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인이야기 캐릭터 설정

레이니우스
식당 겸 술집 주인. 기린고기를 주로 팔고 있다. 카이사르를 원수처럼 여기고 있다.
기린을 사랑하는 노예 검투사 글래시우스(렌죠)는 나를 원수처럼 여기고 있다.
일렉산드로스(산)은 나의 가게에 자주 놀러와 기린고기를 먹는다.

나는 로마의 번화가 한 구석에서 식당 겸 술집을 운영하고 있다. 나의 가게는 다른 가게와는 다르게 몇몇 단골 귀족이 있고 손님도 꽤 많다. 이유는 우리 가게만의 차별화된 서비스와 시스템 때문이다. 다른 가게는 안주로 평범한 고기(양고기 소고기)를 주지만 우리 가게는 기린고기를 쓴다.
내가 태어났을 때(지금도 그렇지만) 로마는 가난한 사람은 끝없이 가난하고 부유한 사람은 끝없이 부유했다. 숲에서 풀을 뜯어먹고 구걸을 하며 얻어먹고 살던 난 지금의 내 상황에서 탈출하고 싶었다. 먹을 것을 찾아 헤매던 어느 날, 어쩌다보니 난 아프리카에 있었고, 지역 원주민은 다 죽어가는 날 초대에 식사를 대접했다. 그 때 별에 별 음식이 다 있었다. 그 중 어떤 고기의 맛은 정말 잊을 수가 없었다. 그 고기는 기린고기였다. 나의 은인 원주민씨는 그 지역에는 기린이 굉장히 많이 서식하고 있어 기린고기가 주식이라고 설명했다. 나는 로마에서 죽어가는 다른 노예들에게 이 고기를 대접하고 싶었다. 원주민씨는 내게 기린고기 레시피를 선물했고 나는 로마에서 기린고기를 팔며 돈을 모아 번듯한 가게를 내게 된 것이다.
귀족들은 기린고기를 굉장히 좋아하지만 대놓고 들르진 못한다. 이미지 때문이라나?
아프리카에 있는 기린들은 재력가 하프스(반야)에게서 납품받고 있다. 하프스는 매장 없이 기린고기를 팔던 내게 큰돈을 빌려준 장본인이다.

어느 날은 어떤 검투사가 찾아와 맥주를 달라고 했다. 처음 온 것 같아 서비스로 기린고기를 몇 점 대접했는데 어떤 고기냐고 물었다. 기린고기라고, 비싼 건데 처음 오시는 것 같아 대접하는 서비스라며 미소를 날렸다. 그런데 이 손님 다짜고짜 접시를 던지며 쌍욕을 지껄이더니 내게 다신 기린고기를 팔지 말라며 협박을 하고 나가버렸다. 계산도 안 하고(없이 살았기 때문에 돈에 좀 민감하다). 먹어보지도 않고 나의 기린고기를 무시한 그 손님이 참으로 이상해보였다.

우리 가게의 가장 단골은 일렉산드로스다. 원래 사람의 이름을 잘 외우지 못하는 내가 유일하게 이름을 외운 자이다. 매일같이 찾아와 기린고기만 먹고 사라진다. 이 친구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해주지 않는다. 다른 손님들은 나를 자신의 가족처럼 대하며 별에 별 이야기를 다 해주고 재미있는 소식을 들려주는데 일렉산드로스는 다르다. 별 이야기가 없다. 어디서 들은 소문으로는 꽤 높은 직책을 준비하고 있다고 하는데, 내 생각엔 별로 믿음직스럽진 못하다. 기린고기를 좀 더 많이 사먹는다면 손님들에게 소문을 흩뿌려줄 순 있지만 말이다.

-여기까지. 이후 모임을 통해 수정을 거듭해나가야겠어요-

081020 밤비

로마인이야기 가상이야기

 

시대; 카이사르 시대

작성자; 레이니우스

 

-예시가 없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썼는데 너무 이상하면 다시 쓸게요 ㅠㅠ 아 이게 맞나 몰라 



