화들에 대해 무관심 했던 그에게 그 도피로 하여금 조금이라도 알게 하고 싶었다. 그렇게 그 관계에서 도망쳐서라도 나는 쉬고 싶었다. 나는 나 스스로를 좀 더 돌봐야했고 사랑하기 위해서, 급작스럽지만 관계의 변화를 가졌다. 이런 일방적인 것이 내가 원하는 대로 관계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의심은 물론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이렇게 시간을 가지면서 각자가 서로에게 하는 행동과, 그리고 서로에게 할 수 있는 배려에 대해 생각할 수 있었으면 했다. 아직 내 안에서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 좀 더 시간을 가지고 생각하려한다.
                                                                   
*
편의를 위해 사용하는 것인지, 정말로 그렇게 규정지을 수 있는 것인지. 나에게 현실이라는 것은 참을 수 없는 간지러움이다. 
                                                                    *
누군가 한 명이 없어진다고 하여 그 관계가 끝나는 것인지, 사람의 관계라는 것이 언제까지 지속될 수 있는 것인지... 없었던 일로 하자고 말을 내뱉는다 하여 없었던 것이 될 수 없고, 끊어버리자 하여 끊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지 않은가. 내가 느끼기에 그 관계라는 것은 젤리처럼 말랑말랑하기도 하고 반대로 단단하기도 하다. 그래서 오늘 내일이 다르고 꽁꽁 싸매어져 있어 그 속을 알기 어렵다. 어렵다. 어렵다. 이 말을 얼마나 많이 반복했었던가. 쉬운 것이 어디 있겠느냐고 구차하고 식상한 말을 되새김질 해보지만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다. 내가 느끼기에는 그렇다. 관계는 끊을 수 없다. 이것은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이 죽는다 하여도 그 시간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 시간을 기억할 사람이 없을 뿐이다. 관계는 하루하루 변화하는 것이다. 그것이 가까워지든 멀어지든, 어느 방향으로든지 오늘에서부터 점점 멀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얼마 전 친구의 부재를 전해 들었고 그 친구의 죽음으로 인해 우리의 관계는 무엇이었는지 의문이 들었다. 감정이 소용돌이치던 열여덟을 함께했었다. 그것이 아주 잠깐이었고 그 뒤에 우리의 관계가 시들다 못해 사라진 듯 희미했어도, 미련스럽게도 그 잠깐의 시간을 부여잡고 말 그대로 미련이 있었기에 그 끊을 놓쳐버린 것이 슬픔으로 물 밀 듯 밀려왔다. 후회다. 후회를 했다. 내가 너에게 그토록 해명하고, 하고 싶어 하던 말을 하지 못한 것이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장면으로 표현됐다.
후회하지 않는다 했고, 미련이 없다고 했다. 그런 조그만 것에 내 온 감정들을 쏟아 부어 집중하는 것이 구질구질하다고 느껴졌다. “그 말을 하지 못 했어”이러면서 눈물 흘리는 것. 3류 드라마로 변질되는 것 같아 싫었다. 아직 글이든 말이든 그 친구와 나의 관계에 대해 서술하는 것은 할 수 없다. 이 이야기에 대해 아직 정리되지 않은 채로 말하는 것도, 감정몰입에 맡긴 채 울며불며 하소연 하는 것도 싫다. 그렇지만 그 죽음으로 인하여 나와 그 아이의 관계, 그리고 관계를 맺는 것에 있어서 뿌옇게 흐려지는 그 부분에 대한 나의 의문들. 네가 죽는다 하여 우리의 관계가 끝난 것일까? 예전 같지 않고 멀어졌다한들 너의 죽음이 나에게 가벼웠던가? 미련과 한숨, 거짓 그리고 무관심으로 비틀거리던 그 친구와 나의 관계는 모질었던 사월에 수면 위에서 모습을 감추었다.
                                                                   
*
어릴 적에는 사교성이 좋다는 말을 곧잘 들었다. 나 또한 그렇게 생각했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을 어려워하거나 복잡하게 생각하지 않았었다. 서로가 만나 그 시간이 즐겁고 좋으면 그만이었고 싸우면 화해하면 됐었고 화해하면 다시 어울리면 됐었다.언제부터 이런 것들이 어려워졌을까? 어떤 누군가와 내가 함께 하루하루를 만들어간다는 것이. 스무 살 즈음부터였던 것 같다. 어지간한 ‘사람’이라면 킁킁대며 사족을 못 쓰던 내가, 어지간한 ‘사람’들은 다 피하기 시작했다. 관계라는 것이 ‘뇌하수체가 뇌압을 이기지 못하고 터질 것만 같은 그런 괴로움’으로 다가왔다. 나에게.
그것은 꼭 거쳐야만 하는 과정 같은 것이었다.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찾아오는 변성기나 2차 성징이나 초등학교 입학 통지서처럼 두렵고 어쩔 줄 모르겠고, 초경의 고통처럼 그냥 ‘아프다’라고만 표현할 수 없는 새로움이었다. 나와 다른 사람의 성향을 알아가고 그 사람과 할 수 있는 대화를 나누고, 한 명 한 명과 다른 관계를 맺어가고, 두 사람 이외의 사람들을 의식하고, 반갑지 않지만 반가운 척 해야 할 때가 있고, 휴대전화에 저장 된 전화번호부를 관리해주기도 하면서 나 외의 사람들을 인지해갔다. 언제까지 관계에 대한 고민과 아픔을 겪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너무나 자연스럽게도 나의 젊은 시절을 함께 할 것이다. 계속 이렇게 관계에 대해 고민했으면 좋겠다.
그렇게 이 이야기들을 다른 사람에게 노래했으면 좋겠다. 이 감정들이 내 음악에 내 목소리에 묻어나 호흡할 수 있었으면 한다.
서울에 처음 상경하여 모든 것이 새롭고, 모든 사람에게 흥미로워하던 열여덟이 너무 멀다.

 


글로비시로 스픽하자!

영어권 국가의 사람들과 비영어권 국가 사람들은 서로 어떻게 의사소통을 할까? 지구촌시대 제2의 언어로 꼽히고 있는 영어는 이제 그것을 모국어로 삼지 않는 사람들에게서도 영어 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대다수의 어린이들과 청소년, 성인들이 영어 공부를 위해 많은 시간과 돈을 사용하고 있다. 중고등학교 필수과목 중 하나인 영어시간이면 문법을 비롯해 읽기와 쓰기를 배우고, 대학에 들어가서는 취업을 위해 토익을 준비한다.

하자센터 역시 초창기부터 영어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고,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그렇다면 하자센터에서는 어떤 목적과 맥락을 가지고 영어를 만나고 있을까?


- 아시안 잉글리시에서 영어들로, 그리고 글로비시로

이번 2008년 봄학기가 시작되면서 열린작업장 죽돌들은 '글로비시' 공부를 시작했다. 글로비시란 1500개의 영단어로 효율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기 위해 고안된 언어로, 장 폴 네리에르가 간편하고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의사소통을 위해 쓴 책 「글로비쉬로 말하자」에서 비롯되었다.

하자센터가 올해 들어서면서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느낀 것은 아니다. 국내외에서 보다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하고 경험을 나누기를 원했던 하자 초창기 죽돌들이 하자센터 영어공부의 발단을 마련해, 이후 죽돌들과 센터가 함께 고민하며 해결책을 모색했다. 이는 영어와 관련한 다양한 시도들로 이어진다. ‘아시안 잉글리쉬’, ‘영어들 캠프’, ‘글로비시 프로젝트’로 이어지는 궤적이 그것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혹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영어로, 혹은 한글 섞인 영어로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는가? 이때는 같은 영어임에도 영어권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보다 훨씬 편한데, 이는 아시아 언어권이 한자라는 같은 베이스에서 시작해 다른 갈래로 변화했기 때문이다. '아시안 잉글리시'는 이러한 맥락으로 고민되었다.