나는 빈민가에서 태어났다. 내가 태어나기 전 우리 집은 부족함 없이 노예를 거느리며 살았다고 한다.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돈에 대한 욕심이 너무 많았던 아버지는 더 이상 급하게 벌지 않아도 되는 재산을 쌓겠다고 많은 전쟁에 참여했다. 어머니는 계속해서 말렸지만 아버지는 결국 전쟁 중 돌아가셨다. 아버지가 돌아가신지 얼마 안 돼 내가 태어났고 어머니는 날 낳다가 돌아가셨다. 나는 그렇게 돈을 좋아했던 아버지가 왜 내가 태어날 땐 재산이 없어질 정도밖에 못 벌었는지 이해가 안 간다. 어머니가 불쌍하다.
지금 난 운 좋게 율리아님의 종으로 일하고 있다. 율리아님은 카이사르님의 딸이자 폼페이우스님의 아내이시다. 나는 율리아님은 좋지만 그녀의 아버지인 카이사르님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는 너무 전쟁을 밝히는 것 같다. 우리 아버지가 돈 벌겠다고 군인으로 나선 것도 다 카이사르님 때문이다. 다른 시종들은 카이사르님을 무척 좋아한다. 그 분의 이야기만 나오면 멋지다느니 시종이라도 좋으니 그 분 곁에 있고 싶다고 한다. 이해가 안 된다. 그 아이들도 모두 전쟁 때문에 부모님이 돌아가셨는데 말이다.
나는 율리아님께 음식을 갖다드리거나 목욕을 돕는 일, 방을 청소하는 일을 제외하면 한가하다. 그래서 한가할 땐 몰래 숨어서 잠을 자거나 다른 시종들과 조잘대곤 한다. 그래도 심심하면 율리아님을 관찰한다. 율리아님은 가끔 굉장히 바쁘시다. 폼페이우스님과 카이사르님의 얘기를 하며 즐거워하시는 일이 내 눈엔 바빠 보인다.
우리(시종)끼리는 지금의 로마를 삼두정치의 시대라고 부른다. 삼두정치의 크라수스님, 폼페이우스님, 카이사르님이 매일 속닥거리며 나온 얘기가 실제로 법안이 되는 것 같다.
율리아님은 내가 마음에 드셨는지 가끔 내게 담소를 나누자고 하신다. 그 때마다 율리아님은 폼페이우스님의 얘길 해주신다. 폼페이우스님은 굉장히 멋진 장군이셨다고 한다. 내가 장군이 싫다고 하면 율리아님은 살인과 돈만 좋아하는 장군은 없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폼페이우스님은 원로원의 돈만 밝히는 사람들과 다르게 로마를 위해 싸우는 멋진 장군이라고 하셨다. 사실 난 카이사르님 얘길 더 하고 싶지만 감히 그 분이 싫다고 하면 사형이라도 당할까봐 입을 다문다.

율리아님은 폼페이우스님과 정략결혼을 하셨다고 한다. 카이사르님과 폼페이우스님의 우정을 더 돈독하게 쌓기 위함이라나? 내 생각엔 그저 나라를 손에 넣고 싶은 남자들의 야망으로 보인다. 그러나 율리아님은 폼페이우스님을 정말 사랑하신다. 사실 폼페이우스님은 율리아님을 굉장히 아껴주신다. 그리고 지금 굶어죽고 있는 로마인의 원흉인 원로원 사람들을 설득하고 싶어 하신다. 그렇게만 보면 폼페이우스님도 참 멋진 분이다.
율리아님이 돌아가셨다. 우리 어머니처럼 아이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폼페이우스님은 아이를 낳을 때 곁에서 돕던 시종들을 모두 벌을 주고 내쫓으셨다. 나는 다행히 그 때 구석에서 잠을 자고 있었기 때문에 쫓겨나지 않았지만 율리아님이 돌아가실 때 곁에 있어주지 못해 너무 슬펐다. 율리아님이 돌아가시자 폼페이우스님은 갈리아 전쟁에 나가계신 카이사르님께 편지를 부쳤다. 편지를 배달했던 시종의 얘기를 들어보니 카이사르님은 슬퍼 하시면서도 당황해하셨다고 한다. 나는 율리아님의 시종에서 폼페이우스님의 시종이 되었다.

리아님이 돌아가시고 폼페이우스님이 힘들어하실 때 원로원 사람들이 계속해서 찾아왔다. 나는 그 때마다 밖에 나가 있어야 했지만 안에 있던 시종들에게 소문을 찾아 들었다. 카이사르님이 로마를 쓸어버리겠다는 얘기였다. 나는 그 분이 이런 거사를 치룰 거라고 확신하고 있던 터라 놀라진 않았다. 역시 살인을 좋아하는 사람은 살인밖에 못하나보다. 하고 싶은 게 있더라도 쓸어버리는 식으로만 하다니!
폼페이우스님은 매일 피곤해하셨다. 계속되는 카이사르님의 편지와 원로원의 방문에 지쳐하셨다. 율리아님과 다르게 폼페이우스님은 자신의 생각을 밝히길 꺼려하셨다. 나는 얘기를 잘 들어주지만 말을 이끌어내진 못해서 늘 발만 닦아드리고 방에서 나왔다. 그리고 폼페이우스님은 결국 원로원파의 딸과 결혼하셨다.

 
갑자기 폼페이우스님이 원로원에 찾아가기 시작하셨다. 집을 비우는 날이 늘어났다. 나는 편했지만 다른 시종들은 불안해했다. 소문이 진실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카이사르님은 정말로 군대를 해산하지 않겠다고 하셨다. 어떤 시종은 그가 이미 알프스를 넘어왔다는 소릴 했다. 겨울에 어떻게 알프스를 넘겠나, 라고 생각했지만 그 다음 달 카이사르님은 루비콘 강을 건넜다. 폼페이우스님은 우리를 모두 피신시키셨다. 나는 집 안의 재산 몇을 훔쳐 몇 시종들과 그리스로 도망쳤다.

081015 밤비


카이사르 리뷰

‘로마인’이라고 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카이사르’이다. 한국 사람들 외국인 풀 네임 외우는 걸 가장 어려워한다고 하는데 나는 카이사르, 라고 하면 ‘율리우스’라는 성까지 함께 떠오른다. 그 정도로 그는 유명하다.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는 소위 말하는 ‘빽’으로 지위와 재산을 얻었다고 한다. 또 여러 가지 추측이 있겠지만, 그가 큰 야망을 갖게 된 건 친척들에게 굽실거렸을 아버지를 보고 자라왔기 때문이 아닐까, 라는 짧은 추측도 해보게 된다.
다큐 안에서의 카이사르는 다부져 보이는 입, 반짝이는 눈, 날렵해 보이는 콧날을 갖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준수한 외모를 갖고 있다. 얼굴만 봐도 사람을 안다고, 카이사르 대역은 생김새부터가 일단 장군감이었다(카이사르 동상도 장군감이더라). 그러나 수용하는 마음보단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 같이 생겼다. 전쟁 신에서 그는 적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찌르고 베며 앞으로 나아갔다. 다큐에서도 계속 언급하듯 그는 조금은 매정하다.

하자에서도 리더십에 대해 계속 고민하게 된다. 나의 컨디션 관리에서부터 시작해 팀의 컨디션과 작업에 대한 의욕, 그리고 일의 진행방향과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에 대한 추측까지. 나는 지금 웹진의 편집장이라는 위치에서 일을 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곤란한 건 시간과 일의 분배이다. 웹진, 길드, 영상학교, 로마인이야기, 인문학, 글로비시 등을 내가 어디까지 개입하고 어떤 역할을 해야 한 학기를 잘 마무리할 수 있을지가 가장 고민된다.

카이사르는 어땠을까? 나는 그가 지금 이 시대에 살고 있었다면 사회적 기업가가 되지 않았을까, 라는 우스운 추측을 해본다.

식당, 길거리, 공원, 마트 등 ‘하자 밖’을 걷다보면 아저씨들이 정치 얘기하는 소릴 자주 듣게 된다. 심지어 노약자석을 애용하시는 분들은 모여앉아 노약자 정책에 대한 담소를 나누시기도 한다(서로 초면인데도). 그것은 ‘TV’의 ‘뉴스’에 나오는 ‘정치’가 어른들이 공유할 수 있는 가장 큰 화두이기 때문이다. 하자 안 대부분의 아이들은 자신의 작업이나 다른 죽돌에 대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그리고 일반학교에 가면 연예인이나 친구, 그리고 교육에 대한 얘기를 한다(이는 죽돌들이 외부 청소년들과 오래 얘기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이유가 될 수도 있다). 모두 상대방과 통할 수 있는 공통된 화두를 찾으려고 노력하고, 찾으면 그것에 대해 얘기한다.
카이사르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전쟁터에 있으면 ‘왜 싸워야 할까?’라는 생각을 하게 되고 그것은 정치로 이어진다(물론 그는 정치인이었지만). 자료에 따르면 카이사르는 원래 변호사를 직업으로 삼은 적이 있다고 한다. 물론 그가 말을 잘 하고 인기가 많은 ‘핸섬가이’라서 가능했을 지도 모르지만, 그는 변호사라는 직업을 통해 사회의 문제점을 들으며 많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앞에서 설명했지만 그는 굉장히 리더십이 강하고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일을 진행시킨다. 문제점을 발견한 카이사르는 자신의 성격대로 일을 벌였을 것이다. 그것이 현대라면 전쟁이나 정치인보단 지금 사회에 필요한 일을 했을 것이다(얕은 생각으론 그게 사회적 기업이다).