이는 하자에서 초대 강의를 맡았던 싱가포르의 ‘관신첸’씨가 언급한 개념으로, 당시 영어에 관심이 있던 많은 죽돌들을 이후 아시안 잉글리시 열풍에 빠지게 했다. 그러나 아시안 잉글리시는 아시아권 사람 사이에서 알아듣기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진 영어인 반면, 영어권 사람들과의 대화에서는 소통이 쉽지 않다는 한계를 지닌다.

아시안 잉글리시에서 나온 고민들은 ‘영어들 캠프’라는 실험으로 그 장을 옮겨 지속되었다. 글로벌학교가 참가한 이 프로젝트에서는 다문화세대인 강사들이 직접 '이주여성'이나 '결혼이민자'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영어가 아니라 영어'들'이라는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2006년 당시 진행된 이 프로젝트에서 글로벌학교 죽돌들은 이용자의 어휘력과 사용 방법 등에 따라 달리 사용되는 다양한 언어들을 경험하고 확인할 수 있었다.

아시안 잉글리시나 영어들 캠프에서는 따로 영단어를 외우거나 문법을 공부하는 것을 요구하지 않았다. ‘콩글리시’도 되고, ‘징글리시’도 되며, 심지어 바디 랭귀지까지 사용하여 의사소통만 가능하면 된다는 전제하에 영어를 배웠다. 거기에 키워드 ‘공부하라’를 접목시킨 것이 바로 ‘글로비시 프로젝트’다. 글로비시 프로젝트는 교재 「글로비쉬로 말하자」를 활용해 ‘spikaja(스픽하자)’의 죽돌들이 직접 강사가 되어 같은 팀 죽돌들에게 글로비시를 강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 스픽하자, 언어의 발견이 기여의 즐거움으로

스픽하자는 ‘하자글로벌프로젝트’의 ‘통역하자’가 글로비시를 하자로 접목시키며 한 학기동안 영어강사로 탈바꿈한 팀으로, 글로비시 프로젝트 외에도 ‘영문 하자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영문 하자투어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폴란드 청소년대표단이 지난 5월 8일 하자센터를 방문했을 때 최초로 시도되었다. 이는 투어에 동행하며 영어 통역을 하는 것에서 더 나아가 스픽하자가 직접 센터 공간에 대해 조사하고 이해한 것들을 투어 참가자들에게 직접 영어로 설명해주는 것을 가리킨다. 이 과정을 통해 스픽하자는 자신들의 언어를 발견하고, 이를 다시 센터에 기여하는 경험을 하고 있다.

글로비시 프로젝트를 위해 스픽하자는 사전학습 차원에서 바이링구얼 강사로부터 글로비시티칭에 대해 배우고 있다. 글로비시 프로젝트의 기획을 맡은 세옹(기획부 판돌)은 “어른이 어린 아이와 대화할 때 쉬운 단어를 골라서 말하듯, 영어 또한 상대방의 여러 특징을 파악해 적당한 단어를 골라 이야기해야 한다. 죽돌들이 글로비시를 배우는 이유는, 1500개의 단어로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이유 외에 언어사용에 있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배려의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다. 이번 학기 이 프로젝트를 통해 영어에 대한 죽돌들의 부담감이 다소나마 줄어들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한 “스픽하자 팀 이외의 죽돌들 간에는 영어 실력의 격차가 큰 편이다. 다음 학기에도 이어서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인데, 지금과 같은 어려움을 해소하기 위해 죽돌 강사를 더 늘릴 계획에 있다."며 보완사항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보완되어야 할 것이 하나 더 있다. 「글로비쉬로 말하자」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예문은 ‘I am a businessman.’이다. 당초에 책이 비즈니스맨들을 위한 목적으로 출판된 것이라 그렇다. 이에 스픽하자는 십대 및 학생용 「글로비쉬로 말하자」의 제작을 고려중이라고 한다. 아울러 저자 초청 워크숍 등도 함께 계획 중이다.



하자센터의 죽돌들은 열심히 영어공부를 한다. 영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이해하기 위해 일정 정도의 시간을 쏟는다. 그러나 이것이 대학에 가기 위해서, 혹은 모든 사람들이 이미 하고 있기 때문은 아니다. 소통 가능한 언어를 찾기 위한 하자의 노력이 현재 글로비시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열린작업장 및 하자센터는 현재 이를 통해 영어공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아가고 있다. 열심히 글로비시를 익힌 죽돌들이 어떤 외국인을 만나더라도 글로비시로 보다 당당하고 보다 쉽게 자신의 작업과 꿈을 설명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으로 보인다.

밤비(열린작업장 주니어)

컨셉- 조용하고 정적인 낭독회.
사람들이 우리의 이야기를 집중해 잘 듣도록 하기 위하여 조용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조용한 음악과 어두운 음악, 자리배치로 컨셉에 맞게한다.

소품- 의자, 무선 마이크, 음악, 스피커, 노트북, 개인 글 종이(형태는 알아서)

무대설치- 어두운 조명(2층이나 주변의 조명은 끄고, 쇼케이스 위에 전등만 켠다), 동그란 형태의 의자배치

순서- 글쓰기 프로젝트 설명, 낭독에 대한 사전 설명(왜 낭독을 하는지), 낭독 (밤비-괭), 마무리 인사.


방법- 영화 예고편 처럼 글을 편집하여, 에피소드라든지 글을 짜집기 하여 짧게 낭독한 후 전시로 다른 여러 글들을 보여준다.

존재의 이유. 동시간적인 또 다른 가능성.

 

봄 학기에는 늦겨울도 초여름도 섞여 있지 않았다. 봄의 춘곤증만 4개월간 지속됐다. 멍하고, 멍하고, 멍하고, 멍했다. 그런데도 무언가를 계속적으로 쓰고 읽고 말했다. 그것이 무엇이었지? 간혹 학습계약서를 읽었었다. 학기 초에 세웠던 계획들은 참으로 번지르르하고 뻔뻔하기 짝이 없었다. 뭐, 지금에 와서야 얘기다. 다시 하자를 다니기로 마음먹고 선택한 것이 글쓰기 프로젝트였다. 그런데 참 신기하게도 알아서 웹진 편집국으로 속해지더니 웹진을 만들어야 한댄다. 웹진? 웹진이 뭐지? 처음 기획회의에 들어앉아서 한 시간 동안 생각하고 있었던 것이 저거다. 영문도 모른 채 웹진을 한다고 기사를 쓰고 사진을 찍고 인터뷰를 하고 이것저것을 했다. 4월까지도 왜 하는지 몰랐다. -처음에 웹진과 On Air, On Going에 접근, 분산된 많은 채널을 연결. 기타 등등을 열심히 설명해주신 세이랜에게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린다- 결국 지금도 웹진을 하고 있다. 말로는 무엇이든 설명할 수 있다. 하자에서는 그래야 한다. 다만 몸이 안 따르고 영문을 모를 뿐이다. 항상 번듯한 이유가 필요하고 그것을 말로 잘 설명해야 한다. 항상 머리가 하얘진다.

 

왜 하자 밖과 안은 다르지? 뭐가 다르지?

 

이중생활을 한다. 하자에서와 그리고 하자 밖을 나서는 순간부터의 경계가 나누어진다. 표정, 말투, 자주 사용하는 단어, 행동 모두가 달라진다. 그냥 드러나는 겉모습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그 전부터 우스갯소리로 이중생활에 관한 이야기는 다들 조금씩 했었던 부분이고- 내가 밖에서 하는 것과 하자에서 하는 것을 연결하지 못하고 또 그러려고 하지 않았던 것. 항상 다르다고 말하는 그것이, 무엇이 다르고 어떻게 다르고 그래서 그것들이 연결 될 수 없는 이유에 대한 고민. 힘들어서 어영부영 안하고 넘어가버린 부분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환경들이 각자의 색깔이나 문화적인 차이로 느껴지는 것이 아니라 인위적으로 경계가 생겨버린 것이다.

 

다르지 않은 것들..글을 쓰고 노래를 하는 것.

 

글 쓰는 것, 영화를 찍어 상영하는 것, 그림을 그려 전시하는 것, 노래하는 것.