일의 진행 부분에선 그를 존경할 수밖에 없다. 뛰어난 전략가인데다 인기도 많으니 못할 것이 없었으리라. 그러나 만약 카이사르 같은 사람이 나와 함께 하자에서 프로젝트를 들었다면 나는 그 사람을 조금은 싫어했을 것이다.
나는 자신의 주장만 관철시키려고 하는 사람이 싫다. 그는 전쟁에서 총대장의 역할이었기 때문에 자신의 말을 무조건 따르라고 했다. 그러나 자신과 같은 지위의 사람들을 자신의 아래로 끌어내렸다. 아무리 관용정책을 내세웠어도 결국은 ‘내가 이렇게 잘 해줄 테니 내 밑에서 일 해줄래요?’라는 말이 아닌가. 그 시대에 한 명의 지휘자가 필요하다는 추측으로 내린 결정이겠지만, 나는 그의 욕심이 없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너무 공동체적인 고정관념일까).

정리하자면 그는 리더십은 뛰어나지만 욕심과 야망이 너무 넘쳤던 사람이란 것이다. 그래도 나는 물러터진 사람보단 그처럼 끊을 줄 아는 사람이 더 편하다!

오늘 조한과 함께 '하자의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지만 안타깝게 취소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린 어제의 회의에서 조한의 이야기를 들은 후 살롱수요일에 다함께 또 얘기를 해보자, 라고 결정을 했죠.
사실 조한과 함께하는 그 시간(강의라고 해야 할지)에 길드끼리만 얘기가 된 채로, 또 그 얘기를 주의깊게 생각한 사람만 질문거리나 얘기거리를 생각해오는 건 듣는 사람 모두가 재미있게 참여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조한을 만나기 전 살롱수요일을 먼저 열어 하자의 문화(주니어와 길찾기, 존칭, 1~4학기 차이 등등)에 대해 얘기를 나눠보았으면 해요.
하므로 10월 10일 금요일 오후 7시에 길드회의를 합시다.

혹 연락 못 받은 분들은 이 글 보고 확인하시길.


그리고 난 길드 블로그 초대받지 못했어요 ㅜ.ㅜ
음엄음

인문학에 초대받지 못해 여기에 올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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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rban network class 청소년을 위한 하자인문학: 3. 음악으로 세상을 듣는다.


10/5 에세이 밤비


-마음정리

나는 노래를 많이 아는 것도, 음악 공부를 한 것도, 일반학교에 다닐 때 음악 수행이 좋았던 것도, 노래를 잘 하는 것도 아닌, 음악에 대해 거의 무지할 정도로 아무것도 모른다. 아는 거라곤 피아노학원에 다닐 때 배웠던 콩나물 종류와 간단한 청음정도. 지난학기도 마찬가지이다. 중국에 대해 아는 거라곤 빨간색밖에 없었다.

인문학은 들으면 들을수록 참 신기하다. 어려운 걸 배우는 것 같으면서도 듣다보면 쉬워지고 지루하다 싶을 땐 갑자기 재미있어진다. 그리고 음악에 대해 배우는 건데 소설이나 시까지 함께 공부할 수 있는 재미도 있다. 그러나 인문학을 세 학기나 공부했는데 도통 내가 여기서 무엇을 가져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나만의 음악을 정의해보는 것? 음악 하나로 인간의 신체리듬, 영어, 역사 등을 공부해보는 것?

인문학 공부는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질 수 있을 거라는 포부와 함께 허영심을 품어준다. ‘이렇게 인문학 열심히 공부하다보면 나도 지식이 충만한 사람이 되겠지’, ‘지식이 충만해지면 나도 사물을 바라볼 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는 넓은 시야를 가진 사람이 되겠지’ 이런 생각들이 날 콕콕 찔러 공부는 곧 이득이라는 사고방식을 키워버린다. 그러나 난 인문학을 하며 시야가 넓어진 경험을 해본 적이 없다. 당연하다. 눈앞의 이득만 고집하니 공부가 될 리가 있나. 옛 신선처럼 마음을 가다듬고 공부를 해야지.


-나에게 있어 노래는 무엇일까.

목욕을 하려고 샤워기를 틀 때, 잠을 자려고 이불을 깔 때 등, 노래에 대한 생각을 하지 않고 있을 때 갑자기 요즘 듣지도 않던 노래가 떠오르곤 한다. 어떤 날엔 갑자기 빅뱅의 마지막 인사라는 노래가 떠오르고 어떤 때는 클래식 음악이 떠올라 마구 흥얼거리게 한다. 더 슬픈 건 그 멜로디라는 게 한 번 중독되면 헤어 나오질 못한다는 거다. ‘도레미도레미’라는 멜로디를 상상하면 그 음이 계속 떠오르고 갑자기 내 머릿속에선 작곡을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노래 하나가 떠오르면 흥얼거리다가 점점 열창을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럴 땐 곧장 노래를 틀어놓고 열심히 따라 부른다. 그리고 만족하지 못하고 그 노래만 계속 듣는다.

난 이런 경험을 일주일에 약 세 번 이상은 꼭 한다. 잘 모르는 노래도 어느 순간 내가 새로 작사해 노래를 부르고 있던 적도 있다. 그렇다고 내가 노래를 잘 부르는 건 아니다. 그냥 부르는 것이다. 물론 나 혼자만 이런 경험을 해봤을 리는 없다고 생각한다(우리 언니는 씻을 때마다 거미 노래를 열창한다).

나는 노래보다는 음악을 더 좋아한다. 노래는 가사, 리듬, 멜로디가 모두 정해져있어 셋 중 하나가 떠오르지 않으면 짜증이 난다. 그러나 음악은 그런 제약이 없어 내가 혼자 작곡도 해보고 가사가 안 떠오르면 내 마음대로 작사도 해볼 수 있어 자유롭다. 물론 이건 나만의 정의이다.

노래는 상황에 따라 또 다르게 들린다. 인문학 시간 끝자락에 부르는 팝송은 함께 부르는 거라 포근한 느낌으로 부르게 되고 힘들게 걷고 있을 때 들리는 노래는 귀에 차지도 않는다. 이건 인문학 시간에 배운 건데,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이런 방법을 쓴다고 하더라. 맞는 말이다. 극적인 장면엔 바이올린이 마구 튕겨지는 음악이 나오는데 밋밋한 장면에선 아예 음악이 없다. 나는 음악을 들어서, 혹은 음악을 들으며 행복했던 순간이 언제일까?


-노래의 추억. 외우고 싶지 않아도 외워지는.

중2부터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좋아했던 남자애가 있었다. 고등학교에 가서도 계속해서 떠오를 정도로 깊이 짝사랑 했던 아이였다. 같은 학원을 다니던 그 아이는 어느날 내 mp3의 이어폰 한 쪽을 가져가 자기 귀에 꼽았다. 그 때 무드가 깨지게(그냥 나 혼자만의 무드) 영어 수행평가 때문에 외워가야 할 Westlife의 My Love가 나왔다. 그 아인 말도 없이 그냥 엎드려 잤지만 나는 기분이 참 좋았다(그 때를 떠올려보면 난 참 순진했다).

그 이후 My Love만 들으면 그 아이가 생각난다. 노래를 들으면 장면이 떠오르는 것이다. 하자 죽돌들과는 이런 경험을 무한도전 때 나눴다. 어떤 노래를 들었을 때 과거를 회상하게 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노래는 한 번 외우면 기억에서 지울 수가 없다. 지금 내가 10대이고 쌩쌩해서 다 외울 수 있는 건진 몰라도 8살 때 외웠던 동요까지 생각난다. 음악으로 하는 학습이라고 하나? 교과목들 중 영어는 특히나 외워야 할 게 많아 교과서 한 단원마다 노래가 하나씩은 있었다. 알파벳, 1월부터 12월까지 등, 모두 노래로 배웠다. 그래서 지금도 누가 7월이 뭐냐고 물어보면 July라고 바로 답하기 전에 머릿속에선 January February March~라고 반응하고 있다. 이걸 예전에 몸으로 깨달아서 기술 과목 공부를 할 때 노래로 외워보곤 했다. 멜로디 하나만 붙였는데 잘 외워지는 걸 보니 신기했다.

그런데 이게 좋기도 하지만 안 좋기도 하더라. 안 좋은 추억을 노래로 기억하면 정말 잊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좋은 추억이라도 끝이 안 좋으면 노래 때문에 매일 시달리게 된다. 인간은 추억을 잊지 못하는 동물이라고 누가 그랬는데, 그 말이 딱 맞다. 노래가 추억이 되면 잊지 못하듯 이 어린 나이에 노래로 추억타령이나 하게 된다.