이것들은 모두 다르지 않다고 생각했다. 나의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들려주는 것. 나를 표현할 수 있는 여러 방법. 그래서 다르지 않은, 같은 부분이 있다고 생각했다. 노래하는 내가 그렇게 이번 학기 글쓰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자신의 글을 소리 내어 읽고 그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낭독의 즐거움을 알았다. 글을 쓰면서 소리 내어 읽는 모습을 상상하고 그에 어울리는 문장을 써보기도 하면서 설레임을 느끼기도 했다. 내 이야기에 대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내 이야기에 대한 구상을 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글을 읽고, 쓰는 즐거움을 조금씩 알아갔다. 파스칼 키냐르가 이야기 했었던 독자와 작가는 다르지 않고, 글을 쓰는 것과 읽는 것은 다르지 않다고 이야기 했던 것을 조금은 느낀 걸까.

글을 쓰면서 같은 부분에서 맴돌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 정작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부분이나, 내가 끄집어내야 할 부분에서는 입을 다물고 그 주변 이야기만 줄줄 늘어놓고 있었다. 모모와 밤비가 내 글을 읽으면서‘모르겠다. 너무 돌려 말한다.’며 많은 질문을 했었다. ‘이 부분에 대한 설명을 더 해 달라’는 말을 엄청 많이 들었던 것 같다. 그러면 난 또 아니라며 ‘괭의 변’을 줄줄 늘어놓았었다.

점점 진심을 이야기하는 것을 무서워한다. 현실을 직시하고 진실을 이야기하는 것이 두렵다. -물론 현실과 사실이라는 단어에 의구심을 품고 있으며 모순을 느낄 때가 많다-

스무 살이 되었을 그 즈음부터 그랬던 것 같다. 글 뿐 아니라 사람을 만나 말을 할 때에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것을 하기가 어렵다. 점점 더 나의 이야기를 드러내는 것이 어렵다.

감상적이고 추상적인 글이 아니라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명료한 문장을 구사하고 싶었다. 감상적이고 추상적 일거면 차라리 솔직하게 드러내졌으면 했다. 내 글은 이도저도 아니다. 글쓰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이런 고민과 생각을 많이 했고, 모모와 밤비의 생각들을 들으면서 조절해나가는 부분이 있었다고 본다. 내가 보는 내 글과 다른 사람이 보는 내 글에 대한 생각들을 알게 되면서 좀 더 구체적인 고민을 했었다. 어떤 단어를 쓸 것인지,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말하고자 하는 것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지에 대한 생각들을 했다.

그렇지만 다른 이에게 내 속사정까지 줄줄 늘어놓고 싶지 않다. -일종의 글을 쓸 때의 태도문제이기도하다. 여러 부분에서 착각하고 있다. 세밀하게 글을 쓴다는 것이 속사정을 줄줄 늘어놓는 것은 아닌데- 싫은 것은 싫은 거다. 어떻게 더 설명할 수가 없다.

 

다르지 않다고 말하지만 다른 것들. 그래서 어려웠던 일.

 

초등학교 때 가족신문, 그 이후로 기사를 써보았던가.. 나에게 자아라는 것과 정체성이라는 것이 성립되고 나서의 기사작성과, 취재와, 인터뷰와, 청탁과, 칼럼작성은 낯설고, 그리고 지긋지긋하게 어려웠다. 기사 한 번 쓰는데 모모를 몇 번 찾아갔는지 모르겠다. 찍는 사진마다 흔들리거나 내용을 담지 못해 사용할 수 없는 사진들이 훨씬 많았고 약속한 기한을 못 지키기도 하고, 편집자의 편지를 15번은 다시 쓰면서, 그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었다. 한 번은 청탁을 부탁하러 찾아가서 청탁메일을 보내겠다는 의사전달을 하였는데, 상대방은 내가 청탁하는 과정이 매우 서투르고 잘못되었다고 말했다. 나름 준비하고 찾아갔다 생각하였고, 청탁메일을 상세하게 잘 써서 보내면 된다고, 어렵지 않게 생각했었다.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부탁하러 갈 때의 태도는 내가 무슨 말을 할 것인지 여러 번 고민해야 하고 잘 정리해서 가야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에 와서 보면 미숙한 면이 많았다. 아무런 준비 없이 회의에 참여하기도 하여 회의시간의 맥이 다 빠져버리기도 했었고 기간 내에 준비하지 못해 책임감에 대해, 방법적인 것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했었다.

그러면서 조금씩 알아갔던 것 같다. 다른 사람에게 글을 청탁하는 방법과, 기사를 쓰는 방법과 그것들을 웹진에 담는 방법들을 배웠다. 객관적으로 사실을 전달하고 사진으로 이야기를 하고 어떻게 하면 좀 더 효과적으로 사건들을 시각화할 수 있을지를 고민했다. 이것들을 모두, 내 몸이 익숙하게끔 학습하지는 못했다. 한 학기동안 다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면 거짓말이고, 조금씩 알아갔다고 말했던 저 문장이 가깝겠다. ‘경험’이 전부 학습이 될 순 없겠지? 그렇지만 모르지 않으니까. 나는 웹진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이 많으니까..

 

또 다르게 말하기.

 

일상적인 회화를 할 수 있을 정도로 일어를 배우고 싶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아주 기초적인 것부터 배워야하는 사람이 많았다. 기본적으로 히라가나와 가타가나는 준비해서 들어오자고 했었건만 첫 시간, 그리고 그 다음 수업이 되어도 준비하지 않는 사람이 많아 수업방향이 바뀌었다. 나는 또 다시 처음부터 배워야 했다. 수학공부 한 번 해보려고 펼친 수학정석 책에서 첫 장 ‘집합’만 죽어라 공부하고 덮어 버리는 그 기분. 오랜만에 만끽했다. 결국 일상적인 회화의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채 ‘처음 뵙겠습니다.’와 ‘가타가나 받아쓰기’만 하다가 일어가 끝났다. 10월에 일본에 가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래서 느린새에게 개인과외를 받기로 했고, 이제 정말 파바박 움직일 때가 되었다.

Optical English를 시작하면서는 짧은 문장이라도 자신 있게 말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얼마 전 홍천 뮤직페스티벌 러브캠프에서 만난 외국인과 즐겁게 대화했다. 이제 외국인과 말하는 것이 두렵지 않다. 중간에 그만두게 된 것이 여러모로 찝찝하지만 잠깐의 시간들이 나에게 자신감을 주었다.

 

안다는 것과 산다는 것의 깊이. 앎, 그리고 삶.

 

‘청소년을 위한 하자인문학2: 니하우 베이징’

시기에 맞는 주제였다. 베이징 올림픽으로 중국에 많은 관심과 시선이 집중된 지금. 자연스럽게 중국에 대한 여러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는 기회였다. 한 번의 수업으로만 끝나는 것이 아니라 그 후에 인문학 카페로 연결되었고 그 시간들로 일상의 화두를 건드리고 건져갈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다루어진 주제들이 많아서 혼란을 겪거나 받아들이기 어렵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한 부분에 대해 한 학기동안 깊이 공부하는 방법이 있겠고, 그리고 여러 부분에 대해 조금씩 던져 놓으면 스스로 그것을 알아가고 학습하는 방법이 있겠다. 인문학2는 후자의 방법이 있었지 않나싶다. 그렇지만 아직 인문학 수업을 들으면서 중국에 거대한 관심이 생기거나, 다루어졌던 주제들이 더 알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 스스로 알아보고 공부하는 방법을 선택하지는 않았다. 좀 더 나의 작업과 언어들이 연결되는 부분들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 얼마 전 인문학 리뷰모임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나의 작업. 이 부분은 하자에서의 작업 부분이다. 글쓰기 프로젝트나 웹진을 하면서 인문학은 연결되는 부분이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개인적으로 내가 하고 있는 음악적인 부분에서는, ‘무슨 수업을 들었더니 이것이 이렇게 연결되었어!’ 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다만 중국 영화에 관련된 수업을 듣고 예전에 보았던 패왕별희를 꺼내어 다시 보았고, 그리고 그 느낌이 내 노래에 묻어날 수 있었던 것. 인문학 수업이나 인문학 카페에서 사람들과 나눈 이야기들이 내 생각이 되어 그것들이 음악으로 만들어 질 수 있는 것. 그 단어와 문장들이 노래로 불리어지는 것. 이런 것들을 말하면서 인문학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라고 말 할 수 있겠지?