-앞으로

에세이를 쓸 때 내가 뭘 배웠는지 막막해서 아무것도 못 쓰고 헛소리만 주절댔다. 그러다 갑자기 퍼뜩하고 영감이 떠올라 여태 쓴 글을 모두 지우고 위에 있는 글을 30분 만에 썼다. 글은 영감으로 쓰는 게 아니지만 지금까지 쓴 글을 다시 읽어보니 이건 영감이 아니라 글을 쓰다가 정리된 말을 다시 쓰게 된 것 같다. 신기하다.

사실 인문학 시간에 참여는 열심히 하지만 내가 인문학에서 무엇을 얻어갈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앞에 쓴 사소한 것들을 얻어가기엔 나의 두 시간이, 김찬호 선생님의 멋진 말씀들이 아깝다. 나는 솔레이션이나 촌닭들처럼 음악에 관심이 많은 것도 아니고 전문적으로 배운 것도 없다(물론 저 둘도 배운 게 없는 사람이 있겠지만). 그래서 내 생활과 연결시키기 힘들다. 찬호샘도 마찬가지로 음악을 좋아하시지만 전문적으로 하고 계신 건 아니다. 그러나 아직 매치가 안 된다. 찬호샘과 내가 동급도 아니고. 내가 인문학자도 아니고.

앞으로의 나는 인문학 시간을 나의 음악 일상 안에서 즐길 수 있는, 그리고 내 짧은 삶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볼 수 있는 시간으로 가져가고 싶다. 사실 그게 가장 편하고 수업을 가장 재미있게 들을 수 있을 것 같다. 혹시나 모르지. 인문학 하다가 음악 하겠다고 뛰쳐나가 기타를 튕겨대고 있을지도.

창의서밋 개인리뷰

서밋 중간중간 상상리뷰를 체크하며 ‘계획대로’ 참여하고 싶었다. 그러나 홍콩 친구들과 너무 친해졌고 사진 찍는 게 즐거워서 그런 진 몰라도 창의성에 대한 질문이나 나의 계획은 점점 잊혀져갔다.

-데일리

서밋 시작 전 웹진에 대한 기획이 먼저 이루어져 데일리랑 웹진을 함께 엮어 쉽게 가져가보자는 생각으로 참여했다. 기록사진만 거의 7개월 동안 찍어댔는데 아직 발전이 없어 무료해지던 차에 비중 있는 행사의 데일리를 맡게 되어 부담감도 컸다. 쉽게 접할 수 없는 높으신 분들이 내 사진을 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덜컥 겁이 나 카메라를 손에 놓질 않았다.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는 정말 열심히 했다. 행사 시작 전 사전조사를 하고 어떤 장면을 찍을지 고민까지 모두 마친 후에 계획에 맞춰 찍었고 체력을 요하는 부분에선 페이스를 맞춰보는 노력까지 했다. 그러나 사진을 올리는 과정에서 데일리 팀끼리 따로 놀아 사진 공유과정이 삭제되어 블로그가 어수선해지는 점에서 부족함을 느꼈다.
또 사진 기술의 필요성을 절실하게 느꼈다. 100장을 찍으면 10장 빼곤 모두 쓸모가 없는 사진이었다. 또 시간이 지날수록 홍콩 애들과 떠드는 것에만 급급해져 사진 찍는 것에 집중하지 못했다. 장면을 놓치거나 배터리를 놓고 오거나 카메라를 맡겨놓고 먹을 거나 사먹으러 다니는 등. 처음에 바짝 긴장한 마음이 끝까지 가기라도 했으면 사진이라도 잘 찍었을 텐데 갈수록 나태해져가고 쉬는 시간만 찾게 되었다.
이것은 이번학기까지 이어지는데, 지금 이 리뷰를 쓰는 동안에도 내내 다른 생각만 들고 머릿속에 있는 것들이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 서밋 준비모임을 할 때부터 말도 엉터리로 나오고 생각도 이상하게 흘러가게 되었다. 학습에 대한 슬럼프에 빠져버렸다. 지금 서밋 정리를 제대로 해야 극복할 수 있을 것 같다.

또, 책임감을 더 느껴봐야겠다. 

-워크숍 B

먼저 데일리 스케치를 맡아서 사진에 대한 부담감이 조금 컸다. 그리고 영어를 써야 한다는 압박과, 초반부터 당황스럽게 빠른 영어를 구사하는 매트가 워크숍 시작부터 날 초조하게 만들었다.
A워크숍이 계산적일 거라는 생각에 슬램 워크숍에 들어갔다. 그러나 들어가기 전 이유 없이 앉아서 돈만 허비하는 것도 아닌 것 같아 곰곰이 생각해 ‘내 주변의 문제를 스토리텔링 해보자’라는 이유를 만들었다.
시를 쓰는 건 즐거웠다. 영감에만 의지해 손으로 죽죽 써내려가는 것. 늘 컴퓨터 앞에 앉아 자료를 조사하며 키보드만 쳤던 모습에서 탈피하여 새로운, 조선시대스러운 방식을 도전해봤다. 대신 매트가 날 너무 자유롭게 두셔서 의미 없고 재미만 있는 시가 나오거나 느낌만 표현해 홍콩친구들이 이해 못할 시가 탄생되기도 했다.
중간중간 매트가 자신이 쓴 시를 느낌 살려 낭송하여 예시를 보여준 것도 있었고 우리가 직접 무대로 나가 슬램을 해본 적도 있다. 나는 단 한 번도 무대에 나선 적은 없지만 다른 사람들이 앞으로 나가 슬램을 할 때 무어라 코멘트를 하고 싶기도 했다. 지난학기 비평에 대한 글을 써서 너무 압박감에 시달리는 건 아닐는지 생각해봤지만, 사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받아들이거나 박수만 치는 건 상대방에 대한 예의가 아니란 생각도 들었다. 적어도 슬램에서 왜 그렇게 표현했는지 물어보며 서로 조금 더 재미있게 얘기해볼 수도 있는 거였다. 그러나 초등학생 수준의 영어실력 때문에 알아듣는 것조차 힘들었다. 내가 좀 더 나서보았으면 좋았으련만.
워크숍을 하며 글로비시에 대한 생각을 참 많이 했다. 매트가 슬램을 할 때, 다른 친구들이 슬램을 할 때, 영상을 보며 그 소울 넘치는 슬램을 들을 때도 못 알아들으니 답답해서 미치는 줄 알았다. 내가 말하거나 쓸 때는 내 의사를 몸짓발짓으로 전달할 수 있지만 상대방은 굳이 바디랭귀지를 안 해도 말을 잘하니, 나는 몸 멀쩡한 귀머거리로 보이지 않겠는가. 나름 어려운 단어 풀어서 쓰는 연습도 했고 같은 뜻/다른 단어 반복해보기도 했지만 아직도 슬램에 대한 아쉬움이 참 많이 남는다.
나중에 슬램 워크숍을 또 한다면 이번엔 동시통역기라도 발명해서 참여하든지 내가 영어공부를 정말 빡세게 해서라도 알아들으려고 노력해보겠다.

  -Youth 창의 워크숍

: 크리스터 리젤리우스, 나나와 함께한 워크숍

워크숍 목표가 ‘창의성은 이렇게 쉬운 거에요’라고 계속해서 말하는 느낌을 받았다. 한 가지 놀랐던 건 학생인 나나가 진행자였고 크리스터는 잠깐씩 참고인으로 나타났다는 것.
워크숍은 세 가지 창의성을 기르는 방법을 체험하는 방식이었다. 창의성에 대한 창의적인 질문을 세 가지 뽑아보는 것, 유명한 인물이 놀이공원을 만든다면 어떻게 만들지 등. 워크숍을 할 때 영어가 잘 되지 않는 나와 설, 그리고 홍콩 여자애 한 명이 함께 했다. 홍콩친구는 굉장히 답답해보였고 계속해서 조를 이탈하거나 말이 안 통하면 종이에 써서 보여주고 답답해하는 표정을 짓기도 했다. 나도 영어를 못하는 내가 참 답답했다.
나나는 계속 다양한 표정으로 우리에게 웃음을 선사했고 우리도 나나의 말을 알아들으려고 애썼다. 또 창의성에 대해 고민을 멈추고 사진만 찍던 도중 창의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워크숍을 해서 다시 고민을 잊지 않고 지속해나갈 수 있었다. 워크숍은 무난하게 재미있었고 이후의 인터뷰도 즐겁게 잘 끝냈다.