개인적인 인문학을 통해 현실을 읽어내고, 움직이면서 생각하고, 자신의 이야기를 꺼내어 놓으며 개념들을 배워가는.

인문학을 통해 일상의 대화 내용, 방법들을 바꾸었으면 좋겠다. 논쟁이 아닌 이야기를 나누는 토론을 할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학기 전체적인 그림을 그리면서 생각했던 것이 무리하게 욕심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만큼, 해야 하는 일은 꼭 하는 것이었다. 일을 추진해서 마무리하는 기본훈련과 전반적인 흐름을 잘 읽어가는 것. 이런 것들을 터득해가길 바랬다. 주변 상황에 휘둘려 그 상황들을 확대해 어느 순간 나 자신을 스스로 불쌍한 인간을 만들어버리고 합리화 시킨다든지 불필요한 것에 매달리고 중요한 사실을 똑바로 볼 줄 모르는 것들. 이것들이 고쳐졌다기보다는 그런 말들이 생각나지 않았다. 뭐, 그러지 않았다는 거겠지. -엄청 그랬었다-

내가 어려운 단어 몇 개를 더 알게 되고 그래서 죽여주는 기사를 작성한다든지, 혹은 (공연단이나 잠시 촌닭을 하던 때에) 기타나 드럼이나 잠베 연주나 기타 등등의 테크닉이 눈에 띄게 늘거나, 이런 눈에 보이는 자질구레한 스킬을 배운 것이 아니다. 나는 나를 또박또박 말하는 것을 배웠다. 나의 생각과 그리고 다른 사람의 생각에 대해 같이 이야기 하는 것을 알았다. 다른 사람과 함께 일한다는 것에는 책임감이 필요하고 약속이 중요하고 그리고 어렵지만 즐거운 일이라는 것을 웹진과 글쓰기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알았다. 그리고 이런 것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이것은 내가 음악을 한다고 해서 배워야 하는, 그래서 직접적으로 도움이 되는 화성학을 배운 것하고 같이 비교될 수 없다. 내가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수 있는 것, 그것을 음악으로 표현 할 수 있는 것. 나를 단단하게 만든 저런 학습들이 나를, 나의 생각을 다른 사람에게 이야기 할 수 있게 했다.

 

입학할 때에는 -아..까마득하다. 도대체 언젠지- 무언가 활활 타오르고 있었던 것 같다. 어떤 먼 미래였을까? 가까운 내일은 잘 보이지 않았다. 멀고 먼 미래를 즐겁게 상상했다. 그래서 주니어수료나 졸업 같은 것은 현실감 없는 이야기였었다. 주니어 4학기 정도부터 욕심이 생겼다. 어쩌면 나에게 주니어수료라는 과정이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생각도 했다. 5학기 째에 1년을 쉬면서 점점 모호해졌다. 그래서 이번 봄 학기를 시작하면서 내가 왜 주니어수료를 하고 싶은 것인지 나에게 수료가 왜 필요한지. 이 질문들이 그 비어있던 시간들을 지내고 벅차오른 설레임 속에 고이 묻힌 채 얼렁뚱땅 여기까지 온 것일까?

무엇을 학습했냐는 모모의 질문에 머릿속에 문장은 가득한데 단어가 혀끝에서만 맴돌았다.

내가 무엇을 학습했는지 확신이 없어서? 아니면, 학습한 것이 없어서? 아니면 그 학습이라는 단어에 주눅이 들었던가? 나는 내가 하자에 있는 4년 동안, 겪었던 그 많은 시간들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고 생각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생각, 말, 개념 이런 이야기들이 하자에서 배운 것들로 나를 구성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 질문에 이런 모든 것들이 뿌옇게 흐려졌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이 뭐지? 횡설수설...

 

다른 방식의 대화가 필요하다. 그럼, 하자에서의 대화방식은 무엇이고, 그 다른 방식의 대화라는 것은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 정말이지 하자에서는 말을 잘해야 하고, 모든 것에는 이유가 있어야 하고, 그 이유들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기 위하여 글을 논리정연하게 써야하는 것에 지친다. 오늘 리뷰모임에서 나왔던 문장 하나가 머리에서 계속 울린다. ‘긴 대화가 안 되면 떠나야지.’-말을 잘해야 하는 시점이지만 앞, 뒤 설명은 생략 한다-

내가 하고 싶어 하는 음악, 노래에 관련된 생각만 하고 싶다. 그것에 대한 공부를 하고, 음악을 듣고, 연습을 하고, 공연을 준비하면서 좀 더 여러 사람, 많은 사람에게 내 노래를 들려주고 싶고 그것에 대해 골몰하고 싶다. 이것이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슬럼프를 겪었다. 슬럼프에 대한 정의가 뭐지? 일단 나는 집에 쳐박혀서 음악도 듣지 않았고 만들지도 못했고 노래도 못했고 먹지 않았고 말하지 않았다.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두려웠고 간혹 ‘아..나 노래해야 하는데..’라는 문장이 떠올랐으나 그렇게 하지 못했고 모든 것이 귀찮고 허망하게 느껴져 집구석에서 빌빌대는 것이 슬럼프라면 내가 그랬다. 그런 나를 움직이게 해줬고 그 기본적인 욕구를 하자에 다니면서 느끼게 됐다. 불은 지펴진 것 같다. 마른 장작이 필요하다. 엄마 손 잡고 문방구를 지나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게임기를 보고 침 질질 흘리며 사달라고 조르는, 그런 우발적인 흥분상태는 아니다. 그런 것 정도는 이제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지금의 나는 약간은 조급하다. 남의 다리 긁으면서 시원한 척 하고 있기에는 얼마 있지도 않은 양심에 털 하나가 쫑긋 솟는다. 이제 첨벙 뛰어들고 싶다.

 

요즘에 내가, 자꾸 나에게 의문이 생긴다. 질문을 던지지만 답은 돌아오지 않는다.

공간- 쇼케이스

무대설치- 의자를 쭉 배치하고, 조명을 어둡게 한다. 주변에 여러 소품을 두지 않고 깨끗한 인테리어.

소품- 마이크, 책상, 의자, 글을 끼워 넣고 읽을 파일

배경음악- 가사가 없는 조용한 음악으로

순서- 밤비- 괭 (괭의 글은 수정을 거친 뒤 상세한 순서를 정한다)

컨셉- 조용하고 정적인 낭독회.

 

각자가 쇼하자를 어떻게 하면 효과적으로 진행하고 글을 낭독할 것인지. 원하는 방향에 대해서 좀 더 깊게 고민한 뒤 다시 이야기 하면서 조율하기로 했습니다.

글로비시로 스픽하자!

 

영어권 나라의 사람들과 영어권이 아닌 나라의 사람들은 어떻게 서로 의사소통을 할까? 영어는 이제 지구촌시대의 제 2의 언어로 꼽히고 있는 추세이다.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어도 영어를 배운다는 것이다. 하자센터도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도 이전부터 지속되어온 영어 붐으로 대다수의 청소년과 성인, 심지어 아이들마저도 영어를 배우고 있다. 영어가 필수과목이 되어 문법을 배우고,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토익을 공부한다.

하자센터는 센터 초창기 때부터 영어에 대한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하자센터 또한 대학에 가기 위한 영어를 하는 것일까?

 

- 아시아에서 영어들로, 그리고 글로비시로

이번 2008년도 열린작업장 봄학기의 죽돌들은 모두 ‘글로비시’ 공부에 매진하고 있다. ‘글로비시’란, 영어 안에서 1500개의 단어로 효율적인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언어의 도구이다. 장 폴 네리에르는 언어에 대한 고민을 하던 도중 ‘실용적이고 간편한, 세계 어디서나 통용되는 의사소통’을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해 ‘글로비쉬로 말하자’라는 책을 지었다.

하자센터는 이번에 갑작스럽게 죽돌들에게 영어공부의 필요성을 알린 것은 아니다. 하자 초창기의 죽돌들은 ‘소통’에 대한 관심이 많았고, 국내에서만이 아니라 국외로 나가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소통을 갈망했고, 영국으로 여행을 간 적이 있다. 그들은 영국으로 가 자신들의 이야기를 하고, 영국의 사람들에게 질문도 하고, 대답도 받았다. 그러나 그것에서 멈추는 게 아니라 더 많은 것을 알고 싶었고, 이야기하고 싶어 했다. 영국의 사람들과 ‘소통’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하지 못해 아쉬움을 갖고 센터로 돌아왔다. 서로의 언어가 같았다면, 죽돌들이 영어를 유창하게 잘 했다면 만족한 채 돌아왔을 것이다. 이 이야기로 시작하여 죽돌들은 영어에 대한 고민을 점점 더 많이 하게 되었고, 센터 또한 영어에 관심을 갖고 계속해서 영어에 대한 고민을 풀어나가기 위해 영어와 관련된 많은 프로젝트를 개설해나갔다. 그 프로젝트들 중 가장 중심된 프로젝트는 ‘아시안 잉글리시’, ‘영어들 캠프’, ‘글로비시 프로젝트’이다.

혹 일본인이나 중국인과 영어로, 혹은 한글 섞인 영어로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미국인과 영어로 대화를 해본 적이 있는가? 아시아의 언어는 한자로부터 시작해 변화했기 때문에, 한자로 된 단어는 서로 어느 정도 이해하고, 같은 피부색을 가진 인종이라 영어로 말하기에 훨씬 편할 것이다. 대부분 영어를 모국어나 제 2의 외국어로 쓰지 않기 때문에 쉽고 한정된 단어들로 어설프게나마 문장을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어권의 사람에게 말을 할 때에는 그것이 쉽지 않아진다. 자신의 모국어로 방대한 단어들을 사용해 어려운 문장을 만든다면, 네이티브 스피커가 아닌 이상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또한 영어권 사람도 아시아인의 말을 잘 알아듣지 못할 것이다. 하자 초창기 센터에서 강의를 한 ‘’씨는 죽돌들에게 ‘아시안 잉글리시’에 대한 언급을 했다. ‘아시안 잉글리시’는 아시아 사람들끼리 알아들을 수 있는 쉬운 단어들로 이루어진 것으로, 아시아 사람들은 서로 소통이 편리하게 이루어질 수 있는 것이다. 강의를 들은 죽돌들은 ‘아시안 잉글리시’를 다른 죽돌들에게 전파시켰고, 영어에 관심 있던 죽돌들은 ‘아시안 잉글리시’ 열풍에 빠졌다.

‘아시안 잉글리시’에서 고민들을 더해 만들어진 프로젝트로 ‘영어들 캠프’가 있다. ‘영어들 캠프’는 2006년 당시의 사회적 이슈와 영어를 함께 섞어 고민하기 위해 만들어진 프로젝트로, 글로벌학교의 죽돌들이 참여했다. 단순히 영어가 아닌 ‘영어들’인 이유는, 영어라는 언어는 하나지만, 사용 방법이나 이용자의 어휘력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기 때문이다. ‘영어들 캠프’에선 당시 사회적 이슈였던 ‘이주여성’이나 ‘결혼 이민자’ 같은 ‘다문화세대’들을 강사로 초빙하여 그들에게 영어를 배우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다문화’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 프로젝트의 영항으로 글로벌학교는 ‘다문화’라는 키워드에 대한 많은 고민을 하고 있다.

‘아시안 잉글리시’나 ‘영어들 캠프’에선 영어 단어를 외우거나 문법을 공부하지 않았다. ‘콩글리시’도 되고, ‘징글리시’도 되며, 심지어 바디랭귀지도 허락하여 ‘의사소통’만 가능하면 된다는 전제하에 영어를 배운 것이다. 그리고 그것에서 발전하여 ‘공부하라’라는 키워드를 접목시킨 것이 ‘글로비시 프로젝트’이다. ‘글로비시 프로젝트’는 ‘하자글로벌프로젝트’안에 있는 것으로, ‘spikaja(스픽하자)’의 죽돌들이 강사가 되어 같은 팀의 죽돌들에게 ‘글로비쉬로 말하자’ 책을 교재로 사용하여 ‘글로비시’를 알려주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 영어에 대한 지속적인 고민, 활용하라. 스픽하자.

앞서 언급한 ‘spikaja(스픽하자)’는 ‘하자글로벌프로젝트’의 ‘통역하자’가 글로비시를 하자로 접목시키며 한 학기동안 영어강사로 탈바꿈한 팀이다. 이들은 ‘글로비시 프로젝트’ 외에도 ‘영문하자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영문하자투어’는 보건복지가족부의 초청으로 한국을 방문한 폴란드 청소년대표단이 5월 8일 하자센터를 방문했을 때 최초로 시도된 것으로, ‘하자투어’를 할 때 한국말을 영어로 그냥 통역 하는 게 아닌, 스픽하자가 직접 센터 공간에 대한 이해와 조사를 통해 알아낸 것을 자신들이 직접 영어로 설명해주는 것이다. 스픽하자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들이 갖고 있던 언어를 센터에 기여하고, 공간에 대한 공부를 통해 외국인에게 알려줌으로서 자신들의 언어를 발견해내고 있다.

스픽하자의 멤버 리사(글로벌학교 인턴)는 “‘하자글로벌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당시 수업 방식이 일반학교와 다를 바 없었다. 창의적인 학습을 하기 위해 센터에 찾아온 죽돌들은 ‘일반학교랑 하자랑 뭐가 다르지?’라는 평가를 많이 했다. 그 때부터 나는 영어를 다른 방식으로 죽돌들에게 알려주길 원해왔다. 새로운 영어 프로젝트인 ‘글로비시 프로젝트’가 기획되었고, ‘통역하자’의 몇몇 멤버는 자연스럽게 스픽하자에 들어가 ‘글로비시 프로젝트’를 진행하기 시작했다.”라고 전했다.

‘글로비시 프로젝트’의 사전 공부를 위해 스픽하자는 ‘바이링구얼’ 강사에게 ‘글로비시’를 가르치는 방법을 배우고 있다. ‘글로비시 프로젝트’를 기획한 세용(기획부 판돌)은 “‘글로비시 프로젝트’가 3주정도 지난 후에 20대 판돌들도 스픽하자에 참가했다. 나와 단지(열린작업장 판돌)도 그 때 참여해 같이 공부를 했고, 20대 판돌과는 매주 한 번씩 만나 수업을 했다. 진행 중 발견했던 ‘글로비시 프로젝트’의 가장 큰 문제점은 죽돌에게서 나타났는데, 스픽하자의 죽돌들은 서로 영어가 모두 높은 수준으로 비슷했던 반면에, 다른 죽돌들은 영어실력에선 스픽하자와 격차가 컸다. 그래서 스픽하자는 그 격차로 수업 수준을 맞추기에 다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였다. 다음 학기에도 ‘글로비시 프로젝트’를 진행할 예정인데, 이러한 모습들을 바탕으로 하여 죽돌 강사를 더 늘리는 등의 해결 방법을 찾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 글로비시, 가지를 뻗어나가자.

‘글로비시 프로젝트’는 아직 보완해야 할 점이 많이 있다. ‘글로비쉬로 말하자’ 책에는 첫 번째로 등장하는 예문부터 ‘I am a businessman.’일 정도로 소위 말하는 ‘businessman’을 위한 예문이 많이 있어, 죽돌들에겐 다소 불필요한 정보가 많았다. 그래서 스픽하자는 ‘글로비쉬로 말하자’ 책의 예문과 정보 등을 센터 죽돌들에게 맞게 재제작하자는 이야기를 하고 있으며, 이번 여름 안에 끝낼 계획이라고 한다. 그리고 책을 만든 후 저자 ‘장 폴 네리에르’씨를 센터로 초청해 워크숍 형식의 이벤트를 열 계획에 있다고 한다.