  -인터뷰

: 카오스필로츠 교장과 학생

인터뷰를 맡은 인물이 두 명이고 질문도 내가 정말 궁금했던 것들을 압축해놓은 거라 굉장히 기대하고 들어갔다. 카오스필로츠는 학생이 교장이 되어서 그런진 몰라도 학생과 교장의 사이가 굉장히 가까워보였다. 처음엔 나나와 크리스터가 친구로 보였으니 말이다.
인터뷰 전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은 어떻게 하는가’와 ‘학생들은 어떤 사람들로 구성이 되어있나’라는 질문의 대답이 가장 궁금했다. 나나는 창의성을 키우는 교육은 사실 꽤나 복잡한 문제라고 했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창의성이 마치 키워주면 바로 생기는 것처럼 느껴지는 프로그램이 많았기에 질문한 것이다. 카오스필로츠에선 창의적 과정 디자인이라는 줄기에서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워크숍이란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고 한다. 또, 우리가 했던 워크숍도 그 맥락과 일치하는 부분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아직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이다. 집중력과 암기력을 높여주는 건 무한한 연습이다. 그러나 창의성에 대하 무엇을 연습해야 창의력이 오르는 걸까.
또 크리스터는 학생들이 대부분 환경단체 같은 사회에 공헌하기 위한, 자연환경을 중시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대부분 봉사활동을 하던 사람들이 문제점을 적극 개선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그들은 학교에서 짜 맞춰진 프로젝트만 수강하는 게 아니라 스스로 매 학기마다 몇몇 프로젝트를 만든다고 한다. 또 학생이 개설한 프로젝트에 다른 학생이 또 오면 그걸로 팀이 꾸려지는 거라고 했다. 학기마다 1~10개 정도의 프로젝트가 만들어진다고 했다. 하자센터에선 우리가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들지 않는다. 만들기 이전에 우리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나누고자, 무엇을 해보고 싶어 하는지도 제대로 정해져있지 않은 것 같다. 나는 웹진과 영상학교를 하고 있지만 이것은 이미 짜여 져있던, 내가 ‘선택’해서 시작한 거지 내가 ‘만들어서’ 시작한 것은 아니다. 시니어과정이 떠오른다. 시니어과정에선 직접 프로젝트를 개설한다고 들었는데 나는 시니어과정을 할 수 있을까? 그리고 내가 선택한 일 이전에 내가 스스로 프로젝트를 만드는 방식이 하자센터에 도입된다면 나는 어떤 프로젝트를 만들고자 할까? 아직 답은 내려지지 않았지만 좀 더 고민해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한다.
나나는 ‘아이디어와 열정을 발전시키는 것’이 창의성이라고 정의했다. 나에게 있어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지금은 무력함과 불안함과 초조함이다. 20대가 되면 나도 나나처럼 정의내릴 수 있는 사람이 될지 불안해져만 간다. 그래도 인터뷰는 참 즐겁게 하하호호하며 끝냈고 알고 싶었던 부분도 답을 얻게 되어 좋았다.

  -주인의식

손님들이 떼로 찾아와 우리에게 이것저것 질문한다. 영어로. 복잡하다. 말을 제대로 할 수도 없는데 나는 뭐하는 사람이냐고 계속해서 질문한다. 너는 뭐하는 아이니, 라고 반문해도 알아듣지도 못했다. 심플하게 디자인, 영상, 공부하는 애라고 듣긴 했지만 후회가 깊게 남는다.
내가 잘 모르지만 오랫동안 우정을 다져온 친구를 집에 초대했다. 먼저 서로 자기소개를 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얘기하고 더 나아가 그것에 대한 토론을 한다. 혹은 서로의 친구 이야기를 한다. 나와 공통된 부분을 찾고자, 혹은 나와 다른 부분을 찾아 그것으로 대화를 이끌어 나가고자 노력한다.
이 간단한 일을 1단계밖에 못했다. 한 걸음 한 걸음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고 있다는 마음은 들지만 학교 대 학교로서 다가가고 있다는 느낌은 받지 못했다. 내가 주인의식이 없어서 그런 거라 생각된다. 나는 하자투어도 자체적으로(엉터리로) 했고 영어로 얼렁뚱땅 열심히 했고 사진 부랴부랴 찍고 말도 많이 걸었다. 그래도 허전함이 남는다. 그 아이들과 우정은 쌓았지만 하자의 죽돌들과 함께 얘기하는 사소한 이야기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요즘 죽돌들 매일 자기 작업 얘기하고 창의성에 대해 얘기하고 길찾기에 대해 토론한다. 그러나 홍콩 애들과는 한류스타 얘길 하고 대장금 얘기를 하고 나라 간의 문화적 차이에 대해 얘기했다. 내가 바라는 건 작업과 작업간의 교류인가. 반문한다. 내가 한 것은 작업인가. 말하기 위한 준비는 했나.
다음 서밋엔 주인의식 되살려 내 작업이 작업인지부터 생각을 좀 해보고 실천도 해야겠다. 아직 내가 뭘 하는지도 제대로 모르는데 이걸 설명하려니 참 웃기다.