세옹은 “어른이 어린 아이와 대화할 때 쉬운 단어를 골라서 말하듯, 영어 또한 상대방의 여러 특징을 파악해 적당한 단어를 골라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죽돌들이 ‘글로비시’를 배우는 이유는, 1500개의 단어로 쉽게 소통할 수 있다는 이유 외에 언어사용에 있어 우리가 필요로 하는 ‘배려의 능력’을 키우기 위함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번 학기 동안 이 프로젝트를 지켜보며 영어에 대한 죽돌들의 부담감이 줄어들었다는 것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하자센터의 죽돌들은 영어단어를 외우고, 문법을 공부하는 등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그것이 대학을 가기 위한 준비과정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다. ‘글로비시 프로젝트’가 단순히 ‘모든 사람이 영어공부를 하니까’라는 이유로 기획된 것이 아니라, 이전부터 지속되어온 고민들 속에서 찾아낸 것이라 하듯, 영어공부 또한 ‘대학을 가기 위함’이라는 대답만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이다. 하자센터는 영어공부에 대한 새로운 답을 찾기 위해 ‘글로비시 프로젝트’ 같은 것을 여러 번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답을 찾아 열심히 ‘글로비시’ 공부를 한 죽돌들이 어떤 인종의 외국인을 만나도 ‘글로비시’로 당당하게, 이해가 쉽게 자신의 작업과 작업장을 설명할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아 올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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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진 "하자로"에 사진 같은 걸 넣는 편집은 제가 할 거고, 링크 주소도 다시 넣어야 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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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젝트명: 글쓰기 프로젝트

-매주 수요일 오전시간에 프로젝트를 진행. 각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글로 표현하고자 각자 자유로운 형식의 글을 썼다. 프로젝트 시간에는 개인 글들을 소리 내어 낭독하고 그에 대해 함께 이야기한다. 서로 코멘트를 주고받기도 하고 소리를 통해 글을 전달하고 전달받을 때 맛보는 낯선 감각을 즐긴다.

 

진행기간: 2008년 4월 2일 ~ 2008년 6월 25일

 

장소: 208호

 

참여인원 및 역할분담:

판돌staff - 모모

죽돌staff - 괭, 밤비, 온달(도중하차)

 

세부일정: 수요일 오전 프로젝트 시간마다 개인 작업물들을 낭독, 합평.

 

기록방식&결과물: 프로젝트 자체 시간에 대한 기록은 하지 않았다. 결과물은 글쓰기 팀블로그 카테고리 중 ‘작업방’에 글이 올라와 있다. 괭은 사전형식의 에세이, 밤비는 ‘비평’에 대한 설명적 글쓰기를 하였다.

링크- http://findroad.haja.net/category/2008년%20봄학기/작업방

 

전체평가: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각자 개인들이 원하는 기대치들이 있었는데, 공통적인 부분은 좀 더 객관적이고 사실적으로 글을 쓰고 그렇게 읽혀지기를 원한다는 점이었다. 어떤 글을 쓸 것인지에 대해 기획서를 작성했고 각자가 원하는 글을 썼다. 그리고 그것들을 프로젝트 시간에 소리 내어 읽고 서로 코멘트하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여러 가지를 알게 되었다. 혼자만 읽는 글이 아니라, 나 외에 다른 사람과 함께 읽는 것에 대해 시선을 넓혀가고 내 글에 대한 나의 생각과,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게 되고 알게 되면서 어떻게 해야 좀 더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는지에 대해 학습했다.

학기 초에 제안됐었던 야외수업 이라든지 특강 같은 것들은 웹진의 바쁨 속에 고이고이 잊혀져갔고, 3월은 웹진 때문에 아예 4월에 프로젝트가 시작되기도 하였다. 각자 개인 글들이 잘 준비되지도 않았다. 팀원 중 한명은 행적을 감춰 기억 속에 잊혀갔고 나머지 둘은 웹진의 기사를 쓴답시고 항상 노트북 앞에 앉아있었으나 생산성 있는 글들은 온데간데없이 같은 부분에서 허우적대는 연속의 시간들이 반복됐다. 그렇지만 각자의 이야기를 풀어낼 수 있는 것에 대해 해소되는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된다. 혼자만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내 이야기를 다른 사람에게 글과 음성으로 전달했다. 초반에 글쓰기프로젝트 시간은 웹진의 연속이라 생각했지만 중반부터 지금까지는 나의 이야기에 대한 고민을 함께 나누는 프로젝트였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심심한 프로젝트였다. ‘일주일간 자신의 글을 준비하고 수요일에 낭독을 하고 서로 코멘트 한다.’ 말고는 없었다. 좀 더 활동적으로 이것저것을 경험했으면 했는데 여유가 없었던 것일까? 좀 더 세밀하게 시간 분배를 잘 해서 재밌는 것들을 함께 했으면 한다. 초반 프로젝트 계획서에 있듯이 헌책방을 뒤지기도 하고 특강을 듣기도 하고 소풍을 다니기도 하면서 책상에 앉아 글만 그적거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보고, 듣고, 만지는 것들을 글로 풀어낼 수 있었으면 한다.

 

에피소드: 3월부터 모모의 소풍제안이 있었다. 우리 모두 찬성했고 각자의 역할분담까지 끝난 상태였다. 모모는 파라솔, 밤비는 음료수, 괭은 소풍가방에 샌드위치였는데 아직 떠나지 못했다. 결국, 소풍계획은 에피소드로만 끝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만남과 소통을 위한 우리의 언어


창문 너머로 빗줄기가 건물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빗물 덮인 도로 위를 가르고 자동차들이 달리는 소리, 바람이 나뭇잎과 천막들을 흔드는 소리가 아주 똑똑하게 들려오는 걸 보면 정말로 장마가 시작된 모양입니다. 장마라니,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듭니다. 벌써 6월 중순… 여러 가지로 마무리해야 할 일들, 다음 단계로의 이행을 위해 분류하고 갈무리할 것들이 한꺼번에 떠오릅니다. 사정상 발송이 늦춰진 이번 <하자로> 역시 이 목록에 포함됩니다. 소식지의 특성상 정확한 내용 전달만큼이나 중요한 게 제 날짜 지키는 일인데, 이 부분에서 약속을 제대로 이행하지 못해 죄송하단 말씀부터 드립니다. 그간 하자센터 죽돌들이 편집부로 활동하면서 겪었던 시행착오와 그에 따른 많은 고민, 논의가 가장 많고 짙었던 까닭에 일정이 늦춰지게 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더 긴 이야기를 늘어놓기보다는 한 단계 더 나아간 다음 달 웹진을 기약하고자 합니다. 한 학기동안 <하자로>의 편집인이자 기자로 활동해온 죽돌들의 학습 성과가 가을학기가 시작될 즈음이면 조금씩 나타나 웹진이라는 결과물에서도 스며 나오게 될 것을 저 역시 기쁘게 기대하고 있으니까요.

커버 페이지에서부터 느껴지겠지만, 이번 달 웹진에서는 '글로비시(globish)'에 초점을 맞추어 이야기를 전달하려 합니다. 글로비시는 Global English의 줄임말로 세계인과 소통 가능한 언어를 뜻하는 조어입니다.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면서 중고등학교와 학원가에 영어돌풍이 불어 닥치고 있는 실정이지만, 실상 우리가 어떠한 언어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점수와 자격증으로 대변되는 자신의 커리어와 개런티를 쌓기 위함이 아니라 실제의 삶에서 보다 많이 이해하고 보다 덜 오해하며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기 위해서라고 여겨집니다. 때문에, 지식과 정보가 세계적으로 빠르게 순환하고 있고, 다양한 언어를 가진 다양한 문화적 배경의 사람들과 어디에서라도 맞닥뜨리게 되는 현시대에서 글로비시는 어쩌면 최소한의 준비이자 자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십대 문화작업자들이 바글거리는 하자센터 안에서 진행되는 글로비시는 구체적으로 어떤 계획과 프로그램, 미션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요? 자세한 이야기는 기사 "글로비시로 스픽하자!'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근래 지속되어온 화두이기도 하지만 최근 들어 '언어'에 대한 고민을 이래저래 많이 하게 됩니다. 하자센터 내 열린작업장에서 주니어들과 글쓰기 작업을 함께 하는 탓도 있고, 봄학기동안 주니어들 사이에서 등장한 화제 중 하나가 '비평'이었던 탓도 있겠지요. 가깝게는 매일같이 광화문에 모여드는 촛불 든 인파와 거기에 아랑곳 않고 오히려 불에 기름 끼얹는 발언만 일삼는 국회 때문이기도 합니다. 다음 커뮤니케이션의 '아고라 광장'에는 끊임없이 말 말 말들이 올라오고 있는데 그 때문에 '아고라 폐인'이라는 말도 새로 등장했다더군요. 마르코스가 "우리의 말이 우리의 무기"라고 한 것은 특정 상황 속의 특정 집단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닐 것입니다.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심화하고, 전달하고자 할 때 우리가 사용하게 되는 저 언어라는 도구를 제대로 사용하기 위한 노력에 지금 우리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관심을 투여하고 있을까요? 제대로 쓰인 말 하나 때문에 오해가 풀리고, 끝내 하지 못한 말 때문에 속앓이를 해본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을 것입니다.

냉정하게 평가해볼 때 <하자로>는 아직까지는 그렇게 효과적인 언어로 소식을 전달하고 있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것이 말을 건네기 위한 시도라는 것, 우리의 옆과 뒤를 그냥 스쳐가 버릴지 모를 수많은 정보들을 수집하고 분류해 하나의 이야기로 꾸며 많은 이들에게 전달하고자 하는 노력이 여기 있다는 것을 자신 있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하자센터에서 자원활동가로서 프랑스어를 강의하고 계시는 '빠삐'와의 만남을 통해 '기여'의 의미가 무엇인지 함께 나누고자 했고, 하자작업장학교 길찾기 과정 빅 프로젝트인 '걸어서 바다까지'의 추억과 에피소드를 통해 걸으면서 만나는 나와 동료와 자연에 대한 사색을 함께 하고자 했습니다. 또한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면서 멋진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주식회사 노리단이 들려주는 삶의 은유, 카툰으로 만나는 니체의 명언까지, 편집부에서 긴긴 날 고심하고 컴퓨터와 싸우며 만들어낸 결과물을 이제 여러분에게 넘깁니다. 다음 달에는 더욱 정제된 언어와 더욱 풍부하고 흥미로운 이야기를 준비해 만나러 가겠다는 기약과 함께.

모모(웹진 하자로 담당 판돌)

어디 올려야 할까요. 으흥흥

2008년도 봄학기 열린작업장 글쓰기팀 밤비

 

병든 사슴아 힘내라

 

이번 한 학기는 길찾기 때와는 사뭇 다르게 나의 게으름을 제대로 표출한 시기였다. 길찾기 때도 매우 게을렀지만, 주니어 1학기를 시작한 이후로는 확실히 게을러졌다. 문제점은 어디에 있었을까? 가까운 곳에서 자취는 하는 것? 본래 잠이 많은 것? 아니면 피곤해서? 사실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것 같다.

 

- ON Going_Webzine ‘HAJARO’

‘ON going’에서 웹진 ‘하자로’의 편집국을 처음 맡았을 때, 처음 판돌들과 회의를 했을 땐 두근거려서 아무것도 묻지 않았다. 내가 진정 어떠한 각오로,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떤 행동을 해야 했는지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경험’에 민감하고, ‘첫 경험’엔 더욱 민감하고 들뜨는 내가 과연 ‘책임감’이니, ‘남에게 보여야 할 이미지’ 같은 것들을 신경이나 썼으랴.

그렇게 시작한 편집국 활동은 아주 흥미진진하고 스릴 넘치는 영화처럼 나를 긴장하게 했다. ‘같이 있는’ 사람만 둘러보는 게 아니라, 센터 전체(열린작업장, 작업장학교 심지어 전혀 둘러보지 않았던 희망청의 소식까지)를 둘러보아야 하는 의무감이 나를 긴장하게 했다. 그래서 처음 3월, 즉 4월호를 만들 때에는 정말 ‘닥치는 대로, 하라는 대로 하자’라는 심보로 기사를 쓰고, 청탁을 했다. 청탁도 처음 해봤고, 기사를 쓰는 것도 처음, 하나의 큰 덩어리를 기획하는 책임자가 된 것도 처음이었다. 그러나 그런 건 신경 쓰지 않았다. ‘기사 하나라도 써야 안 혼나겠지’라는 생각으로 작업을 했다. 난 일반학교에서 공부할 때도 안 혼나려고 할 정도로 누군가에게 잔소리 듣기 싫어하는 사람이었으니 말이다(그래서 나의 개인 글 작업의 주제가 ‘비평’이었던 걸지도). 몸으로 여러 가지를 익히느라 괭과 온달에게 신경도 안 쓰며 견디지 못할 20일을 보냈다. 그렇게 웹진이 나왔는데 그다지 뿌듯하지 않았다. 편집과 발송을 테디, 달갱 혹은 큐가 하셔서 그랬던 걸지도 모른다. 웹진 잘 봤다고 하는 친구, 댓글을 달았다고 하는 친구도 있었지만, 힘이 되지도, 뿌듯하지도 않았다. 지금도 그다지 뿌듯한 감정은 없다. 나 자신이 스스로 만족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매 호마다 발전하기도 하지만, 같은 문제점이 반복될 때도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역시 지각이었고, 그 다음은 팀원들의 부족한 체력이었다.

원래 아침에 죽을힘을 내서라도 일어났었는데, 웹진을 시작했을 때부턴 그렇지 않게 되었다. 알람이 울리면 바로 꺼버리고, 왜 안 오냐는 문자가 와도 팀원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크게 들지 않았다(주니어 시작하기 전 인터뷰를 했던 당시, 길찾기 때의 나름 좋았던 이미지를 보겠다고 하셨던 판돌분들은 지금의 내 모습을 어떻게 보실지 참 궁금해진다). ‘아파서 지각한다’는 말은 너무 당연해졌고, 아파도 웹진은 발송되지 않으므로 발송이 늦어지게 마련이었다. 달리기가 느린 아이는 빠른 아이 앞에서 주눅 들 듯, 나또한 라이벌도 없는 상황에서 주눅 들었다. 일을 완벽하게 해내면 다른 사람들도 관심을 갖고, 그 관심에 뿌듯해질지도 모른다. 관심이 받고 싶어 뿌듯하지 않았던 건 아니다. 웹진은 많은 사람들과 함께하니 그런 마음은 생기지 않는다.

일단은 지금의 가장 큰 문제부터 고치고 나의 뿌듯함을 되찾으련다.

- 개인글쓰기_비평

내가 개인 글 작업을 구상하고 있을 때 ‘비평동무’가 처음으로 탄생했었다. 길찾기 때 같은 기수의 아이들 한 명씩 불러 충고랍시고 뭐라 뭐라 얘기해주었던 기억이 떠올라 참 재미있는 경험이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나도 멋진 비평동무를 삼겠다고 고민한 결과로 같은 팀인 온달에게 신청했고, 바로 수락해 기분이 좋았었다. 참고로 나는 말을 할 때 필터링(말을 골라서 하는 것)하는 습관이 없어 비평을 할 때에도 사람에게 상처를 많이 준다. 그래서 필터링 한 번 제대로 해보자는 생각과, 비평을 하기 전 내가 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리해보자는 생각으로 ‘비평’에 대한 글을 쓰겠다고 했다. 분량을 꽤 넉넉하게 잡았지만, 주니어 쇼하자를 해본 적이 없어 쇼하자를 어떻게 할 것인지는 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계획도 크게 안 잡았다.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그런지 수요일 아침이면 밥 먹듯이 지각했다. 오죽 하면 글이 매일 서론이었을까. 모모도, 괭도 매우 답답해했다. 여러모로 나의 작업들은 정 주행 보다는 역주행을 즐기는 것 같다.

결국 내가 내린 비평의 의미는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나의 글을 읽어주거나 보여주고, 코멘트를 받으며 기획한 글을 고치는 작업이 꽤 재미있었다. 그러나 글 기획에 앞서 웹진과 엮어갈 것을 생각해서 썼다면 더 쉽게 썼으리라 생각한다.

- 언어_ Globish

세이랜과 함께하는 글로비쉬 프로젝트는 재미있기도, 재미없기도 했다. 이미 중고등학교 때 배웠던 문법과 단어들이 지겨워서 들어갈지 망설이기도 했다. 게다가 타르한테 다시 한 번 글로비쉬를 배울 땐 복습하는 기분보단 ‘후딱 끝내자’라는 기분이었다. 나는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름 영어 영재라고 우대받았었다(그 땐 학원에서 영어 배우면 다 영재였다). 그래서 그 때 ‘to부정사’ 같은 것을 배웠고, 남들보다 영어를 빨리 배웠다. 그런 뒷 배경이 깔려있어 영어는 지루한 알파벳의 나열이었다. 그러나 웹진에서 ‘글로비쉬’에 대한 기사를 다루고, 프로젝트가 생긴 배경과 취지를 알고 나니, 내가 글로비쉬를 배우는 이유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어 이제는 영어를 더 배우고 싶은 기분이다. 무엇이든 왜 배워야하는지 정리를 하고 나면 목표가 뚜렷해져 얻고자 하는 것을 얻게 되는 것 같다. 그저 ‘영어’일 뿐인데 많은 것을 얻었다.

- 인문학_ 니하우 베이징!

인문학, 인문학, 인문학! 길찾기 때부터 인문학은 즐겁지만은 않은 공부였다. ‘학’이라는 단어만 들어가도 거부반응이 생기더라.

김찬호 선생님껜 인문학을 처음 배우는 거라서 첫 골든벨부터 열심히 해보자는 굳은 결심을 했다. 그리고 매 수업 때마다 열심히 필기를 했고, 복습도 했다. 그러나 빠지는 시간이 많았다. 아침이라서, 10시에 중국어를 배워서 인문학은 조금 멀게 느껴졌다. 열린작업장과 작업장학교의 죽돌들이 모두 모이는 그 시간이 왜 그렇게 불편했는지는 모른다. 의자가 불편하기도 했고, 카메라가 양 옆과 뒤에 있어 부담스럽기도 했다. 그리고 높으신 분들이 자주 특강을 해주셨던 적도 있고, 강의의 대부분이 999 안에서 이루어졌던 것도 있다. 게다가 처음에 있던 과제들은 조금 빡셌다.

이런 여러 가지 이유로 인문학에 대한 흥미를 잃어갔다. 나는 인문학에 대해 ‘인간이 이루어낸 문화 등의 역사와 미래를 공부하는 학문’이라고 정의했었는데, 내가 느끼기에 이번 인문학 강의는 나의 정의와 비슷한 것을 배우긴 했지만 너무 많은 정보를 기본지식 없이 들은 것 같아 힘들었다.

나처럼 책임감을 필요로 하는 웹진을 맡은 사람이라면, 센터의 거의 모든 사람이 보는 배너 하나를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미지 관리에도 신경을 써야한다. 나는 편집장이니 조금은 날카로워 보이고, 조금은 날렵해 보이고, 공허한 모습만을 보이지 않는, 무언가 많이 알 것 같은 이미지를 어느 정도는 갖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평소에 이미지를 크게 신경 쓰지 않아 무슨 행동을 하건 칠칠맞게, 멍하게 굴었다. 그게 나의 본래 이미지니 사실 그대로의 모습만 보여주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혹시나 역시나, 이미지 관리는 어느 정도 필요하고, 내가 하고 싶은, 보여주고 싶은 모습만 보이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그러므로, 나는 인문학 시간에 적어도 지각은 하지 말았어야 했다. 지각은 편집장이건 아니건 누구에게도 허락되지 않는 것이니 말이다. 지각으로 인해 나의 프로젝트 대다수를 후회로 덮어버렸다. 근본적인 문제 하나로 인문학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이 가장 크게 남는다. 다음 인문학 때에는 골든벨(한다면)을 향해 조금이라도 다가가 보고 싶다.

-자판기 아르바이트

길찾기를 수료하고 길찾기도 주니어도 아닌 어정쩡한 죽돌로 남아있을 때, 자판기 아르바이트를 신청했었다. 그리고 2월 중순부터 시작해 6월에 끝나는, 3개월 15일 동안의 ‘창업’이 시작되었다. 아르바이트를 하겠다고 한 이유는 ‘부담감’이었다. 우리 집의 재정상황은 그다지 좋지 않았고, 한 달에 40만원씩 꼬박꼬박 고시원에 내야하는 나의 자취생활은 부담감을 더 크게 했다. 그래서 용돈이라도 벌어 집안의 부담감을 덜어주자는 생각에 자판기 아르바이트를 시작했다.

나는 18살이고, 아직 청소년이며 부모님의 보호를 받으며 자라야 하는 미성년자이다. 굳이 아르바이트를 할 필요는 없었고, 집에서도 그런 걸 바라지 않았다. 잔걱정을 크게 부풀려서 생각하다보니 괜한 금전문제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어정쩡하고 정리되지 않은 마음으로 돈 벌 생각을 하니 일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처음 15일 동안은 매일 관리하고 체크했지만, 웹진을 시작한 이후로는 자판기를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모두 내게 품절 좀 없애라고 했지만, 지각도 잦고, 늘 피곤해 보이는, 게다가 혼자 살아서 잘 먹지 않은 얼굴에 의지라곤 눈곱만큼도 없었다. 당시 심각했던 고민이라 누구에게도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러다가 담임 모모에게 상담을 하고, 눈물을 보이고 나의 생각을 정리해보았다. 모모는 많은 이야기를 해주셨고, 나도 그것을 받아들여 나의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가장 큰 고민을 던져버렸다.

자판기 아르바이트를 제대로 못 한(안 한 걸지도) 것이 굉장히 후회된다. 제대로 된 의지로, 얻고 싶은 것을 확실하게 계획하고 했다면 지금처럼 후회하진 않았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한 번 해보고 싶고, 마음이 확실할 때 다시 한 번 신청해보고 싶다.

 

이번 학기엔 정말 많은 일을 했다. ‘처음’을 경험하고, ‘자판기’를 해보고, 주니어로서 많은 프로젝트들을 해보고, 편집장으로서 웹진을 기획하고, 편집진으로서 많은 사람을 만나보고(좋은 관계도 맺고, 어색한 관계도 생기고), 기자로서 사진 찍기와 기사쓰기를 경험해보았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나의 주변 상황을 정리해보고,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하는 습관도 ‘쬐끔’은 길렀다. 다음 학기에 또 글쓰기팀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웹진 ‘하자로’의 편집장을 계속 하라고 한다면 싫다고 할 것이다. 아니면 덥석 물고는 놓지 않겠다고 발버둥칠지도 모른다. 내가 글쓰기팀을 고른 이유가 명확하지 않았듯이, 다음 학기에 선택하는 작업장도 명확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은 언제나 명확하지 않은 선에서 시작해 명확한 지점을 잡는 것이 나의 인생의 목표이다. 이런 내 모습이 융통성 없게 보이거나, 한심해 보이거나, 이상해 보여도 잠시 참아주길 바란다. 내 본래 모습은 이러하고, 내 즐거움은 그 안에 있으니 말이다.

병이 전염이라도 된걸까요.
모모는 아파서 못나오시기까지하고..
오늘은 하루종일 정말이지, 온몸이 두통처럼 지끈지끈하네요.
할 일은 정말이지, 태산인데.
아....
짜증은 저만 나는 걸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